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콘텐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캐통령의 고집

TV앞에 앉아 색종이를 접던 시대가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TV앞에 둘러 앉아 정해진 수순처럼 만화영화와 종이접기 딩동댕 유치원시간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시대가 바뀌고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풍경도 바뀌었다. 요즘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영상을 골라본다. 160만 구독자를 보유한 ‘캐리언니와 친구들’은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콘텐츠 중 하나다.

‘캐통령’이라 불리는 캐리언니와 친구들을 제작한 건 박창신 캐리소프트 대표다. 기자 출신인 박 대표는 키즈 콘텐츠를 눈여겨 봤다. 캐리소프트를 시작한 2014년 당시만 해도 키즈콘텐츠는 드물었다. 지상파 키즈콘텐츠는 명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지고 있었다. 키즈콘텐츠는 아이뿐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콘텐츠다. 어린이부터 부모, 가족을 아우를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로 확장성도 컸다.  전 세계적 콘텐츠인 디즈니처럼 제대로만 만들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는 경쟁력있는 아이템이었다.

견고하게 짜여진 캐릭터의 힘=장기적인 관점에서 필요한 건 캐릭터였다. 박 대표는 “기획단부터 캐릭터가 오랜 기간 살아남을 수 있도록 계획한다”고 밝혔다. 캐리언니와 캐빈, 엘리언니, 루시와 새로 추가될 캐릭터까지 단순히 눈길을 끌기 위해 등장하는 인물은 단 한명도 없다. 캐릭터에 분한 사람이 바뀌어도 각자가 가진 캐릭터는 살아남아 아이들과 만난다. 캐리언니 교체 이슈에도 흔들림없이 나아갈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2대 캐리언니는 여전히 아이들과 장난감 세계를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다.

캐리와 캐빈, 엘리와 함께 각각의 꼬마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정교한 세계관 위에 서있다. 꼬마 캐리와 캐빈 엘리가 사는 캐리타운은 친구와 가족, 사회구성원이 어우러져 사는 하나의 세계다. 주요 캐릭터 캐리는 장난감가게 외동딸이다. 멜빵바지를 즐겨입는 왈가닥이다. 엄마는 장난감 가게를 운영한다. 캐리 아빠는 전업주부다. 대형마트 집 아들래미 캐빈은 한 쪽 무릎에 반창고를 달고 다닌다. 다소 덤범 대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다. 수학선생님 엄마와 동화작가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는 얌전해보이지만 셋 중 제일 정의감에 찬 당찬 캐릭터다.

콘텐츠를 관통하는 ‘fun & healthy’=캐리타운의 가장 큰 특징은 동양적인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지역 중심사회와 사회적 관계망이 녹아들어 있다. 시청자는 캐리와 친구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통해 자연스레 가족과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고정관념과도 거리가 멀다. 캐리네 가족의 경우 가사 일은 여성이 분담한다는 통념에서 한 발 벗어나 있다. 캐리나 엘리 또한 공주 드레스를 입고 수동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전형적인 모델과도 거리가 멀다. 박 대표는 “캐리소프트가 제작하는 콘텐츠가 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걸 알고 있다. 법률적, 도의적, 사회적으로 상당한 책무를 가지고 있다”며 콘텐츠 제작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다양성을 추구하되 보편적이고 바람직한 정서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고 말했다.

콘텐츠 속 인물은 뭐든 잘하는 완벽한 캐릭터로 그려지지 않는다. 캐빈은 무릎에 늘 반창고를 달고 다닌다. 신발끈도 늘 풀려있고 덤벙대서 넘어지기 일쑤다. 대신 인간적인 매력이 넘쳐난다. 콘텐츠에는 캐리소프트의 철학인 ‘fun & healthy’가 투영돼 있다. 재미는 당연히 있되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덧셈뺄셈 못 해도 감기 걸리지 않고 몸은 튼튼하잖아’ 캐리앤 송 ‘부기우기 놀기먹기’ 가사처럼 완벽해보이진 않아도 있는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노력인 셈이다.

어린이 방송국 캐리TV’=“유익하지 않은 콘텐츠에 반대한다.” 조회수가 금전적인 보상과 연결되는 시대, 눈길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는 범람한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라고 예외는 아니다. 인터넷 공간은 방대한 콘텐츠의 바다지만 그만큼 유해하지 않은 콘텐츠에 노출될 우려도 안고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사회적으로 나쁜 콘텐츠는 살아남을 수 없다. 아이들이 보는 콘텐츠에서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콘텐츠, 단순히 조회수를 높이기 위한 자극적인 콘텐츠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 캐리TV를 통해 본격적으로 방송사업자로도 진출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 대표는 “캐리TV는 그 자체로 콘텐츠를 만드는 캐리소프트 집단 전체를 상징한다”고 말했다. 오롯이 아이들만을 위한 방송국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정제되지 않은 콘텐츠에 노출될 우려를 차단한다는 뜻이다. 캐리TV는 캐리소프트가 제작한 오리지널 콘텐츠로만 구성돼있다. 연습실과 제작실, 방송장비와 소품이 가득한 캐리TV 스튜디오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캐리TV 스튜디오에서 촬영 중인 루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캐리소프트는 공연과 어린이뮤지컬과, 동화책, 만화, 라이센싱 사업 등 캐릭터가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오프라인 사업도 확장해나가고 있다. 캐리와 장난감친구들 뮤지컬은 전국투어 순항 중이다.올 5월에는 새로운 창작뮤지컬로 아이들과 만난다. 캐리소프트만의 프로그램이 체화된 키즈카페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쿠킹클래스, 뮤지컬, 음악가 체험, 발레 등 전담 교사가 운영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 3월에는 캐리해피하우스 게임도 출시될 예정이다. 캐릭터 방 꾸미기 게임으로 온 가족이 다 함께 할 수 캐주얼 게임이다.

올해는 해외 시장 성장 원년이다. 캐리소프트 노래콘텐츠는 러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어로 녹음돼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엘리가 간다는 중국 동영상 플랫폼 유쿠에서 100만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키즈콘텐츠계 대형 스타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꼬마 캐리는 영원히 5살이지만 누군가는 그의 동생이 되었다 친구, 혹은 언니오빠가 된다. 시간이 흐르고 성인이 되면 언젠가는 잊겠지만 영원히 잊혀지지는 않는다.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아 언제든 그 당시 정서와 함께 소환될 수 있다. “코딱지들아”라는 한 마디에 TV앞에 모여앉아 색종이 접기를 하던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던 8090세대와 같이 말이다. 캐리와 함께 하고 있는 지금의 아이들이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냐는 말에 박 대표는 “캐리와 친구들과 함께 즐겁고 건강하게 성장했음”을 떠올려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는 또 “캐리소프트는 구로동에 있는 작은 기업이지만 디즈니 캐릭터로 중심이 된 디즈니월드처럼 캐리와 친구들로 만들어진 캐리월드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며 “캐리와 친구들이 도라에몽이나 무민처럼 오랫동안 기억되는 국민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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