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하이드] 하이드편:: 자나깨나 입조심, 말조심

자나깨나 입조심, 말조심

폭발의 촉매제는 ‘단어’

20세기 냉전사의 대가 존 루이스 개디스는 그의 저서 [역사의 풍경]에 역사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하며 직접적 원인 – 중간원인 – 일반적 원인과 일어난 역사적 사건과의 관계를 집요하게 풀어나간다. 그는 다양한 원인들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역사적 변화가 오는 시점의 분위기’ 같은 것은 분명 존재한다고 했다.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라 부르기도 하고 ‘물이 얼거나 끓기 직전의 순간’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개디스는 물리학의 상전이(相轉移)나 단속평형과 같은 전문용어를 써서 빗대기도 했지만 쉽게 풀면 이렇다. 특정원인이든 일반원인이든 어떤 역사적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을 후일 분석해보면 그 일이 일어났음직한 촉매나 징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1. 드라마와 일상 속의 분노

일상의 빈번한 일을 말하기 위해 서두부터 거창한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이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의 핵심 중 하나는 ‘싸움이 일어날 때 상대를 격분시키는 것은 결국 어떤 특정한 단어’라는 점이다. 드라마에 단골소재로 나오는 고부간의 갈등을 예로 들어보자.

“에미야, 내일 아침은 네가 차리거라” “네? 제가요?”

“왜? 여기 너 말고 누가 또 있냐?”

“아뇨… 그게 아니라…”

“그럼 뭐?”

“그게 아니고요. 저는 제 일이 있잖아요. 제가 무슨 식모도 아니고…”

“뭐? 식모? 그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냐? 나는 일이 없으니까 식모냐?”

위의 대화는 일상적이고 목적이 뚜렷하던 대화가 한순간 끓어올라 넘치면서 주변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드는 전형적인 감정대립의 전형을 보여준다. 뻔한 대화에 뻔한 장면이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상황이 단 한 번에 갈등, 싸움을 넘어 갑자기 막장으로 가는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저 단어 하나, ‘식모’라는 말을 꺼냈을 때다. 다음의 대화를 보자.

“차지원씨, 지난번에 사무용품 캐비넷 정리하라는 거 어떻게 됐어?”

“아… 네… 아직…”

“아직? 아니 그거 지시한지가 언젠데 그 까짓게 뭐가 어렵다고 아직도 안 해놨어?”

“죄송합니다.”

“이 사람이 참 보자보자하니까… 죄송한 거 말고 왜 안 해놨냐고?”

“제가 깜박해서 그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깜박해? 너, 지금 일부러 그러는거야?”

“너요? 제가 왜 ‘너’입니까? 왜 저한테 너, 너 합니까? 제가 과장님보고 ‘당신’이라고 하면 좋겠습니까?”

위의 대화 역시 뻔한 장면이다. 실제로 이런 대화와 전개를 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위의 대화에서 차지원씨를 촉발시킨 촉매제는 무엇이었을까? 두말할 나위 없어 ‘너’다.

 

 

2. ‘분노’ 연구자들의 결론

그렇다면 이처럼 특정한 단어의 사용이 폭발적인 분노를 자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감정연구의 대가인 캐롤 이자드(Carroll Izard)는 한 연구에서 분노유발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첫째, 신체적, 심리적 욕구를 강력히 제지당했을 때, 둘째, 공격을 받거나 소중한 것을 평가절하 당했을 때, 셋째, 만성적인 스트레스 등이다.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두 번째인데, 사람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평가절하 당하는 경험을 자신에 대한 공격과 동일한 수준의 경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욕구는 생존의 욕구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예로 든 대화에서 ‘식모’나 ‘너’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시어머니와 차지원씨는 자신이 공격 당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위협,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는 말이 된다.

분노의 강도에 관한 연구 역시 같은 결론을 제시하고 있다. 감정과 스트레스 연구의 최고 권위자였던 리처드 라자러스(Richard Lazarus)는 1991년의 논문을 통해 상대가 편견으로 자신을 불공정하게 취급하거나 나와 내 것에 대한 비하공격을 할 때 분노의 강도가 가장 컸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렇다면 주변 분위기를 엉망진창 우당탕탕의 막장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3. 어떻게 하면 상대를 화나지 않게 할까

가. 체면을 건드리지 마라

협상전문가 짐 토머스(Jim Thomas)는 ‘체면을 건드리면 죽는다’고까지 표현했다. 아무리 점잖고 지성적인 사람이더라도 체면을 건드리면 ‘광분’한다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협상에서 중요한 것은 때로는 협상의 내용보다는 상대의 체면 세워주기라고 강조한다. 앞에서 예로 든 대화를 보면 서로 존중하는 태도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대화의 분위기가 하루이틀 만에 형성된 것은 아닐테지만 상대의 체면을 건드리는 일을 피하면 적어도 엉망진창 우당탕탕할 일은 없을 것이다.

나. 대답의 기본원칙은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이다

리처드 라자러스는 논문에서 상대로부터 거절을 당했을 때 느끼는 분노의 크기가 비하공격을 받았을 때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즉 무언가를 지시했을 때, 부하가 그 자리에서 즉각 거절한다면 대부분의 상사는 일단 화부터 나기 마련이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분노를 참거나 조절할 뿐이지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화가 다음번의 어느 장소에서 폭발할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안 그래도 힘든 직장생활인데 시한폭탄을 안고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하라

어찌보면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언이다. 하지만 참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협상과 대화는 갈등과 경쟁이지만 시각을 달리하여 뒤집어보면 협력과 양보이다. 그리고 분위기가 좋을 때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더 양보해주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러니 상대가 누구든 상황이 어떻든 여유있는 모습으로 얼굴에 미소를 유지하라는 것이 일반적인 협상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쓸데없는 자존심과 한때의 감정 때문에 분노의 화약고 속에 불을 이고 들어가지 말자. 하고싶은 말 다 뱉고 나서 분위기 엉망진창 만든 후에 후회하지 말고 좋은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일하자. 긍정적인 분위기는 한번 형성되기만 하면 제법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분위기를 위해서 개인의 욕구를 조금 양보하는 것은 결코 나쁜 거래가 아니다.

 

글/ 벤처스퀘어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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