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여, 독일로 가자!

7월 여름 밤 9시. 밤이라고 말하기 무색하다. 겨울엔 4시면 지는 해가 여름엔 10시 가까이 하늘에 걸려있기 때문이다(일광시간 절약제 영향도 있다). 독일 서부에 위치한 뒤셀도르프. 라인강이 도시를 관통한다. 여름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이 라인강가를 거닐어 보자. 물결에 조각이 나서 빛나는 주홍빛 햇살과 시원하고 맑은 강바람이 어우러지는 순간. 거칠게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함이었구나!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 때 라인강의 이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될 수 있으리라.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11821713@N00/4722244936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11821713@N00/4722244936

한국 게임 개발자 유혹하는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

스포츠경향의 보도에 따르면, 독일 서북부에 위치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NRW, 이하 ‘NRW’) 주 정부는, 게임 개발 프로젝트 당 10만 유로를 지원하고, 게임회사 당 최대 20~30만 유로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위한 사무 공간도 무료다. NRW은 과거 ‘라인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중화학공업 중심지역이(었)다. 80년대 이후 쇠락을 거듭하던 중공업은 90년대 들어 본격 몰락의 길을 걸었다.

NRW 주 정부는 방송, 로봇, 게임 등 지식산업 중심으로 이른바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진흥책으로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말 독일로 떠나볼까 고민하는 게임 개발자와 게임회사를 위해 몇 가지 조언한다.

1. 다양한 이점: 풍부한 시장과 삶의 환경

독일에서 게임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다양한 이점이 있다. 우선 1억 명에 달하는 독일어권 시장(스위스 일부, 오스트리아 포함)이 있다. 나아가 유럽시장 전체가 코앞에 놓이게 된다.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더불어 뭐니뭐니해도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삶의 공간이 제공된다. 도시 곳곳에 크고 작은 숲이 있고, 주말에는 독일의 크고 작은 도시를 비롯하여 가까운 네덜란드, 벨기에 등지를 방문할 수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2. 독일에도 좋든 나쁘든 규제는 있다

독일 게임산업에도 규제는 있다. ‘게임 셧다운제’와 같은 무식하고 치사한 규제는 없지만, 강력한 ‘청소년보호법’이 작동한다. 영화처럼 게임 등급제가 적용되고 있다. 15세 이상 등급판정을 받을 경우, 온, 오프 광고를 할 수 없어 시장기회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한,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이른바 미디어 소양(media literacy) 교육이 진행되고 있으며, 가정과 학교는 게임 과몰입 예방에 매우 적극적이다. 그만큼 시장기회가 적다. 더 자세한 정보는 콘텐츠 진흥원의 보고서를 참조하시라.

3. 독일의 노동법은 정말 엄격하다

노동법도 엄격하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을 개발자에게 요구할 경우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하루 10시간이 초과되면 보통 시간당 임금은 200퍼센트로 훅 증가한다. 1년에 25일 이상의 휴가를 제공해야 함은 물론이다. 한국인끼리인데 뭔 문제가 있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직원 한 명이라도 사후에 정황증거로 부당 노동행위를 입증할 경우, 독일 법인이냐  한국 법인이냐 상관없이 회사는 적잖은 피해를 입는다. 노동시간, 휴가 등을 고려해서 4명이 할 수 있는 일에 5명, 8명이 할 수 있는 일에 10명의 노동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4. 겨울철도 문제

해가 짧아지는 겨울철도 문제다. 10월부터 2월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은 햇살이 따스한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터키 등지로 워크샾을 가야 노동생산성이 유지된다. 물론 미리미리 예약하면 제주도 워크샵 비용 정도가 발생하니 비용 걱정을 크게 할 필요는 없다.

5. 생활과 문화도 생각해보자

직원들 생활도 문제다. 매일매일 유럽여행 온 기분을 만끽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주일에 최소 1~2회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어야 취미가 된다. 작은 정원을 꾸미든, 요리 커뮤니티, 와인 커뮤니티 등에 참여하든, 운동하든, 목공을 하든, 사회단체 봉사활동을 하든 뭐든 정기적으로 하는 취미가 있어야 독일인들과 함께 생활하기 수월해진다. 사람들과 만나 매번 게임 개발 이야기만 할 수 없지 않은가.
식당에서 뭘 주문해도 일반적 한참 이후에야 음식이 나오고, 집에 인터넷을 주문해도 1주일 정도 걸리고, 뭔가 일을 하려고 해도 한국에 비교하면 한참 느리다. “빨리, 빨리”에 익숙한 우리에게 여간 답답한 일이 아니다. 인건비가 높은 것이 주원인이다. 그러나 나의 노동력이 소중하듯 상대방의 노동력을 존중하자는 마음가짐을 먹으면 이러한 문화도 적응할 수 있다.

6. 시장 탐색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게임 개발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중간중간 독일 퍼블리셔 뿐 아니라 다양한 유럽국가의 퍼블리셔를 만나면서 시장을 탐색해야 한다. 동유럽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자주 방문하며 파트너를 만들어야 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특히 이 두 나라는 남아메리카 시장의 교두보다.

7.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생각해야

게임으로 이익을 거두면 독일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 삼성전자는 2000년대 초반 약 7천만 유로를 베를린 시 정부로부터 보조금으로 받기로 약속을 받으며 구동독의 TV 브라운관 공장을 저가로 인수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보조금 지급기간이 끝나자마자 2008년 동유럽으로 공장을 옮겨 비판의 뭇매를 맞았다(참조기사). 한국 기업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을 독일사회에 남긴 것이다.
게임 개발팀/회사가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이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니 단기간에는 게임 프로젝트에 지원되는 보조금이 이득이 될 수 있으나 반드시 유럽 시장에서 사업적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자.

디지털 유목의 시대… 가자! 독일로!

다른 생활권에서 이질적인 문화환경에서 살아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디지털 유목민(노마드)의 시대이지 않은가. 게임이 4대 악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하듯 가정과 학교의 일까지 대신하겠다는 이 상황에서 독일은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자, 독일로!
후대는 우리의 선택을 한국판 메이플라워호로 기록할 것이다. 4년 후쯤 라인강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서로 만나 떠나온 한국의 겨울을 이야기하자. 그리고 재외국민도 투표권이 있음을 잊지 말자.

글 : 베를린로그
출처 : http://goo.gl/c92GoL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