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에서 온 창업가 “편견을 거두면 사람이 보인다”

“탈북민 최초 상장기업을 만들겠다” 이연 대표는 남한에 도착한지 10년 차 대표 직함을 달았다. 북한에서는 그를 군인이라 칭했다. 남한에서는 그를 탈북자, 북한 이탈주민 혹은 새터민이라고 불렀다. 이름은 하나인데 그를 부르는 호칭은 서너 개다. 올해 이 대표를 부르는 말은 하나 더 늘었다. ‘창업가’다.

중소벤처부가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북한이탈주민 3만 천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 국내에서 활동하는 북한 출신 창업자는 2,200여명으로 약 7% 수준이다. 남한에 뿌리를 둔 북한 출신 창업가는 어떻게 자신만의 사업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지난 7월 열린 2019 탈북민 창업가 콘서트에서는 창업가로 활동하는 탈북민이 한 자리에 모여 창업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이 대표의 남한 첫 직장은 as 접수센터였다. 급여가 적다보니 퇴근 후 빵집, 엑스트라 배우, 연회장 서빙 등을 나섰다. 성장 가능성을 고민하던 차 지인 소개로 마이스 산업에 발을 들였다. 마이스 관련 POC 업체에 몸 담은 지 7년,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산업이 떠안고 있는 비효율이었다. 마이스 산업 현장은 해마다 성장하지만 일하는 방식은 여전히 멈춰있었다. 관계사 간 소통은 물론 업무 처리 과정에 비효율도 산재해있었다. “한국은 IT 선진국인데 너무 뒤떨어진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플랫폼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올해 2월 회사를 그만 두고 대표가 된 사연이다.

홍성원 금강산 아바이순대 대표는 음식의 가치에 주목했다. 북에 있을 당시 홍 사장은 광산업계에 종사했다. 남한에서 그는 경제학 석박사를 취득하며 남한 내 입지를 다져나갔다. 남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 그가 진정한 소통이 시작됐다고 느낀 건 음식 앞에서였다. 맛있는 음식은 그 자체로 이야깃거리가 되고 공감의 씨앗이 됐다. 홍 사장이 “음식으로 사상과 정견, 이념을 체쳐나가고자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홍 사장의 목표는 북한 음식으로 먼저 작은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불광동에 차린 아바이순대 식당은 그 시도 중 하나다. 홍 사장은 “순대에는 사상과 이념이 없다”고 말한다. 음식으로 통하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만큼 폭널은 세대를 수용하기 위한 시도도 이어나간다. 아바이 순대를 젊은 이미지로 브랜딩해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젊은이가 쉽게 접하고 맛있게 먹으며 북한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열기 바란다”는 그의 바람대로 아바이 순대 앞에서는 모두가 하나가 됐다. 솥에서 뜨끈한 순대를 꺼내는 홍 사장 앞에서 많은 이들이 이야기 꽃을 피워나갔다.

지금은 어엿한 대표지만 창업을 결정하기까지 어려움도 뒤따랐다. 탈북민을 바라보는 시선은 또 다른 장벽이었다. 이 대표는 “회사 생활 당시 업무 강도 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탈북민을 바라보는 편견이었다”고 말한다. “업무를 하다 나도 모르게 북한 사투리가 나오면 관계자 표정부터 달지더라. 너무 힘들어서 내일 당장 그만둬야지. 생각하다 8년을 다녔다”

황진솔 더브릿지 대표도 “자금이 부족한 건 남북한 창업자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지만 북한 출신 탈북자는 그들을 바라보는 편견과도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더브릿지는 매년 탈북민 창업가 성장 프로그램을 통해 탈북민 창업가의 성장을 돕고 있다. 올해는 6팀을 선발해 멘토링과 컨설팅, 크라우드펀딩 플래폼을 통해 사업 자금 지원을 마쳤다. 현재까지 탈북민 창업가 40명과 함께 했다.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탈 주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차별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이탈 주민이 남북생활에 불만족하는 주된 이유기도 하다. 현장에 모인 참가자는 편견을 버리고 사람을 봐줄 것을 당부했다. 이 대표는 “새터민 가운데 착하고 바르고 깡있고 책임감 있는 좋은 사람들 많다”며 ” 반 발자국 물러서서 넓은 시선으로 봐주면 좋겠다. 그렇게 된다면 그 이상 고마울 게 없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홍보 마케팅 부문도 북한 출신 창업가가 어려움을 겪는 분야다. 학연이나 지연 네트워크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북한 출신 창업자가 정보를 얻거나 관련 도움을 받는데 한계가 있다. 이는 마케팅 문제로도 이어진다. 남한 정서를 가까이서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주력 구매자가 어떤 것에 반응할지에 대해 기민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북한 출신 창업가가 남한 인재 합류를 원하는 이유기도 하다. “사업을 할 때 넘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남한 청년이 합류할 경우 도움이 된다” 국내 기업의 북한이탈주민 채용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가진 특징이 분명한 만큼 함께 하는 기회가 많아질 수록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기대다.

북한 출신 창업가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창업가는 “작게 나마 계속해서 도전해왔다”며 “각자 제 역할이 있겠지만 정부 차원에서 인큐베이터 역할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산재된 지원책을 한 곳으로 모으고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다. 전병길 통일과 나눔재단 사무국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요자 중심 프로그램이 아닌 북한이탈 주민 눈높이에 맞춘 지원 정책”이라고 덧붙였다.

민간 차원에서는 위워크가 힘을 보탠다. 위워크는 더브릿지와 협업을 통해 탈북 창업가 커뮤니티 확장에 발벗고 나설 예정이다. 더브릿지가 진행하는 탈북 창업가 지원 프로그램에 선발된 6팀 중 3팀은 위워크  1년 사용권이 제공될 예정이다. 임상연 위워크 을지로 커뮤니티 매니저는 “위워크는 창업가와 사업과 꿈이 있는 사람의 비전이 이루어지는 크리에이터 공간이자 플랫폼”이라며 “탈북민과 창업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언제든 서울과 부산 총 18개 지점에 있는 위워크에 문을 두드려 달라. 본인의 창의성과 사업을 적극적으로 개진해달라”고 말했다.

북한 출신 창업가를 양성하는 것은 통일 시대 준비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탈북민 창업가는 남과 북 시장을 두루 경험한 전문가로 통일 한국 시대 북한 내 기업가를 양성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존과 성장, 상생을 위해 황 대표는 “무엇보다 이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북한 이탈 주민은 힘들 때 밥 한 번 먹자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여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비즈니스는 모 아니면 도다. 친구가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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