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서울디지털포럼을 만드는 이정애 SBS 차장

지난 5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SBS 주최 제12회 서울디지털포럼(SDF)이 개최되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을 잇는 통로인 웜홀 이론을 세상에 소개한 킵 손 박사를 비롯하여 전 세계 석학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글로벌 유명 인사들과 접촉하여 강연을 성사시키는 섭외 능력이 놀라웠지만, 이러한 비영리포럼의 장을 공공 기관도 아닌 국내의 민영방송사가 매년 만들어오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필자는 지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서울디지털포럼의 실무를 담당해온 이정애 SBS 차장을 만나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였다.

이정애 SBS 차장(42)

Q. 서울디지털포럼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보도국 내 중장기 이슈를 다루는 미래부 개설

서울디지털포럼은 2004년도에 첫발을 내디딘 비영리 글로벌 포럼이다. 우리는 방송 서비스를 통해 이윤을 남기는 미디어 회사인 동시에 전파라는 공공재를 빌려 쓰는 지상파 방송사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우리도 자연스럽게 사회에 무언가를 돌려줘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또한, 우리는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한 최초의 방송국이기도 하다.

‘미디어 기업으로서 다른 언론사와 다르게 뭔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했고, 그 결과 보도국에 ‘미래부’라는 부서를 조직하여 ‘서울디지털포럼’과 ‘미래한국리포트’라는 두 포럼을 만들게 되었다. 이를 통해 한편으로는 기술이 우리 사회와 미디어를 어떻게 바꿔나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부나 기업이 아직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이슈라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3~5년 후를 내다보았을 때 고민해보아야 하는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시청자를 기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대중이 고급 콘텐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식 나눔을 전파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는 판단에서였다.

Q. 전 세계 석학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섭외 비결이 궁금하다.

■ 방대한 사전 조사와 연락 가능한 네트워크 총동원

비영리포럼 성격상 에이전시를 통해 섭외하지는 못한다. 각 분야의 전문가 50여 명을 인터뷰하고 팀 내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주제와 주제에 맞는 연사를 선정한 후 직접 초청한다. 협찬사가 항공권 할인이나 행사 비용 협찬을 해주고 있지만, 다른 미디어사의 포럼처럼 연사들에게 비싼 강연비를 드리지도 못한다. 어떻게 보면 열악한 조건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연사 섭외 시 우리의 진정성을 충분히 호소할 수 있는 준비를 해나감으로써 극복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전 세계 트렌드와 경제 전망, 섭외하고자 하는 연사에 관한 폭넓은 공부를 하고 접촉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총동원한다.

우리 팀의 장점은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라는 점이다. 엉뚱한 아이디어라도 편하게 이야기를 꺼내고 거부감 없이 대화하며, ‘맞다, 틀리다’에 관한 치열한 토론을 진행한다. 부장한테 직급이 가장 낮은 직원이 강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걸 보고서는 처음 우리 부서에 오는 사람들이 당황해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 올해의 포럼 주제를 정하는 데에만 해도 5~6개월이 걸린다. 이후 주제에 적합한 연사를 섭외할 때에도 해당 연사들에게 그냥 이야기를 꺼내는 게 아니라 당신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고 느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초청한다. ‘과거에 어떤 기사를 보니까 이런 이야기를 했고, 이런 책을 썼는데, 왜 올해 서울디지털포럼에 당신이 와서 강연해야만 하는지’를 설득하며 연락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다.

2007년 우리 팀에서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을 섭외할 때의 이야기이다. 기본적으로 구글 본사에 공식적인 초청장을 보냈다. 그리고 그의 지인들과 실리콘밸리에 있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외국지사 직원분들에게 연락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서울디지털포럼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에릭 슈미트 회장이 최초로 한국 땅을 밟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사진제공=SBS

Q. 올해 포럼 주제는 ‘깨어 있는 호기심: 새로운 돌파구를 찾다’였다고.

■ 다음 시대로 가는 돌파구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느낌

2004년도에 진행했던 제1회 SDF의 주제가 ‘컨버전스 혁명’이었다. 그때는 기술의 발전이 눈에 띌 정도였고, 결과물 또한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기술의 진보가 조금씩은 있지만 약간 주춤하는 단계에 와 있다는 느낌이다. 미디어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괄목할만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시청패턴, 콘텐츠 등 전반적인 부문에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느껴지지만 전 세계적으로도 ‘이거다.’ 싶은 돌파구가 보이질 않고 있다.

‘이다음을 어떻게 찾아야 하나?’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써 ‘호기심’을 주제로 정했다. 그럼 왜 그냥 ‘호기심’이 아니라 ‘깨어있는 호기심’이라고 했나? 요즘은 나만 잘살면 되는 시대가 아니라 다 같이 잘 살아야 하는 시대이다. 환경 문제를 비롯하여 모두가 촘촘히 엮어있기에 모두를 생각하지 않고는 파괴적 혁신을 이뤄 낼 수 없다. 그래서 ‘깨어있는 호기심’이 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지금보다 더 여건이 어려웠던 60년대에 끊임없는 호기심을 통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웜홀 이론을 도출한 킵 손 박사를 대표 연사로 떠올렸다. 미디어 분야에서는 ‘버즈피드’ 같은 새로운 미디어뿐만 아니라 전통 미디어에 속하는 ‘뉴욕타임즈’, ‘BBC’ 소속 연사를 초청하여 미디어 산업이 당면한 문제를 공유하고 돌파구를 모색하고자 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였다.

서울디지털포럼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실험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단순히 해야 할 일,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정도의 애정을 갖고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달 포럼을 앞두고도 일주일 전부터 팀원 모두가 서너 시간밖에 못 자고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할 정도로 열정을 다해 포럼을 준비했다. 특히 올해 포럼은 우리 부서를 뛰어넘어 제작본부, 보도본부 등 전사적인 지원을 통해 제대로 꽃 피운 행사였다. ‘종합예술이구나.’ 싶을 만큼 전체적으로 화합이 잘 되었고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해였다.

Q. 그간 서울디지털포럼의 성과

■ 네트워킹의 장을 마련하여 사람들 간의 연결 고리 역할

서울디지털포럼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를 찾아올 기회가 없을 연사들을 초청하여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두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SDF를 계기로 연사들이 국내 기업 및 일반 대중과 대면할 기회를 창출했다는 점을 가장 첫 번째 성과로 꼽고 싶다.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2007년도에 열린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처음으로 ‘스트리트뷰’를 선보이며 모바일 서비스 분야로의 사업 확장 계획을 내비쳤고, 당시 국내에 머물면서 삼성전자 임원과 활발한 만남을 가졌다. 서울디지털포럼이 구글과 삼성전자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셈이다. 올해 같은 경우에는 인공지능 쪽의 대가 프랜시스코 비코, 미샤 베놀리 등 포럼 이후에 인공지능에 관심 있는 일반인과 미트 업(Meet Up) 행사를 할 수 있게 주선하기도 하였다. 또한, 탐사보도 전설로 꼽히는 로웰 버그만 UC 버클리 대학 특훈석좌교수는 방송기자연합회와의 간담회를 통해 선배 기자의 입장에서 국내 기자들에게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탐사보도를 지속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하였다.

이외에도 서울디지털포럼 속에서 다뤄지는 콘텐츠와 연사의 수준에 대한 관리에 신경을 쓴 결과, 폐막식이 진행되는 순간까지 참가자들로 가득 차 있는 행사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포럼을 지켜보는 모든 이들에게 학습과 영감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목표하에 세션 하나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관여하는 편이다. 이를 위해 연사에게 다른 곳에서 꺼낸 적 없는 신선한 이야기나 아시아를 염두에 둔 이야기를 요청하기도 한다.

Q. 연사들이 했던 얘기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 앨 고어 前 미국 부통령과 글로리아 스타이넘 여성운동가

2004년 포럼에 앨 고어 前 미국 부통령이 왔었다. 그는 그동안 16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함으로써 인류의 인쇄 혁명을 이끈 줄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14세기에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된 금속활자로 직지심체요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서울디지털포럼에 와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 참석하는 모든 행사에서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라고 언급하는 것을 보면서 참 자랑스러웠다.

2011년 포럼에 연사로 참여했던 여성운동계의 대모, 글로리아 스타이넘 여성운동가도 기억에 남는다. 무척 유명한 사람이지만 섭외하기 어렵기로 소문이 난 분이었다. 어떻게 서울디지털포럼의 초청을 승낙했는지를 묻자 그녀는 “‘미래부’라는 부서가 있는 미디어 기업이 있다는 것 자체에 감명을 받았다. 미국 미디어 대기업을 다 둘러봐도 그런 부서는 없었다. 남보다 앞서서 미래를 고민하는 것에 감명을 받아 오게 되었다.”고 했다.

서울디지털포럼은 기본적으로는 T.I.M.E. 분야라고 해서 테크놀로지, 인포메이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가 우리의 주 관심 분야이긴 하지만, 과학이나 여성학, 철학 등 인문학이나 순수 과학 등 다른 분야와의 융합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팀 버너그-리 월드와이드웹 창시자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도 우리 주요 연사지만 올해의 킵 손 박사 같은 세계적인 물리학자나 마지막으로 달에 발을 디뎠던 유진 서난 전 나사 아폴로 17호 선장, 알랭 드 보통 같은 철학자 겸 베스트셀러의 저자도 우리의 주요 연사이다.

Q. 끝으로 하고 싶은 말

■ 양질의 콘텐츠를 일 년 내내 전달할 계획

서울디지털포럼 10주년이었던 2013년도에는 초청으로 운영되는 포럼 방식을 허물었다. 일반인도 관심만 있다면 사전 온라인 참가 신청을 통해 포럼을 관람할 수 있게 오픈한 것이다. 2013년 이전이 오피니언 리더를 중심으로 한 포럼이었다면, 이후에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이는 정보통신기술과 미디어 분야의 변화 흐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집약적으로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소통과 공감 측면에서 포럼이 더욱 풍부해지더라.

TV 생중계를 통해 개막식과 기조연설, 행사 하이라이트 부문을 방송할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션들을 온라인상에서 누구나 시청할 수 있게 하였고, 올해는 네이버와의 제휴를 통해 온라인 생중계를 진행했다. 자신의 업무 분야가 아니더라도 쉽게 접할 수 없는 콘텐츠가 많아 다양한 영감을 받을 기회라 생각된다. 기회가 되면 PC나 모바일로 한 번쯤은 시청해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우리 팀이 미처 생각지 못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어떤 연사를 만나고 싶은지, 어떤 주제로 소통해보고 싶은지에 대한 많은 조언을 부탁드린다. 서울디지털포럼을 여러분 모두와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다.

앞으로는 연 1회 오프라인 행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1년 내내 이슈를 생산하고 타 방송 프로그램에 연계하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진화하는 서울디지털포럼을 지켜봐 달라.

글: 안경은
원문: http://goo.gl/xvpn4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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