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의 방문과 외부의 시각

교황이 짧은 방문을 마치고 오늘 한국을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교황의 방한은 우리 사회에 산적한 많은 문제들에 대해서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교황이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교황이 지난 짧은 시간 동안에 우리에게 보여준 것, 그리고 말한 것들은 우리 모두가 평소에 아주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들일 뿐이다.

예컨대 교황은 그 등장부터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전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경차를 타고 이동했다. 우리 국민 모두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 권위 있는 사람이 검소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감동하고 또 감명한다. 그 사실을 우리는 몰랐던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 주변에는 그걸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깊은 시름에 빠져 있었던 것을 몰랐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는 점을 몰랐던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것도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수록 그 가족들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던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그저 우리 주변에서는 그걸 알면서도 행하는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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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할머니들의 억울함과 슬픔, 그리고 분노에 대해서 우리는 지난 50-60년간 들어 왔기 때문에 무감각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분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라도 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우리는 “때때로” 느끼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저 우리 주변에는 알고 있는 것을 행하는 사람이 부족했을 뿐이다.

소박한 리더, 유머감각이 있는 리더, 그리고 주변에 억울하고 감정이 복받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사실쯤은 우리 모두 익히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이런 리더가 없었던지가 너무 오래된지라, 우리 모두 무감각해져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번 교황 방한을 계기로 나는 “외부의 시각”이 가져다주는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사실 우리 민족에게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기가 어렵게 만드는 몇 가지 시스템적인 장애가 있다. 예컨대 우리는 이념적으로 너무 갈라져 있어서 어느 한쪽의 말을 다른 한 쪽이 귀기울여 듣기 어렵다. 그리고 발전과 분배라는 지극히 극단적인 두 생각이 항상 긴장을 이루고 있어서 항상 우리 사회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특히 외부의 권위 있는 시각이 어느 정도의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내부적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는 우선순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 스스로는 돌보지 못한 사회적으로 가려진 부분에 대해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비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가 경험했던 히딩크의 리더십도 그 한 예가 아닌가 싶다. 예컨대 우리 축구계에 팽배해 있던 파벌이나 기초적인 체력과 전략의 부재 문제는 그 당시에도 모두 알고 있었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해결하지 못했던 이슈들이었다. 이런 문제들을 과감하게 해결하는데에는 히딩크의 역할이 컸다.

이런 일련의 교훈을 살리자면 우리는 외부의 권위있고 개관적인 시각을 적극 받아들일수록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는 이런 외부의 시각에 대해서 한편으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외세의 감언이설에 워낙 많이 속은 적이 있는데다가, 우리 내부적으로도 이런 외부의 권위 있는 시각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잇속만을 채운 사례가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러자면 결국에는 그 ‘권위’ 혹은 ‘객관성’이라는 것의 수준이 어느 한 성향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을만큼 강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교황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이 그동안 스스로 돌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깨닫거나, 한번이라도 뒤돌아본다는 얘기다. 히딩크처럼 적어도 4강 신화는 이루어야 한번쯤 우리가 무얼 잘못했던가 반성이라도 한번 해본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히딩크 이후에도 한국 축구의 병폐가 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권위 있고 객관적인 외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주는 가치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외부의 시각을 이용하는 사례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특히나 공무원 조직이나 경찰, 검찰, 군대와 같이 매번 이야기하는 병폐들이 사라지지 않는 조직들에서 말이다. 늘 같은 이슈들이 지적되지만, 스스로 해결하려고, 아니 스스로 해결하겠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들에게 이번 교황의 방문이 조금이나마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교황의 이번 방한 동안 나를 감동시킨 교황의 한마디를 적자면 다음과 같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의 덕목으로서 자제와 관용의 수양을 요구합니다. 정의는 우리가 과거의 불의를 잊지는 않되 용서와 관용과 협력을 통하여 그 불의를 극복하라고 요구합니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goo.gl/30c0s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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