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으로 보는 지구(6) 이제, 우리 무대는 세계

6. 이제, 우리 무대는 세계

지난 다섯 번의 연재 글을 통해 글로벌 진출의 단계적인 준비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다룸으로써 이를 조금이라도 고려하는 마케터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이번에 총 여섯 번에 걸친 연재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국에서만 지냈던 글쓴이가 글로벌 환경에서 직접 부딪히며 겪었던 과정과 생각을 담았다. 글로벌 진출 전, 마케터들이 그 의의를 한 번 더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가 처음 디지털 광고 업계의 일을 시작했던 건 12년쯤 전이었다. 관심 있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는, 호불호가 강했던 성격 탓에 좋아서 빠져드는 일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웹의 보급과 함께 플래시라는 툴이 탄생하며 인터넷 광고와 플래시 무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플래시를 통해 제작자 측이 이를 보는 사람과 인터랙션을 할 수 있으며, 반응 정도에 따라 재빨리 모션을 다르게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 내게는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 당시에 몇 없던 디지털 광고회사에 지원해 GIF 배너 광고부터 프로모션 사이트 제작, 플래시 배너 및 영상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진행했다.

▲ 에제 비드라(Eze Vidra), 구글벤처스의 제너럴 파트너. 당시 구글은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과 상생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으며, 아이디어를 발표하면 바로 세미나를 열어 테스트와 토론을 통해 실질적인 기술에 적용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웹, 웹사이트, 디지털 마케팅 모두에 흥미를 두고 있었는데, 상대적으로 정적인 느낌의 웹사이트보다는 스토리와 그에 맞는 율동적인 움직임이 있고, 즉각적으로 반응도에 대한 수치 측정이 가능한 디지털 마케팅에 더 이끌렸다. 특히 디지털 마케팅은 소비자 반응을 참고해 차기 프로모션에 대한 아이데이션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이런 디지털 광고가 너무 좋아서 일주일 통틀어 잠을 10시간 잘 정도로 일에 빠져들었다. 깊이 고민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사용자들의 반응까지 좋으면 큰 희열과 보람을 느꼈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다수 소비자와 함께 ‘디지털’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고 교감하며, 결국에는 그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만 했던 수년 동안 한 번도 회의감을 느낄 틈이 없었다.

▲ 호주 ‘WiCastr Team’, 당시 멤버는 이 두 사람뿐이었으나, 현재는 더욱 많이 성장했다고 한다. 당시에 이들은 아주 작은 무선 인터넷 연결 장치를 개발하고 있었다. 너무나 즐겁게 자신들이 하는 일에 관해 설명해줬는데, 그들의 열정을 듣는 나 또한 정말 즐거웠던 인터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웹 2.0 시대가 도래하면서 플래시로 만든 SWF(Shockwave File)의 웹 구현이 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이어 나는 각종 디바이스, 매체 간의 간극이 사라질 것이라는 영문 기사를 읽으며 ‘언젠가는 언어와 인종적 특성이 배제된 국가 간, 문화 간의 유형 자산뿐 아니라 무형 자산의 교류와 홍보 활동 또한 다양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어떠한 아이템을 홍보하기 위한 매체 호환 관점에서의 ‘비언어적 접근법’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됐다.

‘툴(Tool)’과 ‘매체(Channel)’라는 ‘틀(Boundary)’에서 벗어난 광고•마케팅 활동을 더 깊이 탐구하고 싶다는 열정이 갑작스럽지만, 아주 강하게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는 공부하기 위해 휴직 혹은 퇴사를 하고 싶다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제스 윌리엄슨(Jess Williamson), 테크스타 런던의 디렉터. 미국, 영국 등에서 활동한 제스와는 동서양 각 국가의 비즈니스 에코 시스템에 대해 비교하는 시간을 함께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커졌고, 나는 결국 회사를 박차고 나와 나름 심오한 뜻과 계획을 품고 해외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이것이 한국에서만 지낸, ‘한국 토박이’이던 내가 개인과 공동체에 집중하며, ‘글로벌’이라는 세계를 처음 접한 계기였다.

당시 나는 해외를 접해보지 않았기에 타국에서의 생활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랬던 내가 선택한 방법은 영국으로의 유학이었다. 안정적으로 타국에서 머무르는 방법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이후 나는 내가 인터뷰하려는 인물에 직접 연락해 미팅 일정을 만들어 찾아가는 등 적극적으로 연구 활동을 전개했고, 이런 나를 좋게 본 교수님 두 분과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동료들 덕분에 미국, 영국,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홍보의 ‘비언어적 접근법’과 ‘무형 자산의 교류’, ‘글로벌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학술적으로 터득했고, 실제 프로젝트들을 통해 실제적 관점에서 탐구를 시작하며 국가 간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 열심히 일하고 있는 테크스타런던의 코워킹 스페이스

나는 오랫동안 세계 주요 나라 대부분을 돌며 사회 저명인사뿐 아니라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의 신념을 묵묵히 지키며 사회에 도움을 주려 했던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지구적 관점에서 글로벌 커뮤니티와 글로벌 시민(Global citizen) 측면의 비즈니스와 소비자를 연결할 수 있는 지속적인 마케팅 방법을 찾고 지향하게 됐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세계 공통 이슈였던 ‘경기 악화’와 그로 인한 ‘젊은 층 실업 증가’다.

사회 안에서 사람과 사람은, 그리고 나라와 나라는 연결돼 있다. 모두가 연결돼 있기에 경제 상황도 그럴 수밖에 없다. 경제는 정치, 문화, 소비 패턴 등 다양한 지역 및 분야와 직결된다. 따라서 자국이라는 한정적 틀만 생각하는 것은, 한발 느린 유행을 뒤쫓는 팔로워(Follower), 수동적인 생각, 그리고 넓게 보면 모두가 연결된 범위에서 점차 뒤처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뉴욕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주최했던 컨퍼런스 후, 각 산업 전문가와의 미팅.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요즘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하고, 힘들어서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도 많이 본다. 또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서로 부딪혀도 무표정으로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도 많다.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고자 했을까?

혹자는 나에게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유독 경쟁이 치열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글로벌적 시민의식을 생각할 틈이 있겠느냐’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계속해서 글로벌 시민의식을 지향하는 이유는, 공동체적 관점에서의 인류와 인간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과 타인을 존중하는 것부터가 공동체 의식이고, 분명한 것은 비즈니스와 마케팅은 결국 이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다른 공동체의 좋은 점을 수용하고 우리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 전파하는 것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며 경제적 이익을 창조한다고 믿는다.

사회적 활동이든, 비즈니스적 활동이든, 서로 간의 인사이트를 교류하면서 발전적인 관계를 만들고 주도했다면 과연 ‘헬조선’이라는 단어와 의식이 커질 수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그동안 너무 무방비했던 건 아니었을까.

▲ 구글 런던 코워킹 스페이스 입구에 들어서면 자신을 홍보하기 위한 재미있는 문구로 가득한 소품들이 있다.

광고, 기술, 금융 등 산업군을 막론하고 시야를 넓히다 보면, 더욱 창의적인 생각과 새로운 방향이 보인다. 타국에서 만든 기술적, 무형적 트렌드를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창조해보는 것은 어떨까. 경제가 힘들고, 시국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만의 장점과 무기들을 갖고 가까운 국가라도 조금씩 활동 무대를 넓혀보는 것은 어떨까.

‘낯선 외국어 때문에’, ‘문화가 다르니까’, ‘트렌드가 달라서’ 어려우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유튜브 광고의 흥행, 모바일 사용자 증가, 개인화 광고 지향 등의 흐름은 언어적 공감보다는 ‘언어적’ 표현의 근본적 계기일 수 있는 소비자가 처한 ‘상황적’ 공감과 그 진정성에 바탕을 두기에 이해하고자 한다면 사실상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는 없다. 그렇기에 무대를 세계로 넓히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이는 인간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비롯한다.

▲ 구글캠퍼스는 홍보 동영상을 촬영해 이메일이나 웹으로 바로 송출할 수 있도록 마치 우리나라의 즉석 사진 인화기 같은 기기를 마련해놨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만 갖춘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다’. 이 한 줄이 지난 연재 글들을 마무리하며 내가 남기고 싶은 메시지다. 각종 디바이스와 매체 간의 경계는 허물어지고 있는데, 마음의 장벽은 점점 높아져 가는 것 모순 아닐까. 이제 타인, 타국과의 ‘교감’을 주저하지 말고 시도해보자.

벤처스퀘어는 더블유지티의 박관영 대표와 함께 마케팅에 대한 칼럼을 연재합니다. 전체 글은 <이곳>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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