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민의 위기관리 원 포인트 레슨 24편]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 실행으로 성공, 오비맥주

‘이제 우리는 망했다’라고 낙담을 했다. 임직원 모두가 최대 경쟁사의 공격적 움직임에 두려움과 패배의식으로 떨고 있었다. 이때 정신을 차리고 소비자와 시장 그리고 여론에 눈을 돌린 기업이 있었다. 죽을 생각을 다해 여론에 자신들의 메시지들을 전달했다. 정부기관에 호소했다. 국회와 언론을 찾아 다녔다.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낸 오비맥주의 이야기다.

2004년 초, 오비맥주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의 소주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진로 소주가 M&A 매물로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오비맥주는 초반에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어 주류시장이 어떻게 개편될 것인가를 예측했다.

당시 오비맥주를 소유하고 있던 벨기에의 인베브는 재무적 투자자들과 함께 진로를 인수하고 싶다는 의향을 보이기도 했다.

지루한 탐색전의 시간이 지나면서 공식적으로 진로 소주의 인수의향을 발표하는 기업군들이 늘기 시작했다. 유수의 그룹사들과 중견사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최초 가졌던 진로 소주의 인수의향을 접고 관망하는 입장이었던 당시 오비맥주는 맥주시장의 최대 경쟁사인 하이트 맥주의 진로 인수의향서 제출 소식을 듣고 패닉에 빠졌다.

오비맥주 내부에서는 ‘경쟁사의 소주 시장 진출은 소주와 맥주로 이루어진 국내 주류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고 분석하는 시각이 강했다. 전사적으로 ‘당시 맥주 시장 점유율 60%로 앞서가던 경쟁사가 어마 어마한 시장점유율의 소주 회사까지 인수를 하게 되면 오비맥주는 시장에서 이내 사라져 버릴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져 가기 시작했다.

오비맥주 경영진은 전문가들을 모아 경쟁사의 진로 소주 인수 가능성을 점쳤다. 당시 인수 역량을 평가한 전문가들은 경쟁사의 진로 소주 인수는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M&A 딜의 특징인 걸 간과한 것이었다.

2005년 4월 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진로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하이트맥주 컨소시엄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오비맥주에는 다시 비상이 걸렸다.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홍보, 법무, 경영자문, 전략자문 등의 전문가 그룹이 대책위원들로 참여했다.

오비맥주 경영진과 전문가들의 의견은 ‘경쟁사의 초대형 소주 회사 인수는 곧 주류 소비자 이익과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는 의견에 모두 공감했다. 오비맥주는 물론 지방 소주 회사들까지의 생존이 걸린 이슈이므로 이를 그냥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비맥주는 지방 소주 회사들과 생존적 협력을 하면서 경쟁사의 진로 소주 인수에 대하여 반대 여론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국민주인 소주와 맥주 시장에서 각각 최대 시장점유율을 가진 두 개의 회사가 합병이 된다면 시장 독과점 현상을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메시지들을 언론과 공정위등 규제기관들에게 강력하게 전달했다. 이런 집중적인 여론 환기 활동들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오비맥주는 예상되는 경쟁사의 합병이 공정거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여러 전문적인 분석 리포트도 공정위에 제출했다. 당시 공정위는 몇 달간 예상되는 국내 최대 맥주회사와 최대 소주회사의 합병에 대하여 ‘기업결합심사’를 하는 과정이었다. 공정위에서는 고민에 빠졌다.

단순한 주류 업계의 소유권 이동이 아니라 당시 인수건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에서 주류 시장의 독과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니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더 이상 아니라는 판단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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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맥주는 끊임 없이 견제 활동을 진행했다. 가용한 모든 채널들을 통해 여론 캠페인을 진행하여 경쟁사의 인수 후 상황을 ‘주류 공룡의 탄생’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치밀하게 순차적인 메시지 전파들을 통해 주류 시장에서의 공정성 확보와 소비자 이익 보호 주장을 강화해 나갔다.

2014년 7월 20일. 공정위는 하이트의 진로 인수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발표했다. 오비맥주 임직원들은 환호했다.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냈다는 안도의 환호였다. 공정위는 주류 시장의 반발과 전문가들의 지적 그리고 이에 강화된 여론을 감안하여 신중한 결정을 했던 것이다.

시장의 경쟁 제한성을 억제하지 않도록 인수와 피인수 두 회사의 모든 주류 가격 인상 범위를 향후 5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제한하고, 영업 조직과 인력을 5년간 분리하고, 거래상 지위남용 방지 방안을 마련하라는 등 4가지 시정조치를 함께 기업 결합 승인 조건으로 걸었다. 이 결과 경쟁사는 실질적인 인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 버렸다. 반대로 오비맥주에게는 기회가 온 순간이었다.

기업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여론은 기업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여론은 적일 때도 있지만 반대로 지원군도 될 수도 있다. 위기관리에 있어 여론을 잘 이해하고 최대한 활용하는 기업이 더 나은 기회를 창출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케이스다.

글 : 정용민
원문 : http://jameschung.kr/archives/1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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