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우리가 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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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포스트에서는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 왜 새로운 화폐 시스템이 출현할 수밖에 없는지 논의했다. 이번에는 시대가 요구하는 대안으로 비트코인을 다룰 것이다. 비트코인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글에서 비트코인은 답이 아니라 ‘현상’이니 안심하기 바란다.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화폐(거래시스템)가 진화하는 방향을 짚고 그 흐름을 해석하는 것이 목적이다.

처음에는 네트워크 현상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비트코인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어떻게 이렇게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한몸에 설명하는 시스템이 있는지 놀라웠고 한번은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내용을 파면 팔수록 미궁에 빠졌고 모든 이슈는 서로 네트워크로 얽혀 있었으며 구조는 상상을 초월하게 정교했다. 이런 과정에서 도출한 하나의 사실은,  비트코인은 이전 화폐 시스템과의 완전한 결별이며, 그 자체가 ‘유기체’라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지금부터 3가지 관점에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첫째, 비트코인에서 화폐가 노드가 아닌 ‘링크’가 되는 현상(여기서 문제의 핵심이 시작된다)을 알아본다. 둘째, 거래가 단발적인 1:1 관계가 아니라 왜 ‘연결’의 연속인지(여기서 네트워크 기반이 정립된다)살펴볼 것이다. 셋째, 이런 네트워크에서 우리들 각자가 어떻게 협력하여 은행이 될 수 있는지(여기서 자생적 네트워크가 발전한다)설명하고 시사점을 정리하도록 하겠다.

1. 비트코인은 노드가 아닌 링크다(Bitcoin as a Link)

백원, 천원 하는 돈이 링크라니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말인가? 돈은 받아서 손에 쥐고 주머니에 넣고 하는 것인데, 그게 네트워크의 링크라니 말이 되는가? 납득이 어렵겠지만 그렇다. 비트코인에서는 코인이 (노드가 아닌) 링크가 됨에 따라 기존의 화폐 시스템과 근본적인 차이가 생긴다. 이것은 조개에서 금으로, 금에서 종이, 종이에서 데이터로 화폐를 상징하는 컨테이너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화폐의 개념 자체가 바뀌는 근본적인 문제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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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항상 송신자와 수신자 관계를 내포하며, 비트코인을 보낸다(지불한다)는 것은 신규의 비트코인을 2번 발행(To 수신자, To 나)하는 것과 같다. 비트코인은 From과 To를 내포하는 ‘링크’인 것이다.

비트코인 거래에서는 코인과 거래가 1:1로 매핑이 된다. 즉 거래횟수만큼 비트코인이 새로 생성되는데, 비트코인 거래를 할 때마다 여러분이 코인을 발행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위의 스키마를 보면서 하나씩 살펴보자.

내가 1비트코인을 가지고 있는데 판매자에게 0.7비트코인을 지불하는 경우이다. 보통은 내가 가진 만원에서 7천원 내고 3천원을 거스름돈으로 받는 것을 떠올릴 것이고 왜 새로운 비트코인의 발행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갈 것이다. 그런데 비트코인에서는 이 거래를 완료하기 위해 두개의 코인이 새로 만들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하나는 내가 판매자에게 보내는 액면 0.7 비트코인(BTC) 코인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액면 0.3BTC 코인이다. (이 거래가 이뤄지면 내가 가지고 있던 1 비트코인(BTC) 코인은 폐기된다.)

이때 0.7비트코인은 누가 보냈고 어디로 갔는지 즉 수신자와 송신자 관계를 반드시 내포하게 되어 있다(편지나 부동산 등기를 떠올리면 된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에서는 금액이 같다고 해도 같은 코인이 아니다. 설령 내가 친구에게서 0.7비트코인을 받아 판매자에게 0.7비트코인을 보낸다고 해도 이 둘은 다른 코인이 되는 것이다(From 친구 To 나 ≠ From 나 To 판매자). 송수신 관계 없이는 코인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코인은 ”(보내는) 비트코인 주소와 (받는) 비트코인 주소를 연결하는 (가중치를 가진) 링크”라고 정의될 수 있다. 코인이 링크가 되는 순간 화폐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지금부터 설명하는 거래의 투명성, 거래 중재의 분권화, 시스템의 유기적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2. 비트코인은 비트코인의 연결이다(Bitcoin as a Network)

비트코인이 링크라는 것도 충격적인데 비트코인이 비트코인의 연결이라는 것은 또 무슨 말인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비트코인의 정의를 환기할 필요가 있다.

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은 코인 소유주의 디지털 서명의 연결(chain of digital signature)”이라고 정의하였다[Sathoshi Nakamoto,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 2008]. 디지털 서명이란 공개키 암호화를 기반으로 문서의 송신자(그리고 문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으로(자세한 내용은 비트코인의 주소, 거래, 그리고 지갑을 참조), 비트코인 맥락에서는 비트코인을 보낸 사람(from)을 확인하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비트코인 거래란, 보내는 사람(from)이 자신의 코인에 받는 사람의 주소(to)와 발행금액을 더하고, 여기에 보내는 사람이 디지털 서명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단순화를 위해 해시 과정은 생략한다). 받은 사람은 디지털 서명을 확인하여 코인의 진위 여부를 판단한다.

다음 그림은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는 상황을 보여준다(이해를 돕기위해 1개의 코인으로 1개의 새로운 코인을 생성하는 경우를 나타냈다. 실제로는 2개 이상의 코인으로 2개의 새로운 코인을 생성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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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은 디지털서명의 연결이다. 내가 받은 비트코인은 이전 사람(그림에서는 내 친구)이 받은 비트코인에 이전 사람의 디지털서명이 더해진 덩어리이다. 내가 제3자(그림에서는 판매자)에게 코인을 지불할 때도 내 서명이 더해지는데, 이 디지털 서명들의 기록이 모두 누적된 상태로 거래가 계속 이뤄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비트코인은 이전 비트코인(거래)을 포함하고, 이전 비트코인은 그 이전 비트코인(거래)을 포함한다. 결국 비트코인은 과거의 거래기록을 온전히 포함하는 거래의 네트워크인 것이다. 예를 들어 친구가 준(즉 from 친구 to 나) 액면 1 비트코인(BTC) 코인을 10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면 이 10개의 비트코인은 전부 각자의 히스토리를 기록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모든 비트코인이 과거의 거래를 포함한 네트워크가 됨에 따라 거래는 투명해지고 끝까지 추적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얼마 전 비트코인 거래소 ‘비트인스턴트(BitInstant)’의 CEO 찰리 슈렘(Charlie Shrem)이 비트코인 불법 거래로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실크로드라는 불법 마약거래 사이트 사용자들에게 백만 달러 이상의 비트코인을 판매했을 뿐만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마약 거래에 참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 이 충격적인 사실은 비트코인이 네트워크이기 때문에 밝혀진 것이기도 하다. FBI는 실크로드 사이트 관련 모든 자료를 압수수색했는데 그 안에는 비트코인의 모든 거래 관계가 낱낱이 남아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슈렘을 체포하는 것까지 가능했던 것이다(물론 은행장이 자금 세탁을 주도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기존 화폐 시스템에서는 돈을 주고 받으면 거래가 끝난다. 그러나 비트코인에서는 1:1 관계로 끝나는 거래가 없다. 네트워크에서 분리된 단 하나의 코인도, 거래도 존재할 수 없으며 코인이 발행되고 거래가 지속될수록 연결은 늘어나고 네트워크는 성장한다. 여기서 각자는 목적에 따라 1:1로 거래를 하겠지만 그 결과는 전체를 움직이는 요소가 된다. 이러한 속성이 화폐의 중앙집권적 구조를 통째로 해체시키게 되는 것이다.

3. 우리가 은행이다(We are a Bank)

코인이 모두 연결된 링크가 되고 거래가 (히스토리를 포함한)네트워크가 됨에 따라 우리의 역할은 매개자, 즉 이 시스템 전체를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주체가 된다. 개념적으로, 은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리적 노드로서 네트워크를 직접 움직인다. 여러분이 직접 화폐를 발행하고 거래를 승인하고 화폐의 가치를 결정하며 서로의 보안을 책임지는 것이다. 여기서 부자, 정부, 은행이라는 노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이 네트워크를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대신 참여자 전체가 은행이 된다.

참여자(매개자)의 역할

(1)화폐의 발행: 이미 설명한 바와 같다. 여기서는 거래(네트워크의 소비)가 곧 화폐의 발행이다. 비트코인의 공급량은 2천백만개로 한정되어 있지만 거래를 할 때마다 기존의 화폐를 폐기하고 새로운 화폐가 발행된다. 화폐를 주조하는 기존의 중앙은행 시스템의 역할을 모든 거래자가 나눠서 수행한다.

(2)거래의 기록 및 승인: 비트코인 채굴자가 되어 직접 거래를 기록하고 승인한다. 거래가 이뤄지면 네트워크의 모든 노드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는데, 채굴은 실제로 일어난 거래행위를 공식화하고 네트워크에 기록을 남기는 과정을 뜻한다(채굴의 목적과 쓰임에 대해서는 ‘비트코인 채굴과 선순환 구조‘ 참고). ’Proof-of-work’으로 알려진 협업 기반 거래 승인 과정이며 채굴자는 단순히 코인을 캐는 사람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강화, 지속, 확장시키는 매개자가 된다.

(3)시스템의 보안: 거래 메커니즘이 참여자 전체를 통해 분산되어 작동함에 따라 시스템 보안의 주체도 달라진다. 기존 방식은 보안을 위임받은 소수가 전체 네트워크를 책임지게 되어 있다. 은행의 보안 시스템이 선과 악(해킹)을 가려내고 악의 침입을 각종 기술을 동원해서 막는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에서 이렇게 소수가 전체 네트워크를 책임지는 방식은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반면 비트코인의 시스템은 완전히 분산된 신뢰 네트워크를 형성한다[A. Antonopoulos, “Bitcoin Security Model: Trust by Computation,” Forbes, Feb 20, 2014].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블록체인을 만들어 거래 승인에 참여하는 채굴자, 디지털 서명을 기반으로 화폐를 생성하는 거래자 등) 중에서 악이 과반수를 넘지않으면 보안이 유지된다. 누군가를 믿고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아니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는 참여자 전체가 서로의 보안을 책임진다. 협업 보안이다.

매개자가 만드는 유기적 네트워크

물론 이 3가지는 개별적이지 않고 상호의존적으로 작동한다. 화폐의 공급과 거래, 보안에 이르기까지 선순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기에 시스템의 주체가 은행에서 참여자(매개자)로 뒤바뀌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비트코인 거래만이 아니다.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는 사용자, 소비자, 거래자, 유권자가 모두 매개자가 된다. 이에 따라 사업자, 공급자, 은행, 정당 등에 집중되었던 권력이 해체되고 분산(Decentralization)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다수의 매개자가 만드는 네트워크는 유기적이다. 여기서는 화폐가 컨테이너(달러, 원화, 동전, 지폐 등)가 아니라 어디든 흘러다니고 어디서든 연결되는 링크가 될 것이다. 국경을 기반으로 화폐 단위를 나누지 않고 낱낱이 흩어진 우리가 매개자가 되어 네트워크의 전체를 움직이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소수가 시스템을 통제하고 보안하는 것은 불가능해지고 매개자 전체가 상호의존적 관계로 묶여 서로의 보안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만이 답이다. 새로운 방식의 협업 모델이다.

누가 이 모든 현상의 주인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런 협업 네트워크는 (통제 대신) 사용자의 행위에 따라 발달, 성장, 쇠태, 소멸을 경험할 것이라는 점이다. 비트코인이 그 주인공이 된다면 그것은 국가가, 기관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되는 것이다. 이 글에서 비트코인을(화폐를) ‘진화하는 유기체’라고 한 이유도 이와 같다. 지금 문제의 핵심은 시대의 상징으로서의 화폐가 이미 ‘형태변이’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오가닉 미디어 세상이 어디로 진화해 가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시그널이다.

<관련 포스트>

“[오가닉 미디어: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 세상]이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글 : 윤지영(오가닉 미디어랩)
출처 : http://goo.gl/nyti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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