무턱대고 좋아해주는 사람

며칠 전에 조성문씨와 점심을 먹었다. 조성문씨가 한국에 볼 일이 있어서 들어오셨다가 우연히 연락이 닿아서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얻게 된 뜻밖의 소득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블로그가 없었더라면 얻을 수 없는 이런 인맥이 아닐까 생각된다.

성문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성문씨는 좋은 비즈니스 아이디어도, 좋은 벤처 캐피탈도 아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드는 것’을 꼽았다. 처음엔 나도 흔히 말하는 ‘advisory group’같은 나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인맥(?)같은 것을 말하는 줄 알았다.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내가 무슨 일을 하던지 무턱대고 좋아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성문씨의 문장에서 ‘무턱대고‘ 라는 말이 참 와 닿았다. ‘무턱대고’라는 말은 ‘무조건’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더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성문씨와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무턱대고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해 줄 사람’이라는 말이 자꾸만 맘속에 맴돌았다.

내 주변에는 이성이 발달한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누군가를 ‘무턱대고’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누군가의 생각을 평가하는 것에 익숙한 관리자들, 남들의 숫자를 검증해 보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컨설턴트들, 실패의 가능성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뱅커들에 둘러싸여 사는 나에게 ‘무턱대고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드는 것은 참 힘든 일이 아닌가 생각했다. 특히 내 주변에 넘처나는 냉철함을 생명으로 아는 컨설턴트들은 ‘무턱대고’ 라는 말 자체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 누군가, 무언가를 ‘무턱대고’ 좋아한다는 사실 자체에 죄의식마저 느낄지도 모른다.

생각이 여기쯤에 이르렀을 때, 나는 문득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를 무턱대고 응원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나 또한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선뜻 누군가를 무턱대고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무턱대고 좋아해주는 것 또한 쉽지 않은데, 누군가가 나를 무턱대고 좋아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더욱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 내에서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드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에서 쉬운 한가지 방법은 ‘충성을 맹세하는 것’ 이다.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확실한 줄을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학연, 지연, 인연 등등 될 수 있는한 모든 끈(연)을 동원하여 그 사람과 나를 공동운명체로 꽁꽁 묶어 두는 것이다. 내가 잘 되면 너도 잘 되는 것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주면 된다.

하지만 실력이나 이성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가장 쉽게 떠오르는 방법이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인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내 편은 드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내 주변에 ‘무턱대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까?

최근에 나와 함께 일한 사람이 나를 칭찬해 준 적이 있다. 내가 그 사람과 일할 때 보여준 어떤 행동 때문이었는데, 나는 사실 나의 그 행동이 그 사람에게 그렇게 좋은 인상을 남긴 줄 모르고 있었다가, 나중에 그 이야기를 건네 듣고 알게 되었다. 그 일은 바로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내가 막아주는 행동을 취했던 것이 전부였는데, 그 사람은 그게 꽤나 인상 깊었나보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는데, 막상 그 사람이 그 일로 인해서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내 칭찬을 한다는 것을 알고나니까, 왠지 나도 모르게 내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내가 그런 기특한 짓도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일이었다.

fatherandson-trust

결국 모든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행동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언가를 의도적으로 하는 순간 상대방은 금새 눈치를 채기 마련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이 일관될 때 가능한 것 같다. 나 스스로조차 내가 상대방에게 신뢰를 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그냥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그런것 말이다.

나 자신을 믿고, 꾸준히 내 장점과 원래 모습을 닦아 나갈때, 결국 다른 사람들도 나를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무턱대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턱대고 솔직하기’ 라는게 내 생각의 결론이다. 똑똑한 척도, 실력있는 척도… 상대방을 부담스럽게 만들 뿐이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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