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바이올린을 위한 파트너”

밴드에서 합주 형태로 가볍게 연주하는 걸 잼(Jam)이라고 한다. 잼이지(Jameasy)는 이름처럼 합주를 보다 재미있고 쉽게 할 수 있도록 악기를 조율하거나 곡을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솔루션이다. 삼성전자 사내벤처(C-Lab)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스핀오프해 시제품 개발에 이르기까지 잼이지의 전대영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잼이지는 공동 설립자 4명이 모두 엔지니어 출신이다. “우리 기술이 악기를 다루거나 음악을 하는데 있어 불편함을 겪고 있을 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창업을 결심했다”고. 그리고 그 비전을 실현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움을 겪는 악기가 바이올린이다. 기술적으로도 가장 어려운 악기인 만큼 바이올린만 성공하면 다른 악기도 가능하겠다는 가능성을 보고 뛰어든 사업이다.

“사실 사내벤처를 시작할 땐 스핀오프 자체가 없었고 사업화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삼성에 음악사업부를 만들고 싶다고 했을 때는 모두 비웃던 시절이 있었다. 스핀오프 후 이렇게 악기 관련 사업을 하게 될 줄은 전 대표조차도 몰랐던 일이다.

잼이지는 삼성전자 사내벤처(C-Lab)를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스핀오프한 후, 대구창조경제혁신센터의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인 C-LAB에 입주해 9개월 동안 투자를 포함해 창업에 필요한 사항을 다방면으로 지원 받았다.

잼이지는 일단 조율을 위한 첫 악기로 바이올린을 대상으로 삼았다. “바이올린이란 악기 자체가 어렵습니다.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에 거의 다 들어간 상태지만 어려워서 쉽게 포기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일단 바이올린이란 악기 자체가 소리를 내기도 어렵고 조현 과정 자체만 하더라도 어른도 힘들어 할 정도로 어려운 과정이다.

집에서 연습도 하면 좋겠지만 조율이라는 일련의 과정은 전문적인 강의 인력을 갖춘 학교나 학원이 아닌 이상 또다른 걸림돌이다. 잼이지는 이 부분에 대한 시장 니즈에 해결책으로 조율기를 고안한 것.


사내벤처 초기부터 주위에선 “왜 하필 바이올린 조율기냐?”란 반응이었다고.  그 기술로 바이올린 말고 훨씬 많이 팔리는 기타를 타깃으로 하면 시장성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기타 시장엔 이미 핀란드의 뮤지션이란 큰 경쟁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했다. 일단 바이올린으로 틈새를 공략해 이를 바탕으로 기타 시장이라는 본게임에 진입하려는 전략이었다.

사실 처음 사내벤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새로운 디지털 바이올린을 만들자는 게 목표였다고 한다. 목표가 지금 방향으로 바뀔 수 있었던 건 다름아닌 시장 피드백이었다. “내가 바이올린이 있는데 또 사야해?”라는 소비자 반응 때문이다. 기존 악기에 장착하는 액세서리로 컨셉이 변경되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려운 악기를 쉽게 다를 수 있도록 만드는 것 또한 새로운 악기를 만드는 것과 진배 없다 생각한 까닭이다.

하지만 기회는 운명처럼 다가오는 법이다. 자칫 안식년이 될 뻔했던 1년여간의 사내벤처 기간이 스타트업 창업이라는 기회로 바뀌는 데는 몇 가지 사건이 크게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전시회와 방과후 수업을 통해 가능성을 보게 된 것.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열리는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outh by Southwest, SXSW)라는 뮤직 페스티벌에는 음악관련 스타트업관을 운영하는 데 세계적인 IT회사인 트위터(tweeter) 역시 이곳에서 첫 선을 보였다. 당시 잼이지는 이곳에 출품해 전체 참가업체 중 베스트7에 선정됐다. 올해초 CES에 출품한 결과는 4,000개가 넘는 스타트업 중 베스트10이었다. 미디어에서 수많은 주목을 받는 건 당연했다. 전시장에서 바이올린 연주 자체가 눈에 띄는 행동이니 카메라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을테니까.

전라북도 발산 초등학교에서 진행한 사용자 테스트를 통해 방과후 수업으로 매주 1회씩 3달간 진행한 교육의 반응이 좋았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 아이들이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빡빡한 일정에 치여 힘들다는 인식을 같고 있던 바이올린을 게임으로 하는 진행 방식을 통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 제품화 시키면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될 무렵 운명처럼 회사에도 스핀오프 제도가 생겼고 이렇게 썩히기엔 아깝다고 생각하던 의지가 퇴사로 이어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창업 후 1년 동안은 시쳇말로 ‘엉딱(=꼼짝 않고)’하고 제품 개발에만 몰두해야만 했다. 밖에 나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이 ‘한번 만져보자. 해보자’란 얘기가 많아서다. 일단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제품을 먼저 만드는게 급선무였다.

제품 컨셉을 통해 이미 미디어를 비롯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디바이스 자체 만으론 의미가 없었다. IoT 기기라면 응당 스마트 기기와의 앱 연동이 필수였다. 컨셉 자체로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지만 그걸로 안주하긴 어려웠다. 판매라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소프트웨어를 돈 주고 사는 건 국내 정서상 어려운 일이지만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를 함께 녹여내면 판매가 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게 바이올린 조율기 잼이지였다.

여느 조율 장비와 달리 잼이지는 본체에 디스플레이가 없다. 앱을 통해 디스플레이를 대체했기 때문이다. 잼이지는 악기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파형 대신 악기 자체의 진동을 측정한다. 마이크를 통해 파형을 분석하는 솔루션은 노이즈가 끼는 단점이 있다. 일단 전시장처럼 시끄러운 곳에서 데모가 불가능하다.

조율은 바이올린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능숙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다. 시각적으로 음의 변화를 보여줘 바이올린의 현을 조일지 풀지를 태블릿 화면에 실시간 그래픽으로 알려준다.

콘텐츠도 추가했다. 악보책을 통한 연습은 몰입하기도 쉽지 않고 재미가 없다. 현재 연습곡으로 약 500여곡의 악보를 수록했다. 물론 현재는 거의 클래식이 대부분이다. 작곡가 사후 100년 이후엔 저작권료가 없어 나라별 저작권 협의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마치 오락실에 있는 리듬게임처럼 정확하게 지판(finger board)에 손가락을 올렸을 때 마다 다양한 표시를 통해 연주자에게 알려준다. 바이올린의 넥(neck)에는 프렛(fret, 음을 구분하는 세로줄)이 없기 때문에 위치가 조금만 달라도 소리가 달라지는데 ‘위/아래’로 표시되는 아이콘을 통해 음을 제대로 짚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앱이 스스로 판단해 선생님의 역할을 대신 해주는 것. 이밖에 구간반복, 재생속도 역시 조절 가능하다. 심지어 활의 보잉(bowing, 운궁법) 역시 시각적으로 알려준다.

앱은 조율 이외엔 철저히 바이올린 학습에 초점을 맞춘 만큼 연습량 자동 기록과 전체 악보에서 진하고 흐릿한 색상 구분을 통해 곡 진척 상황을 알 수 있다. 바이올린에서 보잉이나 핑거링(fingering) 만큼이나 자세가 중요한데 머신러닝을 통해 피드백을 주는 단계까지 고안해 둔 상태지만 초기 모델은 연주자의 신체 피드백은 제외하고 음정에 주력했다. 현재 개발 과정은 모두 끝난 상태로 인증 과정만 남았다. 시제품 출시는 다음달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제품 생산 과정이 끝나면 큰 고비를 넘긴 셈이지만 마지막으로 홍보/ 마케팅이 앞을 가로막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마지막으로 킥스타터 같은 크라우드 펀딩을 생각 중인지 물었다. 단기적인 마케팅 효과는 기대할 수 있겠지만 ‘자칫 시장 진입에 리스크가 될 수 있어 제품 출시 초기에는 진행할 계획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크라우드 펀딩에 반드시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크라우드 펀딩 실패’라는 꼬리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어차피 바이올린은 다른 악기에 비해 시장도 작고 학습에 포커스를 맞춘 만큼 집중적으로 바이올린 교습 기관이나 학부모를 공략하는 게 올바른 공략법이다. 추후 개발 예정인 기타 관련 제품은 바이올린도 함께 지원할 계획이므로 크라우드 펀딩은 좀더 범용적인 솔루션을 갖추고 나서 진입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관현악 오케스트라에서 연주 시작 전 조율을 할 때 기준음 내는 역할은 보통 오보에가 맡는다. 오케스트라 악기 배치에서 오보에가 정중앙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조율을 시작할 때 오보에가 음계 ‘A(라)’를 불면 이 음색을 기준으로 오케스트라에 속한 모든 악기는 관악기, 현악기 순서로 조율을 시작한다.

잼이지도 오캐스트라의 중심점이자 기준인 음계 ‘A(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이들이 지향하는 ‘모든 악기의 손쉬운 조율과 재미있는 학습’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훌륭히 풀어냈을 때 실현 가능한 꿈이겠지만 말이다. 에디터는 음악인도, 취미로 다룰 줄 아는 악기도 아직 없지만 잘하면 한번쯤 시도해볼 만한 악기가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반드시 흥하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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