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공학도가 차린 인터넷 꽃집 ‘비밀의 화원’

일단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고백할 게 있다. 기자는 꽃 선물을 즐기는 편이 아니다. 언젠가는 시들기 마련인 꽃을 선물하는 건 스스로 약간 ‘끝이 안좋다’걸 암시하는 이른바 새드엔딩의 메타포였다. 그래서 조금은 삐딱한 마음가짐으로 인터뷰이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하필(!) 꽃배달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터뷰를 결심한 건 호기심을 자극한 딱 한가지 포인트 때문이었다. 남자가 운영하는 꽃배달 서비스라니. 분명 뭔가 있어 보였다.

비밀의 화원 김시영 대표를 만났다. 사회에서는 첫 직장. 아니 첫 사업이라고 한다. 일단 이 ‘꽃을 든 남자’의 정체는 3수를 하던 대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그 당시에는 꽃 관련 사업을 할지 꿈에도 몰랐겠지만 3수만에 들어간 대학의 전공은 화학과였다. 늦깍이로 입학하다 보니 남자 친구들은 군입대 후 정기 휴가를 나오던 시기였다.

“나이 먹고 일반 사병으로 입대하기가 솔직히 두려웠어요. 친구들이 겁을 잔뜩 줬거든요. 그 일을 계기로 ROTC를 생각하고 장교 입대를 생각하게 됐죠.” 친구들을 통해 얻게된 위기의식은 무사히 ROTC 기간동안 학점을 방어하며 졸업하는 원동력이 됐고 그결과 무사히 임관을 하게된다.

임관을 하고 나니 또다른 공포가 엄습해왔다. 여자 동기는 취업할 시기고 남자 동기는 전역을 하고 토익 점수에 허덕이며 취준생이던 시절이다. 군 입대를 하자마자 취업을 해도 힘들고 못하면 더 힘든 상황을 눈 앞에서 목격하게 된다. 김 대표가 생애 두번째로 느낀 위기다.

“제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무엇보다 취업에 대한 불신이 컸죠. 답이 없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친척 중에 40대에 접어들면서 명퇴나 권고사직을 통보받는 걸 두눈으로 목격해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도 자업업자였거든요.”

창업으로 방향을 잡고 나니 일단은 주변에 사업하는 사람을 먼저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군복무 중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는 우연한 기회에 ‘좋은 멘토를 만나서’라고 소회했다.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취업을 할때까지 줄곧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 취업하고 좋은 여자 만나서 좋은데 살 수 있다’라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화하기 힘든 명제의 굴레에서 허덕이곤 한다. 김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화학과 동기들이 가는 길, ROTC 동기들의 장기복무에 대한 생각은 사회와 군대라는 큰 틀이 달랐을 뿐 기본적인 요구조건은 다르지 않았다. 어느 곳에 있던지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본격적으로 지금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물었다. 왜 하필 꽃 배달이었을까. 보통 어떤 사업이건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음식 배달업도 그렇고 전자, 자동차 같은 기간 산업도 마찬가지다.

김 대표 눈에는 꽃 배달 시장의 일등이 누구인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규모가 크지 않고 자영업 규모로 성장하다 보니 아직까지 키 플레이어가 없는 까닭이다. 기존에 홈페이지에서 이뤄지던 주문 방식 역시 모바일앱을 통해 보다 쉽게 개선하고 플로리스트가 직접 만든 고급 꽃을 배송한다는 컨셉트였다.

“우리는 보통 식당을 찾을 때 맛집을 검색하거나 냉부에 출연한 유명 쉐프의 식당을 찾기 마련인데 유명 플로리스트의 꽃을 사는 문화는 왜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현재 10~1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플로리스트가 최소 2달에 한번씩 새로운 디자인의 꽃으로 채워가는 중이다. 계절별로 나오는 꽃이 다르고 시세가 달라 꾸준한 업데이트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기존 꽃 배달 방식에서 벗어나 앱을 이용한 것도 편의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모바일 환경에서 모든 주문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어디서나 손쉽게 꽃을 고를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앱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고 전용 상품을 통한 사업 차별화도 동시에 꾀했다. 오직 ‘비밀의 화원’에서만 구입이 가능한 전용 상품을 진열해 판매하기 시작한 것.

화학과 출신답게(?) 사업초기 꽃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관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배송 사고다. ‘당일주문, 당일배송’을 원칙으로 삼다보니 자연스럽게 퀵 배송이 많았다고. 빠르게 배송하는데만 신경을 쓰다보니 한강 다리 위에서 꽃이 날아가는 일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의 일을 반면교사 삼아 전용 포장 봉투를 만들고 최대한 꽃을 보호할 수 있는데 주안점을 두고 꾸준히 연구중이라고 한다.

현재 수익 모델은 플로리스트와 구매자 사이의 중계 수수료다. 중간에 배송이 끼어 있지만 지금 방식이 아니면 매일 신선한 꽃을 배달한다는 취지에 맞지 않아 보다 저렴한 택배배송으로 바꾸기는 어렵다는 계산에서다. 결국 수익성을 높이려면 전체 꽃 가격에서 60~70%를 차지하는 부분에서 낮추는 방법 밖에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비밀의 화원은 플로리스트 양성 프로그램을 통한 도제식 교육을 생각했다. 현재 계약된 플로리스트가 직접 예비 플로리스트를 양성하면서 추가로 교육을 통한 수익을 낼 수 있다. 교육을 끝마친 플로리스트는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스승이 만든 꽃을 제작해 비밀의 화원을 통해 판매할 수 있다. 경력에 따른 시급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그 차액은 고스란히 가격 경쟁력에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물론 기존 디자인에 대한 로열티는 원작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분쟁을 막았다.

예전에 비해 꽃의 수요가 많이 줄었지만 더 큰 문제는 아직까지도 다양한 외국 문화 중에서 유독 꽃에 대한 생각은 한참 못 미친다는 게 김 대표가 토로한 국내 시장의 안타까움이었다. 영화나 미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미 몇 송이를 구입해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집으로 들고오는 외국에서는 극히 일상적인 풍경이 아직까지는 국내에서 보기 어렵다는 얘기였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80%의 꽃 주문이 기념일 같은 선물용으로 쓰이고 20% 정도만이 장식용으로 쓰이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것도 집안을 꾸미는 용도라기보다는 식장이나 행사장에 쓰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꽃 선물이 몰리는 2월 14일이나 3월 14일, 5월 어버이날, 스승의날, 빼빼로데이는 대표적인 꽃 성수기다. 반면에 모든 만물이 화창한 6~7월이 꽃 시장에서 가장 보릿고개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모두 바캉스 시즌을 준비하느라 꽃 선물을 할 정신이 없어서다.

꽃을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 사이에 ‘온도차’ 역시 국내 꽃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문제 중 하나라 꼬집는다. 보통 꽃은 전체 주문의 9할 이상을 남자가 주문한다. 받는 이는 보통 여성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리액션은 ‘어머~’ 정도다. 받았을 때 감성적인 터치가 다소 부족하다는 얘기다.

받는 사람의 반응이 좋아야 선물하는 사람도 꾸준히 주문을 하겠지만 이런 한결같은 반응으론 연속성을 답보하기 어렵다. 정성가득한 손편지나 다른 부가적인 것들이 꽃과 함께 배달되는 이유다. 꽃이 주는 싱그러움 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감성적인 부분은 담당 플로리스트가 정성껏 작성한 플로리스트 프로필과, 친필 사인이 동봉된 카드로 대신했다. 요즘 스페셜티 카페에서 추출한 원두의 설명과 풍미 같은 설명이 빼곡히 적힌 카드를 함께 내는 것과 비슷한 접근법이다.  이벤트 시즌마다 별도의 포장이나 추가적인 아이템이 들어가는 데 이 부분도 김 대표가 꼼꼼히 신경쓰는 부분이다.

김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포부를 물었다. “꽃 배달계의 샤넬이 되는 게 목표”라고 호기롭게 말했다. 사실 샤넬을 상징하는 꽃 역시 동백꽃, 까멜리아(Camellia)다. 샤넬의 창업자 가브리엘 샤넬은 장수와 풍요, 그리고 영원이라는 의미의 까멜리아를 생전에 좋아해 자신이 디자인한 옷이나 주얼리 디자인에 즐겨 사용했다. 심지어 쇼핑백에도 새하얀 까멜리아가 달린채 포장된다.

속세에 찌든 속물로 보일지는 몰라도 샤넬과 꽃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적어도 ‘가성비’라는 속세의 잣대를 들이대가며 이들의 적정가를 매기기란 녹록치 않을테니까. 대놓고 사달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막상 받으면 감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아이템이란 공통점도 같다. 그리고 맨 정신에 선물하기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적어도 이 남자는 여자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한마디로 뭘 좀 아는 ‘꽃을 든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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