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퀘어 처세작전] 박혀있는 돌을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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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과 헤드헌팅이 일상화되고 스타트업 회사가 늘어나면서 굴러온 돌 혹은 굴러간 돌의 문제도 직장인의 고민 순위 상위권에 올라가고 있다. 내가 굴러갔을 때도 문제고 누군가 이쪽으로 굴러들어왔을 때도 고민이다.

올바른 대처법이나 처세의 절차 같은 게 있다면 좋을 텐데 ‘1 + 1 = 2’ 식의 모범답안을 보고 있자니 ‘내가 몰라서 그걸 안 하는 게 아니라구’ 하는 생각만 든다. 흔히 많이들 참고하는 것이 인터넷이나 책에 나오는 재계 인사나 유명인의 검증된 일화인데 대부분 현실에 크게 도움이 되는 내용은 아니라고 본다. 그대로 잘 따라한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을 때의 불편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옛날옛날에 건실한 회사에 우수한 사원들이 모여 있었답니다. 그래서 마음씨 착한 사원 김씨는요’ 로 시작되는 동화 같은 얘기는 접어두자. 이미 돌이 박혀있던 자리에 억지로라도 비집고 들어가야 할 때가 반드시 있다. 특히 헤드헌팅이 되어 들어간 사무실에 캐릭터가 겹치는 사람이 있다면 둘 중 한 명만 링 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링 위에 올라가기 위해 링 아래에서 펼쳐지는 경쟁은 반드시 ‘선의의 경쟁’이 아니어도 되지 않을까.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뽑혀 들어간 조직 내에서의 나의 가치는 조직의 이익 창출로 이어질 때 입증가능하다. 그리고 그 입증의 기회는 링 위에 올라서야만 비로소 주어진다. 그래서 작년 이맘때 들었던 후배 한 명의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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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는 서울에 있는 대학의 경영 계열 학과를 졸업해서 IT계열 스타트업과 인터넷 웹진 창설멤버로 2년여를 보내던 중 업무관계로 알게 된 벤처기업 대표의 눈에 띄어 스카웃되었다.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후배는 기획홍보팀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어리둥절 새로운 직장과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 바빴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 점차 적응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동굴 속에서 뛰쳐나오기 직전의 맹수와 같은 시선들을 느끼게 되었다. 그럭저럭 7년 정도를 벤처의 홍수 속에서 버텨온 그 회사는 창설멤버, 외부 영입 인력, 아이디어와 스펙으로 치고 들어온 신입사원들이 성과를 놓고 싸우는 콜로세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그는 창설멤버인 여자 팀장과 사사건건 부딪힐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는 기획홍보팀에 들어가 인터넷 홍보부터 일을 시작했지만 업체관계자들과 미팅에서 호감을 끌어내고 그 호감을 바탕으로 스폰서를 몇 번 받아내게 되어 마케팅팀의 일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 팀장과는 구체적으로 뭐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미묘하게 서로 신경을 긁어대는 부분이 있어서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점점 감정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좋은 게 좋다고 처음 한 두 번은 뒤통수도 맞아주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납득가지 않는 오더도 묵묵히 받아주었으나 슬슬 부아가 치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다가도 성질이 나서 벌떡 깨고 아침에 일어나면 새벽에 그 팀장과 관련된 꿈이라도 꿨는지 화가 가라앉지 않아 씩씩대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이 팀장을 재끼거나 내 편으로 만들지 않고는 제풀에 지쳐서 내가 관두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과 체력을 사용해도 이 팀장과의 인간관계는 재끼거나 누를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얘기를 듣다가 ‘네 편으로 만드는 것은 왜 빼먹어?’ 하고 물어보자 ‘그런 건 생각도 안 해봤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팀장의 손해 볼 것 없다는 식의 밑바닥 마인드.

이를테면 이런 식인 것이다. 옷이나 넥타이를 좀 잘 맞춰 입고 가면 ‘00씨는 옷은 잘 입네? 경쟁피티 만든 거 보니까 색감은 영 꽝이던데’. 대화를 하다가 서로 의견이 안 맞아 열을 올리고 있으면 갑자기 인상을 찡그리면서 ‘00씨.. (정색하면서) 미안한데 지금 이 좀 닦고 오면 안 되나요? 입냄새 관리 같은 거 안 해요?’ 이런 식이다. 맞받아칠 수도 없고 피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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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이 후배는 열심히 술을 마시고 골프를 쳤다. 대표와 함께 말이다. (물론 정공법도 권할만한 내용도 아니지만 그냥 후배의 사례를 소개해보는 것이니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밤늦게라도 업체 사람들과 술자리가 있다면 이유 불문하고 나가서 함께 술을 마셨고 그 다음날 아침에는 어김없이 골프연습장에서 만나 운동을 하고 함께 샤워를 했다. 이런 식으로 대표와 친분이 쌓이자 상하관계라기보다는 형동생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는 팀장과 갈등이 생기거나 팀장이 팀원들에게 못되게 굴면 술 한 잔을 하다가 대표에게 서러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물론 대표가 먼저 ‘요즘 힘든 일 없냐? 괜찮아, 말해봐’라고 물어볼 때까지 기다렸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에는 회사에서도 회의나 업무 진행 중에 팀장이 사리에 맞지 않게 일을 처리한다 싶으면 곧바로 대표에게 찾아가 해결을 부탁했다. 대표는 단 둘이 있을 때 몇 번 ‘야, 그런 일은 그냥 네 선에서 처리하면 안 돼? 나도 입장이 있잖아’ 라든가 ‘그 팀장 나랑 몇 년을 일했어. 이번에는 네 편 못 들어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표라는 자리는 외로운 자리다. 업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일인자는 자기에게 의지하고 자신과 시간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법이다. 일 잘 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 넘쳐난다. 내놓고 광고를 하지 않아도 회사에 들어오기 위한 줄은 길게 늘어서 있다. 함께 바닥에서 뒹굴며 창업을 했던 멤버의 발언권이 커지고 사소한 오해도 조금씩 쌓이면서 대표는 자신의 ‘동지’들이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몇 개월이 흐른 후 마침내 형은 동생의 손을 들어주었다. 팀장을 TF 팀을 새로 만들어 직위조정을 하고 팀장의 자리를 내 후배에게 내주었다.

이전의 여자 팀장은 자신이 TF 팀으로 가야한다는 소식을 내 후배에게 처음 들었다고 한다. 후배는 대표에게 발령으로 인해 내부에 갈등이 있으면 안 되니 자신이 먼저 여자 팀장에게 잘 말해서 납득을 시킬 시간을 달라고 했다. 대표에게 말은 그렇게 했지만, 후배는 그동안 자신을 집요하게 괴롭힌 팀장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뒷얘기가 나오면 안 되기 때문에 후배는 입에 미소를 머금고 팀장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전후사정을 말했다고 한다. 탕비실에서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팀장이 ‘그건 나에게 나가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네요’ 라고 말했을 때 후배는 팀장의 눈을 3초 정도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고 한다. 속으로 엄청 떨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이 걸작인데 듣고 있던 나마저도 통쾌함이 느껴졌다.

후배는 아무 말 없이 뒤로 돌아서 탕비실의 불을 끄고 나온 후 문을 닫았고 자기자리로 왔다고 한다. 그 여자 팀장을 그 속에 둔 채로.

글: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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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람
/ elyzcamp@gmail.com

전쟁사 연구자. 뉴욕 유엔 아카이브 파견연구원(2016), 매릴랜드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2013), 워싱턴 미 육군군사연구소 파견연구원(2012),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현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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