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늙는다.. 노인요양시설 중개 플랫폼 ‘케어닥’

우리나라는 2017년 고령 사회 진입했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 14%를 차지하는 사회가 왔다는 말이다. 고령 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노후 부양 문제가 대두된다. 한국보건사회 연구원이 2017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노후부양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는 응답은 2014년 35.7%로 나타난다. 부모를 요양 시설에 모시겠다는 비중은 75%였다. 바꿔 말하면 돌봄서비스가 기존 가족 공동체의 돌봄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가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양질의 노인요양 시설 정보가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도 아닌 내 가족을 맡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케어닥은 전국 2만 여개 노인요양시설 평가 등급과 시설 정보, 전문성, 사용자 후기를 한 곳에 모았다. 플랫폼에서 요양시설을 검색하면 사용자 위치 기반 요양 시설 정보가 나타나고 등급, 후기, 평점 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요양원을 선택하면 등급과 가격, 설립정보, 간병형태, 입지, 종교활동, 수술실 등 부가 시설 정보가 나타난다. 박재병 케어닥 대표는 “전국 요양시설 가운데 95% 이상 정보를 취합했다”고 소개했다.
데이터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1차 취합후 일일이 확인, 최근 현황을 반영했다. 오프라인에 흩어져 있는 이용자 후기도 모았다.  요양 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이용자는 대개 중 장년층, 웹과 모바일 접근성이 떨어져 온라인에서 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을 반영해 전화 통화나 채팅을 통해 전해 받은 정보를 정리했다. 이렇게 쌓인 데이터는 돌봄 서비스 매칭에 활용된다. 예산과 건강상태, 장기 요양보험 해당 여부에 따라 적절한 요양 기관을 찾아주는 형태다. 매칭은 역경매로 진행돼 사용자가 원하는 요양시설을 선택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
◇요양산업 정보 비대칭 깰 것=요양 산업은 정보 비대칭이 존재하던 분야다. 공급자 정보를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흔한 비교플랫폼 조차 마련돼 있지 않아 일일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그러다보니 공급자는 더 많은 사람을 모객하기 위해 브로커를 대동했다. 요양원에 쓰여야할 비용이 브로커비로 사용되면서 서비스 질도 담보할 수 없었다. 요양병원이나 요양 시설에 대한 검증이 어렵다보니 이용자 측에서는 불신이 쌓여갔다.
“업의 본질은 사용자가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요양산업의 권력은 정보 공급자에 있다” 박 대표는 케어닥을 통해 정보 비대칭이 해소되면 요양 서비스도 상향평준화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오프라인 정보에 기반한 서비스가 디지털화 되면서 질적 개편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 박 대표는 “현재 요양 서비스를 사용하는 연령대가 모바일 친화적 연령대로 내려오고 있다”며 “플랫폼이 마련되면 정성적 데이터가 쌓이고 요양시설도 자정작용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질문을 바꾼 여행 왜 사느냐에서 어떻게 죽느냐..= 케어닥 이전 박 대표는 3년 간 전 세계를 오갔다. 떠나기 전 박 대표 머릿속을 채운 질문은 삶의 본질에 관한 것이었다. “돈 벌어서 취업하고 결혼해서 잘 먹고 잘 살아야겠다는 것에서 끝나느게 아니었다. 나는 왜 살아야하는지 고민이 떠나지 않았다” 여행 초기에 가져간 돈을 소진한 박 대표는 살아남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신문팔이, 청소, 허드렛일 등 하루에 많게는 서너 가지 일을 했다. 육체 노동과 피로로 지쳐갈 무렵 그가 마주한 사람은 집 앞 노숙자였다. 박 대표는 “거리의 인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야기하다보니 삶의 깊이가 느껴졌다”고 기억했다.
이후 박 대표는 일명 박재병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다. 해당 프로젝트는 ‘노숙자부터 대통령까지 만나는 시골백수의 꿈의 선순환 세계일주’라는 제목으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 올랐다. 박 대표는 펀딩 자금을 종잣돈 삼아 전 세계 각지 사람들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노숙자, 마약 거래상, 매춘부, 남미 브이카 대통령까지. 미국 NBC방송은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백악관 앞에 선 박 대표를  취재해가기도 했다. 박 대표의 활동은 그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전달됐다.
3년 간 5대륙, 무전 여행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게 된 건 마음 한 편에 결심이 섰기 때문이다. 떠나기 전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이었다. 떠나기 전과 질문도 달라졌다. “사람과 교감하며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박 대표가 내린 답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박 대표는 독거노인을 찾았다. 다시 사람들 이야기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노년층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발견했다. 돌봄에 대한 불신, 불안이 그것이다. 박 대표는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사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소셜임팩트를 만들어갈 것이라고 봤다”고 전했다.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마련한 것이 지금의 케어닥이다.
◇careless, care more= “걱정을 덜하고 더 많이 돌봐드리게 하자” 케어닥 구성원이 공유하고 있는 목표다. 박 대표는 올해 바쁜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남은 2019년 케어닥은 요양보호사 간병인 돌봄 시설 업개 단에서 사람 단위로 검색할수 있도록 개편할 예정이다. 아울러 사용자 단 정보를 쌓아 정보의 비대칭을 개선하는데 주력한다. 후반기에는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간병 보험 등 광고쪽 제휴도 진행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요양산업의 혁신을 앞당긴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오프라인 위주 정보가 정보의 비대칭이을 불러왔다면 디지털화를 통해 요양산업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덧붙였다.
 “누구나 늙거든” 박 대표는 누구나 안심하고 늙을 수 있는 세상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자식, 가족 중 누군가 나를 돌볼텐데 감당이 안되는 시점이 오면 어딘가에 보내진다는 두려움이다. 서로가 가진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서비스를 케어닥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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