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포지티브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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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GettyImages

[엔슬칼럼] 축구 경기에서 선수들이 할 수 있는 플레이나 새로운 전술이 규정에 나와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규칙 위반이 될 수 있다면 축구 경기가 어찌 될까? 아마도 선수들은 경기 도중에 경기를 멈추고 심판에게 일일이 물어 봐야 할 것이다. 절묘한 드리블로 수비를 몇 명 이상 제쳐도 되는지, 롱킥이 허용되는 거리는 최대 얼마까지인지 등. 결국 수비의 허를 찌르는 창의적인 플레이는 다 사라지고 말 것이다. 툭하면 경기가 중단되거나 심판의 판정을 기다리느라 경기 자체가 어렵게 될 것이다. 심판이 어떤 플레이를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선수들의 플레이는 대본으로 짜여진 셈이 되고 당연히 스포츠가 갖는 긴장감은 사라져 메시 같은 선수가 나오기는커녕 시합 자체가 결국 사라질 것이다.

법에 명시된 것만 가능하게 하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4차 산업혁명의 발목을 잡고 있다. 포지티브 규제란 ‘되는 것’을 열거하는 법 체계. 알고 보면 축구 경기에서 허용되는 플레이의 종류를 경기 규정으로 명시하고 있는 거나 다를 바가 없다.

한국에서 기업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외국에서 성공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려고 할 경우 받드시 부딪히는 장애물이 바로 포지티브식 규제 시스템이다. 열거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과 시행령, 시행 규칙 등에 열거되지 않으면 법적 근거를 갖지 못해 자칫 불법으로 취급될 수 있는 제도다. 기업인이 행정 당국을 쫓아다니며 근거 서류를 작성하거나 설득을 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다가 지쳐서 포기하고 만다는 현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면에선 기존 사업자를 보호하는 제도로 스타트업에겐 최대의 적이다.

중상주의 시절에 국왕으로부터 사업권을 칙허 받았던 특허(charter) 회사가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의 규제 시스템은 일제시대로부터 시작해 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법 체계와 비즈니스 관행 전반에 매우 깊숙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시스템 하에선 공무원 입 맛에 맞지 않는 일은 괜히 했다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민간의 창의성을 매우 심각하게 저해한다. 한마디로 공무원이 알지 못하는 사업은 불법이 될 수 있어서 공무원들의 사고 틀 속에 나라 전체를 묶이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드론, 우버, 에어비앤비 등 새로운 분야가 법의 장벽과 씨름해야 하는 현실은 알고 보면 포지티브 규제 덕택(?)이다. 현행법상으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4차산업혁명이 급진전됨에 따라 새로운 신기술과 서비스로 무장한 새로운 사업이 하루가 바쁘게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도 포지티브 규제 방식의 현행 법체계가 4차 산업 혁명을 가로 막고 있다는 공감대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대한변협에 이어 13개 민간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혁신단체 협의회도 11월말 ‘혁신벤처 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통해 포지티브 규제가 아닌 네거티브(negative) 중심으로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국이 드론, 핀테크, 사물 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서 중국에 뒤지고 있는 것은 규제 때문이며 과거 추격형 경제 체제에서 포지티브 규제가 일정한 역할을 했으나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는 주도형 경제에선 융합 산업 최대의 저해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공유 경제’ 내지 ‘O2O비즈니스’의 경우 직격탄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음식 배달, 숙박부터 주차장까지 공유 경제와 관련해서는 많은 법과 얽혀 있는데 법에 없다는 이유로 규제하는 게 현실이다. 스타트업으로선 BM을 만들어내고 자금유치를 하는 데에도 정신이 없는데 행정 관청을 쫓아 다니느라 진땀을 흘리거나 불법으로 규정돼 사업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중국의 리커창 총리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존 사업자와 신생 스타트업간의 경쟁은 불가피하며 누가 시대 변화와 소비자 요구를 충족할지는 시장이 판단한다”며 “공무원이 나서서 관행과 규정을 앞세워 기존 사업자를 보호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공무원의 역할”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 10년 미만 신생기업을 일컫는 유니콘 기업 100개 중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신규 비즈니스를 금지하는 법령이 없는 한 적극적으로 지원 육성하는 관행이 자리 잡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시대, 즉 4차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혁신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에선 언제 어디서 어떤 기술, 어떤 상품과 서비스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20세기의 잣대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로 21세기를 버틸 수는 없다. 포지티브 규제 중심의 현행 법 제도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하는 시대, 즉 4차산업혁명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엔 경제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그동안 규제개혁를 하려는 시도는 역대 정부마다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다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근본 틀을 바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 분야의 적폐는 기득권 중시, 행정 편의주의 사고를 담고 있는 포지티브 규제라는 점을 현 정부는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스타트업이 경제의 주역이 된다는 혁신성장도 가능해진다.

엔슬협동조합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은퇴한 조합원으로 구성된 청년 창업 액셀러레이터다. 조합원의 풍부한 경험과 폭넓은 인맥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에 필요한 자금과 네트워크,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엔슬협동조합은 경험과 전문성이 담긴 칼럼을 매주 벤처스퀘어에 전하고 있다.

About Author

최성범 엔슬협동조합 이사
/ imsbchoi@naver.com

이코노뉴스 주필이자 엔슬협동조합 이사. 한국일보사, 서울경제신문사 등에서 경제기자로 활동하였으며, 신한금융지주, 법률방송에 재직한 바 있음. 우석대 신방과 교수를 거쳐 지금은 국민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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