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게임의 만남에 주목하라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첫 번째 대국을 하는 동안 구글의 인공지능 분야 라이벌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나 하였다.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토치(Torch)를 세계적인 게임 엔진 중의 하나인 언리얼(Unreal) 엔진에 붙인 UETorch(언리얼엔진의 머리 글자에 토치를 붙였다)라는 것을 발표한 것이다.

아마도 구글이 알파고를 통해서 인공지능에서 한 발 앞서간다는 대형 이벤트를 하는 동안 우리들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발표가 아니었나 싶다. 비록 전 세계적으로 큰 뉴스가 되지 못하는 바람에 아는 사람만 아는 것이 되었지만 말이다.

게임엔진에 딥러닝을 붙이면 무슨 일이?

그렇다면 어째서 페이스북은 구글이 알파고를 통해 세계적인 주목을 끌어가는 중요한 순간에 게임엔진과 딥러닝을 붙이는 뉴스를 발표한 것일까? 단순히 발표시기가 우연히 그 때와 맞은 것일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어떤 측면에서는 페이스북의 이 발표가 앞으로의 미래의 인공지능 발전에 있어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보며, 페이스북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를 총책임하고 있는 얀 르컨(Yann LeCun) 역시 그런 확신이 있었을 것이다.

페이스북은 언리얼 엔진을 통해 게임의 형태로 가상의 환경을 만들고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실제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건물을 짓거나, 로봇을 운용한다거나, 중요한 판단을 내리는 상황이 닥친다고 했을 때 잘못될 지도 모르는 실제 상황을 현실 세계에서 도입하기란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 잘못되었을 때의 피해와 파급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임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세계라면 어떨까?

좀 잘못되더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페이스북이 발표한 게임엔진에 인공지능을 붙인 시도는 실제의 세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 많은 물리학적인 상황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고 인공지능의 발전에 큰 도움을 주게 될 것이다.

페이스북의 UETorch 관련 사진. 블록을 쌓는 예제 from http://arxiv.org/abs/1603.01312
페이스북의 UETorch 관련 사진. 블록을 쌓는 예제 from http://arxiv.org/abs/1603.01312

약속이나 한 것처럼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전격적으로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있어서 교육용으로도 활용되는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인공지능 플랫폼 개발의 도구로 쓰는 ‘프로젝트 AIX’를 발표하였다. 인공지능 개발자는 마인크래프트 게임 내에서 건설, 등산, 요리 등 임무를 수행하면서 인공지능을 학습시킬 수 있다. 심지어 자원을 활용해 인간이 하는 방식과 유사한 임무를 수행하고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을 통해 인공지능에게 다양한 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인데, 이렇게 제작되는 AIX 소프트웨어를 올해 하반기에는 오픈소스 형태로 무료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파고도 게임에서 출발했다. 

페이스북과 마이크로소프트가 게임과 인공지능이 연결된 여러 가지 발표를 한 것은 다분히 구글의 알파고를 의식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알파고 역시 게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일단 바둑 자체가 인류가 개발한 가장 자유도가 높은 복잡한 게임이다. 여기에 도전해서 인간을 넘어서기 시작했다는 것도 뉴스거리지만, 이런 알파고를 탄생시킨 딥마인드(Deep Mind)를 창업한 데미스 하사비스 역시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푹 빠져서 살았고, 정말 유명한 게임 개발자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하사비스가 인공지능에 눈을 뜬 계기도 게임 때문이다. 그는 1994년 전설적인 개발자인 피터 몰리뉴와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파크’를 공동으로 개발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17세였다. 테마파크는 전 세계 수백만 카피가 팔렸는데, 현재까지도 영국 개발사가 내놓은 작품 중에서는 최고의 대작으로 꼽힌다.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을 전공한 이후에도 피터 몰리뉴와 게임을 개발했는데, 라이언헤드 스튜디오를 같이 설립해서 블랙앤화이트 게임에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하였다.

블랙앤화이트라는 게임에는 ’크리처’라는 인공지능으로 작동하는 가상의 개체가 등장한다. 1998년에는 독립해서 엘릭서 스튜디오를 설립하고 2003년에는 국가에서의 혁명을 인공지능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대작 ‘리퍼블릭: 레볼루션’을 발표하기도 했다.

사회문제 해결에도 활용되는 게임 게임이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의 수단이 아니라, 사회문제 전반을 해결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제인 맥고니걸(Jane McGonigal)의 2010년 TED 강연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녀는 세계적인 히트 게임인 블리자드의 WOW(World of Warcraft)를 예로 들어 게임이 가지고 있는 4가지 중요한 요소가 사회를 바꾸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4대 요소는 다음과 같다.

  • 즉시적 낙관주의 (Urgent Optimism): 어떤 장애물에 대해 성공에 대한 합리적인 희망을 가지고 즉시 도전하려는 욕구. 게이머들은 웅대한 승리가 가능하고,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시도한다.
  • 튼튼한 사회망 (Social Fabric): 게이머들은 튼튼한 사회망을 엮는 데 대가이다. 누군가와 함께 게임을 하면 서로 더 좋아한다는 흥미로운 연구는 많이 있다. 그 이유는 누군가와 함께 놀기 위해서는 많은 신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서로 같은 규칙으로 플레이하고, 같은 목표에 가치를 두고 끝까지 함께 할 거라고 믿는다. 함께 게임을 하는 것이 실제로 유대와 신뢰, 협력을 구축하며, 결과적으로 더 강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한다.
  • 행복한 생산성 (Blissful Productivity): 게이머들은 놀러가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열심히 게임 하는 것을 더 행복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어려우면서 의미 있는 일을 더 잘 하며, 게이머들은 적절한 일을 부여받으면, 계속 열심히 일할 의향이 있다.
  •  웅대한 의미 (Epic Meaning): 게이머들은 행성급 이야기의 장엄한 임무에 연관되는 걸 좋아한다. 위키피디아를 이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위키는 8만 항목이 있는 WOW 위키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한 정보가 세계 어느 위키의 어떤 주제에 대한 정보보다 많은 것이다. 그들은 웅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대한 웅대한 지식의 보고를 만들고 있다.

이런 요소들을 잘 활용하면 미래의 문제에 대한 대비를 할 수도 있다. 제인 맥고니걸은 2007년 “석유없는 세계”라는 게임을 통해 등록한 거주지에서 실시간 뉴스 비디오와 자료를 제시하고 석유의 단가가 얼마인지 뭘 이용할 수 없는지, 식품 공급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교통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 학교는 어떤지, 폭동이 있는지 보여 주었다. 그 상황에서 진짜 삶을 어떻게 살 지 계산해야 하고, 그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고 영상과 사진을 올리게 하였고, 1,700명의 플레이어와 이 게임을 시험했다.

게임 이후 3년간 그들을 추적한 결과 자신들의 삶에서 에너지를 아끼는 것과 관련한 행동 들을 체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게임에서 배운 습관을 유지했다고 한다. “슈퍼스트럭트(Superstruct)”라는 게임은 슈퍼컴퓨터가 인류의 생존이 23년 밖에 남지 않았다고 계산하고, 제리 브룩하이머의 영화처럼 모든 사람들이 드림팀을 구성해서 에너지의 미래와 식량의 미래, 건강의 미래, 안보의 미래, 사회보장망의 미래를 발명하도록 한다. 이런 미션을 가지고 8천명과 8주 동안 게임을 한 결과, 500가지 창조적인 해법을 내놓기도 하였다.

최근 가장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과 가상현실(Virtual Reality)는 각각 미래에 있어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이를 접목해서 활용할 경우 그 시너지의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인공지능은 가상현실 공간에서 제약없이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 능력을 크게 확대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인공지능을 발전시키면서도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파급효과나 부작용 등에 대해서 실질적인 피해없이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미리 대비를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인공지능과 가상현실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인간과 매개하는 게임이라는 형식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인공지능 연구에 있어서는 다소 뒤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다행히 게임 및 가상현실 기술과 콘텐츠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 지나치게 인공지능 기술개발에 매몰되기 보다는 기술과 콘텐츠, 그리고 게임과 가상현실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을 맞춰 나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성과가 조만간 발표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참고자료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