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충은 답을 알고 있다, 반려동물 암진단 키트 ‘펫디’

암은 냄새가 있다. 개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인간보다 최대 10만 배 뛰어난 후각으로 암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에 반응한다. 암 환자의 소변이나 채취에 다른 반응을 보인다. 국내외 연구진은 개 후각을 이용해 암을 탐지한 연구 결과를 내놓고 있다. 최근 미국 한 대학에서는 개 후각으로 폐암 세포 냄새를 감지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개의 경우는 어떨까. 그보다 뛰어난 후각을 지닌 다른 누군가에게 감지 역할이 돌아간다. 이동용 펫디 대표는 예쁜꼬마선충에 주목했다. 예쁜꼬마선충을 활용한 반려동물 암 조기진단 키트다.

반려동물 암 진단 비용은 10만 원 대 이상. 악성 종양 유무를 가르기 위한 조기 진단에만 들어가는 비용이다. 이후 MRI, 내시경 등 정밀검사 비용까지 더하면 비용은 더 늘어난다. 초기 진단이 늦어지면 치료시기를 놓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무엇보다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손쓸 방법이 없어진다. 반려견과 견주, 동물병원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였다.

소변으로 간단 검사할 수 있는 2만원 대 암 진단 키트=이 대표는 반려동물 암 진단 문턱은 낮추되 합리적인 가격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봤다. 예쁜꼬리선충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였다. 예쁜꼬마선충은 전체 게놈 지도가 완성된 첫 생명체다. 학명은 씨 엘레강스( C. Elegans). 예쁜꼬마선충은 사람의 3.4배, 개보다 1.5배 후각 수용체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름 1mm 크기 이 선충은 암 환자의 소변에는 가까이 하지만 건강한 사람의 소변은 피하는 특징을 지닌다. 선충만으로 진단 시 정확도는 95%다. 2014년 규슈대가 소변 냄새로 악성 종양을 진단하는 예쁜꼬마선충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알려졌다.

예쁜꼬리선충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데다 배양도 어렵지 않았다. 무엇보다 냉동, 냉장이 가능한데다 관리도 용이했다. 바꿔 말하면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만큼 진단 비용도 낮출 수 있었다. 펫디가 예쁜꼬리선충을 활용해 내놓은 솔루션은 두 가지다. 광학을 이용한 예쁜꼬마선충 생물학적 검출법과 마그네틱 파티클을 활용한 암 발생 위치 추적 시스템이다. 전자는 암 진단에 쓰이는 솔루션으로 전국 동물병원에 보급할 예정이다. 수의사와 정밀 진단이 필요한 반려견을 연결하면서 적절한 치료를 돕는다는 구상이다. 가격은 2만 원로 예상하고 있다.

이 대표는 “견주, 펫디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고 말한다. “정말 아프기 직전 상태를 알아내 병원에 보낼 수 있는 방법, 모든 이해관계자가 윈윈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동물병원에 먼저 선보이고자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수의사 협회와도 협력을 이어나면서 관련 데이터를 공유하고 정책, 연구 분야에 활용할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연구원에서 연구원 배경을 가진 창업가로..=이 대표는 울산과학기술원 의생명과학 연구원으로 아직 학생 신분이다. 가까운 미래 그도 남들처럼 연구실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을 것이라 생각했다. 의료산업에 기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도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 학생 연구원 활동부터 베트남 유엔 세계보건기구, 2017년 스탠포드 디스쿨에서 휴대용 의료성분 기기 개발에 참여했을 때만해도 그랬다.

본격적으로 스타트업에 눈을 돌린 건 방문 연구원으로 베트남 유엔세계보건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다. “프로젝트를 선보였을 때 피드백은 사뭇 달랐다. 기술적 부분보다 실행력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였다. 펀딩, 실행할 수 있는 연구팀, 타겟 지역과 이유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과학기술인인데 왜 이런 것까지 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본 스타트업 생태계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누구와 왜 어떤 활동을 통해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파고 들어야했다. 너무 충격적이었다” 호기심에 1년 반 정도 창업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요즈마 액셀러레이팅, 조지워싱턴 i-corp, 페이스북 AI 보육기업으로 플러그앤플레이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여러 교육을 거치며 내린 결론은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아이템은 그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빛이 바란다는 것이다” 또래 창업가의 자극이 컸다. “창업에서 성공한 사람은 내 나이 또래였다. 저 사람도 하는데 왜 나는 못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원에서 나아가 연구원 배경을 가진 스타트업 대표가 된 배경이다.

반려동물에서 사람으로.. 보편적 진단권 넓힌다=5월에 한국에 정식 선보인 펫디 키트는 동물병원협회와 협약을 통해 본격적인 시장 진입에 나설 계획이다. 하반기 내 동물용 의료기기 등록을 마치고 기술 고도화에 나선다. 최신식 명지대학교 교수와 협업해 유해성 평가 연구를 진행한 후 내년에는 휴먼 헬스케어 영역으로 보폭을 넓힌다.“악성종양 초기부터 말기까지 증상이 나타나는 3,4기 즉, 말기에 몸 상태를 알아차린다. 그만큼 회복 가능성도 적어진다” 휴먼 헬스케어로 보폭을 넓히는 건 이 같은 이유에서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 대충이라도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진단 문턱을 낮추겠다는 의미다.

펫디는 국내 시장 진입 후 영국, 중국, 동남아를 시장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특히 이 대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곳은 개발도상국이다. 악성 종양 관련 유의미한 지표가 계속 쌓여야 정부나 국제사회 차원에서든 대처 방안이 생길 것이라는 게 이 대표 의견이다. 이 대표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생명이 단축되고 있는지 정확한 분석 토대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그래야 후속 연구 투자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보편적 의료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 꿈꾼다” 보편적 의료보장은 모든 지역 사람들이 경제적인 여건과 관계없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는 기본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개발도상국이든 선진국이든, 반려견이나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암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이 대표 꿈도 이와 맞닿아 있다. “기본적인 권리는 진단이다. 진단이 있어야 치료도 되지 않겠나. 나아가 정부, 기관 차원에서도 행동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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