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살아 숨쉰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은 모두 통용되다 시피 세간에 오르내리지만 한국에서 VR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의외로 큰 편이다. 빅토리아프로덕션의 빅토리아 한 대표는 한국에서 AR은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해외 시장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AR시장이 VR보다 열 배 이상 크다.

5년 전, 15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놀란점 역시 VR에 편중된 개발 환경 때문이었다고 그 당시 충격을 회상할 정도다. 사실 국내 개발 환경이 유독 VR에 국한되는 건 대부분 국가에서 주도하는 정부지원과제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게임 시장 역시 포켓몬이라는 훌륭한 IP 기반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성공을 거뒀지만 뽀로로를 AR로 만드는 것 보다는 VR쪽으로 관심을 두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빅토리아프로덕션은 뉴욕 월스트릿에서 시작한 증강현실 기반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에듀테크 스타트업이다. 뉴욕 본사에서는 증강현실 기반의 콘텐츠를 개발하거나 모델링하고 한국에서는 교육사업과 관련된 e북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증강현실 콘텐츠 제작으로 축적된 기술을 책에 도입한데는 한 대표의 반스앤노블 근무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처음 만들었던 어린이용 언어교육 교재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쉽게 익히도록 이름을 적은 스티커였어요” 예를들어 책상에는 ‘desk’라는 스티커를 붙이며 자연스럽게 사물과 이름을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아이들이 아직 글을 못 읽는다는 점이었다. 글씨 보다 이해가 쉽고 아이들이 인지하기 쉬운 방법은 단연 그림이었다. 한 대표가 3D 그래픽으로 사물이나 캐릭터를 만들고 증강현실을 통해 책 속에서 볼 수 있도록 e북을 고안하게 된 계기다.

한번 가닥을 잡으니 파생 제품의 출시는 순풍을 탔다. 책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스캔하면 영상이 재생되는 ‘룰루&랄라’ 스캐닝 북이 연이어 나왔고 AR과 VR을 혼합한 형태의 e북인 토토(toto)는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세계 최초로 AR 플랫폼 구축이 목표입니다. 전세계를 돌면서 <왜 AR을 해야하는가?>라는 주제로 한 해에만 20건 이상의 강연을 하는 것 또한 생태계 구축을 위한 초석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스토어를 통해 등록된 앱만 650개, 출시한 AR 관련 도서는 150권, 올해 안으로 약 40여 권이 추가될 예정이다.

어찌보면 출판/도서 분야와 AR/VR 분야는 완전히 상극인 상황이다. 책으로 보고, 읽으며 정보를 습득하고 학습하던 전통적인 방식을 간단하게 HMD를 쓰거나 스마트폰을 통해 손쉽게 볼 수 있는 세상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동안 둘 사이의 관계가 좋지 못했던 이유다.

출판 시장이 보수적인 것도 한 몫 한다. 인터넷을 비롯한 최신 기술은 그동안 책의 존폐를 꾸준히 위협해 왔던 것도 사실이니까.

AR로 구성된 e북으로 실제 시연을 해보니 반응 속도가 QR코드 인식 속도처럼 빨랐다. VR의 경우 HMD 기기가 없을 경우 360 영상으로 대체 가능했다. 증강현실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해당 국가 국민의 80% 정도가 스마트폰을 보유해야만 시장 경쟁력이 생긴다. 지난 2015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83%로 전세계 4위다. 지난 2011년 한 대표가 회사 설립을 위해 귀국한 이유다.

요즘은 포켓몬 덕분에 AR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은 편이지만 한 대표가 처음 한국에 올 때만 하더라도 국내 대표 IP인 뽀로로를 염두해뒀다. 물론 현실로 되긴 쉽지 않았다. 중소규모의 회사에서 감당하기엔 너무나 높은 로열티 때문이다.

“서로의 영역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고 피하는 경향도 큰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분야라고 생각하고 서로 용역 관계를 통해 비즈니스를 하려는 의지가 국내는 여전히 강하거든요. 심지어 애니메이션 분야도 별반 차이가 없고요”

아직까지도 다른 형태의 플랫폼에 대한 배타적인 자세가 몸에 베어서다. 서로 다른 장르를 융합하는 데 있어 이해도가 떨어지는 것도 한국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한 대표는 꼬집어 말한다.

최근 시작한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대한민국의 기술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에 알리기 위해 전진기지를 세우기 위한 프로젝트다. 현재 빅토리아프로덕션에서 사용중인 뉴욕 사무실을 국내 스타트업을 위한 장소로 공유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미 실리콘밸리는 포화 상태고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실리콘엘리는 공장지대 뿐인 브루클린 지역까지 스타트업을 위한 장소로 새롭게 환골탈태 중인 지역이다. “한국에서 오는 스타트업을 위해 우리가 미국 시장 진입을 위한 성공적인 브릿지(가교) 역할을 할겁니다.” 비록 증강현실이라는 실제와는 다소 동떨어진 공간에서 늘상 살아가지만 그녀가 꾸고 있는 꿈은 구체적인 ‘현실’에 훨씬 더 가까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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