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스 이야기 8] 해고문화

라이코스에 항상 명랑하고 친절하며 동료들의 대소사를 잘 챙겨주는 인간미 넘치는 여성직원이 있었다. ‘줄리’라고 해두자. 줄리는 자신이 직접 만든 쿠키나 케이크를 회사로 가지고 와서 동료들에게 나눠준다든지, 동료직원의 생일을 기억해뒀다가 꼭 챙겨준다든지, 점심시간에 자신이 주도해서 게임시간을 마련하는 일 등을 좋아하는 일종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당연히 직원들사이에 평판도 좋고 인기있는 사람이었다. 내 생일도 세심하게 챙겨줘서 감동했다. 회사분위기를 살리는데 이런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하루는 HR매니저인 존이 심각한 얼굴로 와서 미팅을 청했다. 그는 “줄리에게 문제가 생겼다. 당장 해고해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랐다. 일단 줄리가 무슨 문제를 일으킬만한 사람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사 무슨 문제가 있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매몰차게 당장 회사에서 내쫓을 수가 있는가.

자초지종을 확인해 봤다. 줄리는 직원들의 급여를 처리하는 페이롤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녀는 세금, 의료보험료 등을 떼고 직원들의 급여를 계산해 매달 입금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급여는 일반 직원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해 원래 받아야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돈을 가져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담당 팀장이 발견했고 존에게 알려왔다는 것이다. 존은 사내변호사인 마크에게 그 사실을 의논했는데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당사자를 바로 해고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마크의 의견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줄리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본인에게 알리고 한번 기회를 줘야하지 않냐고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에 아주 큰 거액을 더 가져간 것도 아니었다. 한번에 한 백불이 될까.

하지만 존도 단호했다. 바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은 줄리와 ‘친구’라고 할 정도로 가깝지만 일은 일이라는 것이다. 안그러면 나중에 회사가 큰 피해를 입는다는 얘기였다. 줄리와 만나서 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정말 (고의적으로) 그랬다는 것이 인정되면 바로 해고절차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몇시간뒤 존과의 미팅에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줄리는 총무담당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자에 짐을 꾸려 바로 회사를 떠났다. 약 5년동안 라이코스에 재직했던 그녀는 회사에서 아주 평판이 좋은 직원이었지만 동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이 사건에서 내가 놀란 것은 너무나 신속한 해고절차와 그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본인,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리고 비교적 냉정하고 무관심한 직원들의 태도였다. 소위 ‘정’으로 묶인 한국의 직장문화에서는 이런 경우 적어도 며칠간은 시간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거나 주위 동료들이 구명운동을 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해고절차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해고가 결정되는 순간 전산담당직원에게 연락해 해고되는 직원의 회사메일계정부터 정지시킨다. 법적으로 그 직원의 회사메일계정은 회사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해고되는 당사자도 담당 팀장과 배석한 HR담당자에게 그 사실을 통고받고는 속으로는 화가 나겠지만 크게 감정을 노출하지 않고 짐을 싸서 바로 회사를 떠난다.

영화 Up in the air에서의 조지 클루니
영화 Up in the air에서의 조지 클루니

보통은 직원들의 고충을 잘 들어주는 HR매니저도 유사시에는 이처럼 전광석화처럼 해고절차를 진행한다. 존은 예전 직장에서 마치 영화 업인디에어에 나오는 해고전문가 조지 클루니처럼 해고를 많이 해야하는 일을 담당했었다고 한다. 아무리 해도 개선이 되지 않는 문제직원을 식별해내 담당매니저와 함께 의논을 하고, 해당직원에게 시한부 경고를 주고, 그래도 변화가 없으면 해고절차에 들어가는 식이다. 사람이 좋아보이다가도 유사시에는 아주 단호하고 냉정하게 해고당사자에게 해고사실을 통고한다. 그는 해고를 통고하는 면담자체를 힘들어하는 담당매니저를 도와서 일을 처리해준다.

공식적으로 미국에는 법적으로 회사가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하지만 회사규정에 따라 ‘세버런스 패키지(Severance package)‘라는 일종의 위로금이 해고당사자에게 지급된다. (근속 기간에 따라 적립해두는 퇴직금이 아니기 때문에 이직 등의 이유로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나는 경우는 이 세버런스를 받지 못한다.) 대기업들은 대개 근속연수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세버런스를 지급한다는 사내규정이 있다. 하지만 작은 회사들이나 그리 너그럽지 않는 규정을 가지고 있는 회사의 경우는 세버런스를 아예 지급하지 않거나 겨우 2주치~한달치 봉급정도를 주기도 한다.

세버런스는 저축을 거의 하지 못하는 미국직장인들에게 다음 직장을 잡을 때까지 생활비로 쓰라는 의미가 크다. 회사와 협상(보통은 HR매니저와 담판)을 통해서 의료보험연장이나 스톡옵션 보전 등 보다 좋은 조건의 세버런스를 챙기는 경우도 있다. 회사는 세버런스를 주면서 해고되는 직원이 각서에 서명하게 한다. 이 돈을 받는 대신 회사에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소송을 걸면 받은 돈을 다시 돌려줘야 한다.

회사를 떠날바에야 제발로 나가는 것보다 해고절차를 밟아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자진해서 그만두면 한푼도 받을 수 없는데 반해 해고가 되면 세버런스도 받을 수 있고 주정부에서 제공하는 실직자수당도 받을수 있는 자격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에서는 회사가 직원을 쉽게 해고할 수 있다. 미국 노동법에는 ‘At-will employment’라고 나와 있는데 회사는 특별한 이유없이도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할 수 있다는 계약관계를 말하는 용어다. 당사자가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의 경영사정으로 부서 하나를 다 날려버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다만 나이, 성별, 인종 등에 따라 차별해서 부당하게 해고했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다. 꺼꾸로 부당해고라고 회사가 소송당해 거액의 배상금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굉장히 조심을 한다.

줄리 사건이후 나는 이런 미국의 해고문화에 익숙해졌다. 떠나는 사람도 안에 남는 사람들도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이 절차가 신속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조직문화에 균열을 일으키거나 업무에 적합하지 않은 직원의 경우는 HR매니저가 담당 매니저 등 여러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본인면담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한다. 보통 한달정도의 시간을 준다.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내게 와서 해고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곤 했다. 망설이는 내게 존은 “(그 직원이) 적합하지 않은 업무에 남아있는 것은 본인에게도 불행이고 팀웍에도 큰 해가 된다”고 설득하곤 했다. 문제직원 때문에 다른 더 능력있는 직원이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리더십에 문제가 있어 팀원들의 원성을 사던 한 매니저의 경우는 해고가 진행되고 나서 팀분위기가 살아나기도 했다.

또 해고가 되서 회사를 떠난 직원들의 경우 오래지 않아서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엔지니어들의 경우는 쉽게 좋은 직장을 잡았다. 워낙 좋은 회사들이 많고 새로운 스타트업이 계속 태어나는 보스턴지역의 특성 덕분인 것 같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다고 해야 할까. 정말 부러운 부분이었다. 링크드인으로 해고된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 경우가 많았다.

일견 비인간적으로 보이는 이런 미국의 해고문화는 큰 국토에 개인주의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미국이라는 나라이기 때문에 가능한지도 모른다. 자기가 사는 교외의 집과 회사사무실만을 자동차로 챗바퀴 돌 듯 하는 미국인들은 해고된 직장동료를 평생 다시는 볼 일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저녁에 따로 회식문화도 없고, 동문회 같은 것도 없는 편이기 때문에 동료간에 끈끈한 정이 쌓일 틈이 없다. 일에서 ‘감정’이 분리되어 있다. 다시 말하지만 ‘드라이’한 문화다. 미국의 해고문화는 그 드라이한 직장문화의 한 단면이다.

우리와는 정서가 다르다. 술먹고 푼다는 것은 없다.

글 : 에스티마
원문 : http://goo.gl/jl8Kx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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