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뿔난 5년 – 벤처스퀘어 CEO가 드리는 편지

어르신들이 “모나게 행동 마라. 정 맞는다”했어요. 남들 하던대로 하라고, 그게 안전하고 편하다고 하신 말씀이죠. 세월호의 트라우마로 인해 쓰라린 느낌으로 다가오는 “가만히 있어라”란 말과 같았습니다.

5년 전 봄. 저는 벤처스토리(당시 이름이었습니다) 사업 기획서와 사이트 시안을 들고 한 기관을 찾아갑니다. 협업하고 싶어서였죠.

기관 담당자가 그랬어요.

“네? 벤처? 이사람도 참, 중뿔나게 지금이 어떤 시대라고 벤처야? 1인 창조기업이라면 모를까.”

중뿔난 짓을 하고 있었던 거에요. 다들 그렇게 말하니 그런 거겠지요. 그렇게 중뿔나게 시작했어요. 벤처스퀘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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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2009년 막강한 소셜 파워를 자랑하던 친한 블로거와 술을 마시다 이러는 거에요. “왜, 우리나라에는 테크크런치 같은 게 없냐”

속으로 생각했지요. “여긴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니까… 누가 중뿔났다고 그런 걸 하겠어” 하지만 그 생각에 이어 “어차피 아무도 못할 거면 우리가 해봐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같이 시작해봅시다”라고 했지요.

현재 벤처스퀘어 공동대표인 버섯돌이님이 준 영감으로 시작된 벤처스퀘어.

어떻게 시작할지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절대 작동할 수 없는 수익 구조, 벤처 암흑기, 지나치게 협소한 시장,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데이터베이스, 인사이트 부족한 글쟁이들… 우리가 원하는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직원을 고용해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불가능해보였습니다.

 

발상..

하지만 스스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했고 “안 될 건 없지”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 기자가 꼭 있어야 해? 스타트업 종사자나 관계자가 스스로 쓰고 기고하면 안 돼?
  • 미디어는 꼭 광고로 돈 벌어야 해? 행사나 교육으로 벌면 안 돼?
  • 돈이 없다고 투자 못해? 조금씩이라도 투자하는 트렌드를 만들고 나라도 개인적으로 앤젤하면 되는 거 아냐?
  • 성공한 창업가만 후배 창업가를 도울 수 있는 거야? 나 처럼 전문 영역에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어?
  • 저널리즘과 미디어가 같아? 아니잖아. 저널리즘은 개인적으로 하고 업계를 돕고 응원만 하는 역할만 하면 안 돼?

 

가설..

이런 고민에서 ‘안 될 건 없지’라는 결론은 곧 ‘그럼 이렇게 해보자’는 생각까지 치닫습니다. 이른 바 가설이죠.

  • 필진들을 많이 모으자, 돈을 받고 글쓰는 사람이 아닌 정말 스타트업에 애정을 듬뿍 담은 진정한 도우미들의 글만 모아도 될 거다.
  • 사이트는 기술자도 없고 디자이너도 없으니 조력을 받되 운영이 편리하도록 티엔엠미디어에서 담당하게 하자.
  • 행사나 교육을 진행하려면 아무래도 돈이 필요할테니 최소한의 자본금을 모아서 시작하자.

 

What is the VentureSquare from VentureSquare 2010년 오픈업 당시 벤처스퀘어 초기 기획 발표 자료. 지금도 변함 없이 하기로 했던 일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실행..

가설이 세워졌으니 본격적으로 세상에 우리 이야기를 하러 떠나 봅니다. 일단 사이트부터 만듭니다. 그게 5년 전 오늘, 4월 1일이었습니다. 거짓말 같이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거들떠도 보지 않던 벤처와 스타트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비즈니스 미디어가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 됩니다.

그리고나서 몇 장 짜리 시덥지 않은 PPT가 담긴 노트북을 들고 ‘팀세팅’을 위해 길을 떠납니다. 주변의 블로그와 이야기를 하고 여러 지인들과 이야기합니다.

스타트업을 자신들의 특기나 전문성으로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 6명을 우여곡절 끝에 파운더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5,000만원의 자본금도 모읍니다. 지분은 거의 1/n 로 나눠놓았습니다. 마치 위원회 같은 모습의 어정쩡한 주식회사가 탄생되었고 운영이나 경영의 원칙도 전략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지요. 어차피 1년에 1,500만원씩 쓰다가 3년째 털고 빠질 생각도 했습니다. 한국 최초의 스타트업 전문 미디어이자 스타트업을 돕는 행사, 교육, 액셀러레이션, 투자를 담당하게 될 구심점이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2010년 9월의 일입니다.

법인을 덜컥 만들고 실무를 담당할 직원을 티엔엠미디어를 통해 뽑고 팀블로그 처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도 오프라인 행사를 연이어 개최합니다. 오픈업 세미나, 오픈 리쿠르팅 데이, 스타트업 워크숍, 모바일창업코리아 행사를 만들어 스타트업을 무대에 세웁니다. 즐겁고 재미있었습니다. 신났어요. 누가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도와주던 말던 우리는 그냥 실행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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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어요. 벤처스퀘어를 보육(?)해주던 모체가 흔들렸습니다. 자금압박과 사업 실패가 이어졌고 구조조정을 해야 했습니다.

대표인 저는 스스로 티엔엠미디어 대표에 사임서를 내고 수억원의 연대보증을 떠안은 채 벤처스퀘어 하나 건져 나옵니다. 전 회사에 부담이 될까봐 직원 세 명도 함께 데리고 나왔죠. 예상보다 자금 소진이 빨라서 제 월급을 안 받아도 직원들에게 줄 급여가 두 달치 잔고로 남아 있었습니다.

포털을 찾아갔습니다. 제가 스타트업의 인터뷰를 일일이 진행해서 글을 주겠다. 후원을 해주든 원고료를 주든 포털 기사로 받아주든 해달라 했습니다. 보기좋게 거절당했지요. 벤처스퀘어는 인터넷신문도 아니고, 스타트업은 아무도 찾지 않는 글이라며. (솔직히 울컥했어요. 연예인 가슴골 기사보다는 낫지 않나요?)

 

불가능..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것은 직원들의 마음이었습니다. 티엔엠미디어로 들어와서 뭔가 해보려다가 생뚱맞은 이상한 매체에 옮기게 되고 이 매체는 돈을 벌 어떠한 방법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대표가 물었죠. “혹시 우리 수익모델로 홍보대행사라도 할까?”

직원들이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그리고 말하죠. “그냥 인맥 좋으시니 어디서 장기 후원이라도 받아오시면 안 돼요? 우린 그냥 재단이나 사회적 기업 처럼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닐까요?”

대표는 돈 버는 방법을 모르고 있고 직원들마저 이 회사의 정체성을 마치 남에게 봉사하고 퍼주는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다니요.

이 회사, 제대로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요?

 

동아줄..

일이 안 되다가도 잠깐 반짝이는 불빛이 보이기도 합니다. 중소기업청에서 액셀러레이터 지원사업이란 정부 사업이 나왔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정부 사업에 지원서를 직접 작성해서 제출합니다. 1.5명 정도의 인건비가 해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모 대기업의 멘토링 프로그램 컨설팅을 맡게 됩니다.

파운더 가운데 르호봇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박광회 대표님이 최초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고 1명의 인건비가 어떻게 되냐고 물으시더니 그만큼을 연간 광고비로 집행합니다.

 

생존..

부끄럽지만 이 때부터 갖고 있던 부채, 지분 정리를 위해 구주를 인수할 때 사용한 자금,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친듯이 방송, 진행, 멘토링, 강의, 강연을 뛰어다닙니다. 회사 부족한 자금도 때때로 사비로 메워야 했지요. 알아요. 하던 일에 집중하라며 핀잔을 주던 어른들의 질책들. 그러나 일단 생존해야 뭐든 해보지요.

남 앞에 떳떳하기 위해 어렵다는 티도 내지 못하고 손도 못 벌리고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증에 친한 사람들에게도 손을 벌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증자 두 번이 있었고 외부 투자도 진행해봤지만 돌아오는 소리는 “돈 못 벌 거 같은데”였습니다. 벤처캐피털로부터 수억 수십억씩 투자 받는 스타트업을 도와주지만 정작 우리 같은 새로운 모델은 개차반이었어요.

“월급을 밀리면 대표는 범죄자가 된다”는 강박은 더 일중독에 빠트렸고 더 많은 일을 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더 많은 부담을 갖고 사람을 늘려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본질에서 벗어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을 돕고 스타트업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판단되면 손해를 무릎쓰고, 우리 이름을 감추고, 철저히 을의 입장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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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2년 동안 마이너스 기간을 거쳐 2012년 3억원, 2013년 5억원, 2014년 21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약간의 영업이익을 냈고 이 영업이익 이상으로 투자를 하고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했습니다. 네. 투자하고 쓰기 위해 악착같이 벌었습니다.

 

8개월 동안 진행된 2014년 글로벌 액셀러레이션 사업, 스타트업 노매드 프로그램 요약 영상. 이 프로그램을 통해 8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4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습니다.

변곡점..

이제 벤처스퀘어라는 브랜드는 그대로이지만 조직을 분화하려 합니다. 미디어는 미디어대로 그 역할에 맞는 발전 모델을 찾기 위해 분사 작업에 들어갔고 액셀러레이터인 벤처스퀘어는 자체 앤젤 펀드를 조성해서 스타트업에게 실질적인 투자와 조력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TIPS 캠퍼스로 이전해가는 것 역시 스타트업들과 더 얼싸안고 뒹굴러 가는 겁니다.

중뿔난 벤처스퀘어 5년. 해놓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이 더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은 그보다 더 많고 큽니다. 우리가 이루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못할 것도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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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어렵지만 떳떳했습니다. 하지만 뻔뻔하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뒷돈 대주는 물주 하나 없이 우리 팀원들이 죽도록 노력하면서 생존했고 그러면서도 스타트업을 돕기 위한 일념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이 저희를 도와주세요.
저희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를 후원해주세요.
광고(ad@venturesquare.net)도 해주시고 뉴스레터에 가입해주시고 저희 하는 일에 비즈니스 파트너도 되어주시고 호스팅비라도 내도록 소액후원(우리은행 1005-002-316729 (주)벤처스퀘어)도 해주세요. 필진도 되어주시고 저희가 진행하는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해주세요.

오래 전에 벤처스퀘어 뉴스레터에 가입한 회원이 남긴 말씀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존재만으로도 감사합니다” – 벤처스퀘어는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링블로그-그만의 아이디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어렵지만 버티겠습니다. 뭐 중뿔났다고 굳이 사서 고생하는 스타트업 여러분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저희와 함께 버텨주세요.

대한민국 중뿔난 스타트업 화이팅!

 

~ 여러분과 함께 개고생중인 벤처스퀘어 창업자, CEO 명승은

그만은 기록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과거에 쓴 글은 당시의 생각이 담겨 있고 이후에 변화된 상황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지요. 벤처스퀘어 초기에 썼던 내용도 소개합니다.

2010/03/13 신생 벤처 에코시스템을 위한 준비
2010/05/31 벤처스퀘어, 7월 독립법인으로 정식 출범
2010/12/06 3無 언론사에 대한 단상
2011/07/18 벤처스퀘어 오픈 리쿠르팅 데이를 마무리하며
2011/08/29 벤처스퀘어 1주년을 축하해주세요
2013/04/14 “평생 글 쓸 수 있는 환경을 직접 나서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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