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발목 잡는 규제대신 필요한 건..”

“벨루가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선한의지로 시작됐다. 창업가의 선한 의지를 믿고 창업가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달라” 20일 열린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 패널로 참여한 김현종 벨루가 공동창업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2017년 국내 최초로 주류 정기구독 서비스를 선보인 벨루가는 올해 7월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국세청 주류고시 ‘음식에 부수해 주류배달이 가능하다’는 조항에 따라 사업을 진행했지만 국세청은 인터넷을 통한 주류 정기판매는 허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가 음식에 부수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벨루가가 서비스를 중단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7월 주류 관련 고시가 ‘음식과 함께 주류배달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근거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서비스를 지속할 수 없었다. 사정 당국은 맥주를 배달하기 위해 음식을 끼워 넣은 것으로 판단, 서비스를 불허했다. 벨루가 서비스 4개월 만의 일이었다.

김현종 벨루가 공동창업자는 “수차례 법률 자문을 받았다. 정부 부처나 기관에 가이드라인을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국세청은 답변을 보류하다 입장을 밝혔다“며 “규제는 유관기관 권한이 막강하다, 가이드라인이 모호할 경우 손바닥 뒤집듯 해석을 바꿔버리면 기업 입장에서는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의미가 없다”고 토로했다. 김 공동창업자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려면 기업이나 기관이 요청했을 때 유관기관이 명확하게 의견에 답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누적 투자액 글로벌 상위 100 곳 중 31곳은 국내 사업 어려워..=“진입 규제 환경이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해외 선전국과의 격차는 여전하다” 같은 날 스타트업코리아! 정책 제안 발표회에서 나온 의견이다. 애매모호하거나 시대착오적인 규제가 스타트업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제 2벤처붐 확산을 내걸고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전환과 규제 샌드박스 시행 등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진입 규제 장벽이 높은 나라다. 국내 유니콘 스타트업은 9 곳으로 세계 5위지만 진입규제 강도는 9위에 머물러있다.

실제 글로벌 누적 투자액 상위 100대 업체 중 31곳이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조차 할 수 없거나 제한적으로 가능하다. 2017년 조사 당시에는 이 중 57곳이 국내 진출 시 규제 영향을 받았던 걸 감안하면 2년 사이 규제 환경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랩같은 승차공유 서비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저촉 돼 국내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네거티브 규제 토대로 법률바우처 등 실효성 있는 규제완화 추진해야.. =시장 창출을 위한 자유로운 진입규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스타트업코리아 정책제안 보고서는 규제 설계부터 적용 원칙, 해석, 공정성 확보까지 스타트업이 체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샌드박스를 포함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는 규제 완화의 근간을 이룬다. 다만 현재 시행 중인 규제 샌드박스의 경우 양적으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지만 향후 스타트업이 혁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샌드박스 제도 운영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규제 신설 시 영향 분석 강화와 일몰제 적용범위 확대는 규제 완화 실효성을 높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특히 규제 일몰제는 적용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진다. 영국과 일본 등 해외의 경우 법안 및 규제에 일몰제가 적용되지만 한국은 입법부 발의 법안은 일몰제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기준 입법부 발의 법안은 전체 법안 중 약 91% 차지한다. 규제 개선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다.

벨루가 사례처럼 적극적인 유권해석도 필요하지만 규제 해석 속도를 높이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 유권해석의 경우 사업 여부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업시기를 놓치거나 피봇팅 기회를 잃을 수도 있어 스타트업 생존을 좌지우지하기도 한다. 안희재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앞의 사례보다 스타트업이 규제 해석 때문에 겪는 고통이 훨씬 많다”며 적극적인 유권해석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안 파트너는 유권해석 속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법률 관련 바우처 제도를 제언했다. “2018년 스타트업 특허 등록을 지원하는 특허청의 스타트업 특허 바우처처럼 스타트업이 유권 해석에 대한 법률 서비스 비용을 지원하는 법률 바우처를 제공한다면 자본이 충분치 않은 스타트업에게 유용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아울러 기존 사업자와 신규사업자 간 공정한 경쟁 규칙을 마련하는 것도 과제다. 일본은 2018년 6월 신민박법 제정 시 신규 사업자인 공유 민박 업체에 기존 숙박업체와 동일한 소방, 소음, 위생 규정을 적용하며 역차별 논란을 잠재운 바 있다. 안 파트너는 “동일한 기반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한 사례”라며 “오롯이 소비자 선택만으로 승부를 보는 공정한 경쟁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평했다.

규제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이경숙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보고서 발표회 당일 공유한 이야기는 되새겨봄직하다. 통나무를 트럭에 싣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통나무를 토막 내 트럭에 싣는 이에게 동료가 물었다. 자르지 않은 채로 트럭에 실으면 빠르게 운반할 수 있고 추후 더 다양한 용도로 쓰일 수 있어 가치도 높아질 건데 왜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나무를 자르던 이가 말했다. “그저 해오던 대로 할 뿐이야”

트럭이 작았던 시절 통나무를 그대로 실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트럭도 커지고 나무를 통째로 싣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 통나무를 운반한 건 관행 때문이었다. 이 이사장은 “스타트업 규제에서도 불필요한 관행이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이 이사장은 “규제의 이유와 목적을 짚어보고 시대 생황에 따라 유연하게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안전을 위해 큰 통나무를 튼튼히 묶어야 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며 ”기본을 지키되 창업생태계가 순환하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숨통을 열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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