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스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2013년 8월 다음의 임선영본부장에게 “스토리볼에 우아한 형제들의 김봉진대표 글을 싣고 싶은데 소개 좀 부탁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알았다고 하자 “정욱님도 한번 써보시면 어떠냐”는 답장을 받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서 가볍게 10편정도 라이코스에서의 경험을 써보려고 했던 것이 ‘한국 vs 미국직장 1mm 차이‘ 스토리볼 연재가 됐다.

10편에서 20편, 20편에서 30편까지 연장하며 매주 2편씩 쓰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급히 쓰느라 엉성하게 쓴 글이 대부분이었는데 편집자인 민금채님의 노력과 감칠맛 나는 박소라님의 일러스트 덕분에 분에 넘치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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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09년 2월 역시 다음CEO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최세훈대표로부터 라이코스CEO 발령을 받았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를 2006년 다음으로 인도한 석종훈대표의 사임이후 내 다음내부에서의 진로에 대해 “그만둬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다음에서 서비스혁신본부장, Daum Knowledge Officer, 대외협력본부장을 거쳐 글로벌센터장을 맡고 있었다.

글로벌이라고 해도 당시 다음은 일본과 중국지사를 닫고 라이코스는 경영난에 빠져있는 상황이라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따로 면담 몇번 한 것이외에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최대표가 나를 라이코스대표로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라이코스가 잘 나가던 97년도의 Annual Report표지. 넷스케이프와 비슷한 시기에 IPO를 하면서 닷컴붐의 선두주자였던 원조글로벌포털이었다.
라이코스가 잘 나가던 97년도의 Annual Report표지. 넷스케이프와 비슷한 시기에 IPO를 하면서 닷컴붐의 선두주자였던 원조글로벌포털이었다.

다음이 2004년 당시 1억불을 주고 인수한 라이코스는 다음에게 있어 애물단지나 다름 없었다. 매년 수백만불의 적자를 내면서 네이버와의 경쟁에 힘겨워하는 다음의 뒷다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직항편도 없는 보스턴에 위치한 회사를 원격으로 다음이 경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미국동부와 서울의 시차가 14시간이 나고 서로 업무시간이 겹치지 않는 탓에 양사의 커뮤니케이션조차 쉽지 않았다.

2008년 가을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붕괴이후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로 당시 분위기는 흉흉했다. 미국의 실업율은 두자리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내가 라이코스 발령을 받은 당시에도 라이코스 직원 20여명을 구조조정하는 논의를 진행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이코스에 CEO로 가는 것 자체가 사실 두려운 일이었다. MBA학위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2년간 유학한 것 외에는 미국에서 제대로 일해본 경험이 없는 내가 과연 미국 회사를 맡아서 꾸려갈 수 있을까. 더구나 나를 도와주는 다른 한국인직원과 팀으로 같이 가는 것도 아니고 홀로 가는 단신부임이었다.

당시 다음의 윤석찬님은 “정욱님, 이건 축하할 일이 아니죠? 구조조정하고 회사 문닫으러 가시는 것인가요”라고 내게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한번은 더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잘 된 것 아닌가. 실패해도 최소한 영어회화 수업은 잘 받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아닌가 하는 좀 유치한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나서 라이코스 CEO로서 지난 3년간은 정말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다. 경영상황은 호전됐지만 그안에서 여러가지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겼다. 대충 3년간 벌어진 주요한 일은 다음과 같다.

2009년

  • 20여명 구조조정.
  • 4가지 큰 법률소송중 3개는 합의. 1개는 패소. 2백50만불을 배상.
  • 15년 라이코스 역사상 첫 흑자 달성. (매출 약 2천4백만불 EBITDA 약 50만불)

2010년

  • 라이코스를 인수하겠다는 Ybrant라는 인도회사와 회사 매각협상 진행.
  • 옐로북과 연간 1천2백만불 매출 계약 체결.
  • 라이코스를 3천6백만불(4백20억)에 Ybrant로 매각 발표.
  • Ybrant는 인수대금을 현금으로 2백만불만 지불.
  • 나머지 인수대금은 라이코스의 2010년 경영성과에 따라 정산하기로 합의.(Earnout딜)
  • 라이코스를 인수한 Ybrant 이스라엘 자회사의 지휘하에 라이코스 경영 시작.
  • 8백여만불 흑자 달성. (매출 약 2천9백만불)

2011년

  • 회계감사 결과 2010년의 예상보다 높은 흑자로 최종인수가가 약 600억여원가량으로 산출.
  • 매각발표금액보다 약 200억원이 더 높은 가격.
  • Ybrant와 다음간에 최종 인수가 관련한 분쟁이 갈등이 발생.
  • 다음이 Ybrant를 뉴욕법원을 통해 소송.
  • 다음은 Ybrant가 라이코스의 현금을 마음대로 빼갈 수 없도록 TRO(일종의 가처분조치)를 뉴욕법원에서 받아냄.

2012년.

  • Ybrant는 2월에 급거 이사회를 소집해 임정욱 CEO를 해임.

이후 2년간의 지리한 법정공방후 2014년 5월 싱가폴에서 열린 중재재판에서 다음은 Ybrant에게 99.9% 승소했다. 하지만 밀린 매각대금 4백여억원은 아직도 못받고 있다.

어쨌든 라이코스CEO로 재직한 3년간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미국회사를 경영하는 것 외에도 미국인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미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실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든 일이 많았다. 간신히 회사의 경영이 호전되고 있을때 보스턴 법원에서 소송에 패소해서 3백만불을 배상하라는 뉴스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한달이면 끝날줄 알았던 회사의 매각 협상이 거의 반년을 이어갈 때는 정말 지쳤다. 회사 매각후 엄청나게 터프한 이스라엘 사람들과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알고보니 그들이 엉터리 회사였고 그나마 경영이 호전되고 있었던 라이코스를 말아먹으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됐을때는 절망적이었다. 갈등이 있었던 임원 때문에 온갖 마음고생을 하다가 결국 해고하는 일도 정말 어려웠다.

인터넷회사로서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그리고 분쟁이 붙은 다음과 Ybrant의 중간에서 라이코스를 중립적으로 경영하던 반년간은 바늘방석에 있던 것 같았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갑자기 해고해줬을때 후련한 마음이 들었다고 할까.

스토리볼 덕분에 이런 내 경험의 일부나마 나눌 수가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스토리볼에 썼던 내용은 대부분 가벼운 한미간의 직장 문화차이에 대한 글이나 좋았던 일을 중심으로 썼다.

힘들었던 일, 후회되는 실수 등은 쓰지 못했다. 그래도 라이코스에서 경험한 일들을 추가로 더 써놓을 수 있을때 나를 위해서라도 기록으로 남겨놓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스토리볼 연재내용을 중심으로 추가적으로 보완해 가면서 내 블로그에 ‘라이코스 이야기’를 남겨놓으려고 한다. 항상 부족한 글이지만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주시길….

글 : 에스티마
원글 : http://goo.gl/XwsUX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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