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SNS에서 오가닉 미디어를 배운다

대학원 수업중에 오가닉 미디어를 소개하니 한 학생이 질문을 한다. “그럼 농약 미디어에는 어떤 것이 있나요? (일동 웃음)” 오가닉 미디어는 사용자 참여를 통해 ‘유기적’으로 성장하는 미디어를 말한다. 사용자가 친구맺고 글을 쓰고 연결하고 대화할수록 네트워크가 성장하고 그것이 서비스의 가치가 된다. 자발적 참여가 이어지지 않으면 서비스는 성장을 멈추고 곧 도태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농약이랄까. 낚시글로 트래픽 올리고 사용자를 (외부 서비스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가둬놓고 장사하는 서비스들이 농약 미디어에 해당하겠다.

기획자든 마케터든, 건강하게 자라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은 SNS 시대 모든 사업자들의 고민이다. 그런데 SNS가 (농약없이) 무려 300년 이상 지속된 사례가 있다. 이번 글에서는 르네상스부터 근대까지 이어진 ‘서신공화국(Republic of letters)’을 오가닉 미디어 관점에서 살펴본다. 특히 네트워크의 특성, 사용자 인터페이스, 매개 유형, 핵심기능을 해부하고 오가닉 미디어의 진화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얻는다.

출처 : Republic of Letters Project. http://republicofletters.stanford.edu/
출처 : Republic of Letters Project. http://republicofletters.stanford.edu/

 

SNS의 원조, 서신공화국

서신공화국은 편지를 기반으로 형성된 지식공유 네트워크이다. 15세기 말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출발하여 18세기에는 북아메리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기록에 의하면 종교개혁(1513)~1735년 사이에는 6,700명의 개인이 35,000통의 학술 서신을 교환했다고 한다[이언 F. 맥닐리, 리사 울버턴 공저, 지식의 재탄생: 공간으로 보는 지식의 역사(원제 : Reinventing Knowledge), 채세진 역, 살림출판사, 2009. p. 129]. 서신공화국의 메커니즘을 오가닉 미디어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아래와 같은 특징이 발견된다:

  • 가입과 인증절차가 없는 개방형 네트워크였다.
  • 소셜 네트워크를 만드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가 존재했다.
  • 매개 과정을 통해 콘텐츠가 생산, 재생산, 복제, 소비되었다.
  • 지식의 저장, 공유, 배포에 적합한 도구를 활용했다.

 

1. 개방형 소셜 네트워크 (Open Social Network)

서신 공화국은 무엇보다 국경과 소속, 종교, 세대를 초월한 개방형 편지 네트워크이다. 종교개혁과 정치분쟁으로 국가간 왕래가 침체된 시기, 서신공화국은 ‘보편적(universal)’ 가치를 지향하는 누구나 참여가능한 네트워크였고 문학, 예술, 과학, 의학 등 콘텐츠의 범위도 제한이 없었다. 신분과 직업, 남녀의 차별이 심하고 국가간 분쟁이 심각하던 상황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소셜 네트워크가 아닐 수 없다.

회원가입을 위한 검증절차도 없고 소유자나 관리자도 없었으며 규칙과 관습은 시민(참여자)들이 정했다. 참여자에 대한 신뢰도는 편지 왕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필터링되었다. 모두 필명 대신 실명을 사용한 것도 신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에 일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2. 편지 기반의 사용자 인터페이스 (Letter based User Interface)

콘텐츠들은 모두 필사본 편지로 생성되었고 우편으로 전달되었다.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모르거나 주소를 모르는 경우에는 매개자가 적절한 수신자를 찾아주기도 하고 여행중인 상인이 중개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식을 책이 아닌 편지로 개인(노드)을 통해 전달하는 프로세스는 서신공화국이 SNS로 발전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세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 저자의 메타정보

첫째,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인물에게 대화 형식으로 콘텐츠를 작성함에 따라 편지에는 작성자의 성격과 인성 등 다양한 메타정보가 녹아있게 된다.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저자와 친근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편지에서는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과 감성적으로 교감할 수도 있고 가깝게 느낄 수도 있다. 다양한 편지쓰기 관례, 관습이 발전하고 네트워크에의 소속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참여자의 교신이 빈번할수록 함께 성장하는 것은 편지 송수신자와 매개자의 노드들로 구성된 소셜 네트워크이다. 아래 그림은 18세기 서신공화국의 소셜 네트워크를 분석한 스탠포드 대학의 연구결과이다(상세한 내용은 동영상 참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18세기 서신공화국의 소셜 네트워크를 분석한 예시 화면이다, 출처 :  http://mappingbooks.blogspot.kr/2013/07/expanding-republic-of-letters-india-and.html)
스탠포드 대학에서 18세기 서신공화국의 소셜 네트워크를 분석한 예시 화면이다, 출처 : http://mappingbooks.blogspot.kr/2013/07/expanding-republic-of-letters-india-and.html

– 콘텐츠에 대한 신뢰

둘째, 당시 사람들은 인쇄된 책보다 필사본을 더 신뢰했다.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서 종교적 검열이나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 때문에 콘텐츠가 훼손되고 왜곡되는 사례들도 있었고 잘못된 정보가 한꺼번에 확산될 위험도 존재했다[피터버크, 지식: 그 탄생과 유통에 대한 모든 지식 (원제: Social history of knowledge: from Gutenberg to Diderot), 박광식 옮김, 현실문화연구, 2006, p. 137~141]. 그 보다는 차라리 개인이 손으로 작성하고 싸인한 편지가 콘텐츠를 더 신뢰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서신공화국의 서신들은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는데, 이 때 서문과 후기에 아예 편지를 인쇄해서 넣기도 했다[이언 F. 맥닐리, 리사 울버턴 공저, op. cit., p.139]. 오늘날 소셜 미디어에서 하이퍼링크를 추가하여 출처를 밝히고 컨텍스트를 확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 생산적 공유 프로세스

셋째,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지식과 놀라운 발견은 먼저 서신공화국에서 편지를 통해 공유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대표적인 사례[ibid., p. 140]이다. 오랜 기간의 연구결과를 편지로 공유하고 많은 사람들이 동참함으로써 지동설은 이론적으로 검증되고 완성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런 프로세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편지와 우편이라는 인터페이스이다. 오늘날 카카오톡과 같은 SNS를 통해 언론이 공식화하기 어려운 소문이 유포되기도 하지만 SNS는 정보의 단순 유포보다 훨씬 생산적인 방향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참여자(SNS 사용자)들의 매개역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3. 매개의 4가지 유형 (4 Types of Mediation)

우리는 앞선 글에서 아마존 사례를 중심으로 소셜 미디어에서 나타나는 매개의 4가지 유형에 대해 정리한 바 있다(각 유형의 정의 등 상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서신 공화국에서도 매개의 유형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창조, 재창조, 복제, 소비가 어떻게 소셜 네트워크와 콘텐츠의 성장과 확산에 역할을 했는지 알아보자.

– 창조 (Creation)

매개유형에서 창조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화두를 던지는 것과도 같다. 서신공화국에서 지식의 창조는 에라스무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튼 등의 유명한 학자들을 비롯해 많은 참여자를 통해 이뤄졌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편지로 전달한 것이 창조유형에 해당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실험정신과 탐험일지 등 새롭고 놀라운 발견은 무수한 창조사례이다.

– 재창조 (Recreation)

그런데 SNS에서 모든 사람이 기사, 사진, 블로그 포스트 등을 통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역할만 한다면 과연 네트워크가 만들어질까?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수많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이 함께 증명하고 실험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이미 생산된 콘텐츠(편지)에 대해 사례를 추가하고 토론하고 댓글(답장)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서 재생산의 역할을 한 대표적인 매개자이다[ibid., p. 141].

모든 편지가 트랙백(Track back)으로 연결된 블로그 포스트의 네트워크를 상상해보면 된다. 서신공화국의 편지들은 모두 생산과 재생산의 상호작용으로 묶인 거대한 (소셜) 트랙백 네트워크라고 하겠다.

그밖에 큐레이터의 역할을 한 매개자들도 있었다. 여러 편지내용을 묶어서 하나의 편지에 요약해서 정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될 수 있도록 편집했다. 편지로 전달되기도 하고 정기간행물로 엮이기도 했다. 아래는 서신공화국의 편지 내용을 최초로 묶어서 발행한 정기간행물 ‘Le journal des Sçavans(학자들의 저널, 1665년 창간)‘이다. 최초의 학회지 로도 꼽힌다. 아래는 당시 저널에 소개된 잠수 기계에 대한 그림이다.

서신공화국에서 주고 받은 편지 내용을 엮은 정기간행물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Le journal des Scavans은 서신공화국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전해진다. 그림은 세계 최초의 잠수 기계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 : http://bibliophilie.blogspot.kr/2008/06/deux-journaux-du-17me-le-journal-des.html
서신공화국에서 주고 받은 편지 내용을 엮은 정기간행물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Le journal des Scavans은 서신공화국 최초의 정기간행물로 전해진다. 그림은 세계 최초의 잠수 기계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 : http://bibliophilie.blogspot.kr/2008/06/deux-journaux-du-17me-le-journal-des.html

– 복제 (Replication)

편지에 특정 수신자가 있지만 송신자는 그 편지의 공적인 쓰임(공개)을 염두하고 편지를 썼고, 실제로 여러 사람들에게 회람되었다고 한다[ibid., p. 133]. 원본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매개하는 역할도 있었을 것이고 수기로 복사해서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책으로 인쇄되어 대량으로 서신공화국 외부의 사람들에게까지 배포되기도 했다. 콘텐츠에 대한 대규모 소비를 만드는 메커니즘이 존재했다는 뜻이다. 다만 지금의 SNS에서 복제 유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속적인 기록보관과 인덱싱(indexing)이 가능했다. 반면 지금의 SNS에서 좋아요, 투표 등으로 콘텐츠의 가시성(visibility)을 높이는 복제현상은 내용이 쉽게 휘발된다는 점에서 다르다.

– 소비 (Consumption)

콘텐츠의 소비는 중요한 매개활동이다. 당시는 지금처럼 소비패턴을 분석하여 검색결과의 정확도를 높이고 기사를 추천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신공화국 콘텐츠에 대한 일반인들의 호기심이 증가하고 학문적, 문학적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이를 반영한 정기간행물, 문학서적들이 함께 발간되었다. 서신공화국이 지식공유뿐만 아니라 출판시장 등 비즈니스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피터버크, op. cit., P 251~282]. 또한 서신공화국이 학회(Academy) 활동으로 제도화되고 대학으로 확장되면서 검증과 실험을 통한 지식생산이 방법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소비가 콘텐츠 진화에 영향을 미친 경우이다.

 

4. 지식의 기록, 공유, 배포 메커니즘 (Documenting, Sharing and Diffusion Mechanism)

정리해보면 서신공화국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위키피디아의 메커니즘을 모두 담고 있다. 우선 개인이 개인의 공간(편지=블로그 포스트)에 글을 쓰고 포스팅(우편배달)을 하는 과정을 통해 콘텐츠를 공개했다. 대신 완전 공개가 아니라 페이스북처럼 소셜 네트워크(지인 또는 지인의 지인 등)를 통해 전달되었다. 답장은 트위터의 리트윗과 같이 저자에게 직접 코멘트를 하거나 해당 내용을 인용, 복제하여 자신의 지인들에게 유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물은 위키피디아처럼 모두가 함께 만들어낸 소셜 지식이 되었다. 다만 저자의 신뢰도와 명성에 영향을 미치고 작용했다는 점이 달랐다.

SNS는 콘텐츠의 생산도구(블로그 포스트, 140자 요약, 사진편집, 위키 등)에 따라, 매개도구 (창조, 재창조, 복제, 소비방식)에 따라 그리고 전달구조(친구 네트워크, 팔로워 네트워크, 대량 출판 등)에 따라 완전히 다른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만든다. 편지와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콘텐츠를 발전시키되, 다양한 매개 장치가 연계되어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성장, 확장, 확산될 수 있었다는 점은 단일 서비스 측면에서 볼 때 놀라운 사실이다.

 

서신공화국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

서신공화국은 21세기 오가닉 미디어 시장에 몇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가 어떻게 사용자를 이해하고 서비스(마케팅)를 진화시켜야 할지 4가지 관점으로 요약하면서 포스트를 마무리한다.

1. 사용자의 참여동기를 찾아야 한다

서신공화국도 사교장이나 근원을 알 수 없는 ‘카더라’ 네트워크로 도태될 수 있었다. 그러나 보편적 지식과 가치 생산이라는 참여동기가 성장의 근원이 되었다. 서비스(제품, 콘텐츠)의 이용동기는 사용과정에서 계속 구체화되어야 하고 새로운 니즈를 지속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서신공화국의 참여동기는 지적 호기심 가득한 독자의 참여를 독려하고 협업(collaboration)할 수 있는 네트워크와 도구를 제공하는 등 계속 구체화되고 발전했다. 위키피디아의 사회적 기여와 가치공유, 블로그의 기록과 공유 (이를 통한 명성) 등 오래 지속되는 서비스에는 변질되지 않는 참여동기 즉 사용자 가치가 있다.

2. 참여동기에 맞는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

서신공화국의 편지 형식은 지식생산 이전에 참여자들이 서로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편지가 각자의 개성과 성향을 드러내는 ‘개인화’된 도구로 작용했기에 협업, 신뢰, 공유도 가능했다고 보여진다. 미니홈피에 콘텐츠가 많이 쌓여도 사람들이 거기서 검색을 하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모든 니즈를 만족시키는 것보다 핵심적인 참여동기를 찾고 이에 적합한 핵심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

3. 매개가 습관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매개자다. 서신공화국의 모든 참여자는 매개자였고 멀티플레이어였다. SNS 시대에 모든 소비자, 이용자가 매개자가 되지 않으면 네트워크의 성장은 불가능하다. 심지어 매개가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페이스북의 ‘좋아요’는 가장 편리한 방법으로 우리를 매개자로 만들었고 페이스북을 혁신시켰다. 아마존은 모든 소비자를 매개자로 만들었고 매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연결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즉 사업자 자신도 매개자가 되었다.

4. 진화가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서신공화국도 초기에는 국가간 왕래가 어려워진 시절에 학자와 성직자들이 소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 하지만 점차 발전하여 유럽전역, 북아메리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 규모, 광범위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네트워크 기반의 오가닉 미디어는 성장이 멈추면 죽는다. 지금같은 시대에는 300년이나 기다릴 시간이 없다. 훨씬 더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

페이스북의 초기모델은 대학교 내의 페이스매칭 서비스였다. 이후 친구 네트워크로 발전하고 지금은 (필터링된) 뉴스플랫폼, 마케팅 플랫폼으로 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가 끝은 아니다. 서비스가 정체되는 순간 도태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진화를 멈추지 않는 것만이 오가닉 미디어 시대의 기업이, 서비스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관련 포스트>

글 : 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goo.gl/9uO8Q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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