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금지법, 결국 또 도태될 것”

21일 서울 정동1928아트센터에서 체감규제포럼, 디지털경제포럼, 연세대학교 IT 정책전략연구소가 매크로 금지법을 진단하는 특별 세미나를 열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를 열고 댓글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조작을 막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일명 매크로 금지법에 합의했다. 이에 따르면 이용자는 부당한 목적으로 매크로를 이용, 서비스를 조작해서는 안된다. 이를 어기면 3년 이하 징역과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게 된다. 또 사업자는 서비스가 이용자로부터 조작되지 않도록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개정안 합의 소식이 전해진 뒤로 업계 반발은 컸다. 인터넷기업협회는 사법기관이 아닌 서비스 제공자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광범위한 표현의 자유 억압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모호한 개념으로 인한 자의성, 권한 남용을 지적하며 상시적 감시와 검열로 인한 자유 위출을 꼬집은 것.

이날 세미나에는 학계 전문가 8명이 모인 가운데 이들은 법안 실효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놨다. 발제에 나선 최민식 교수는 “매크로 프로그램과 매크로금지법은 창과 방패다”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매크로 프로그램을 광범위하게 차단할 기술적, 관리적 조치는 없다”고 말했다. “막으면 뚫리고 막으면 뚫릴 것이다. 심지어 매크로 행위는 사람이 직접 할 수도 있다. 조치 의무를 사업자에 지우는 것은 실현불가능한 의무를 강요하는 것과 같다.”

사업자는 피해당사자인데 오히려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비합리적 구조란 분석도 전했다. “국내 망법을 보면 OSP, ISP를 처벌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법이 곳곳에 보인다”며 최민식 교수는 실제 행위자가 따로 있음에도 현 법안은 매개자인 서비스 제공자를 처벌하는 데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지속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모정훈 연세대 교수는 “기술은 계속해서 진화하기 때문에 이를 특정하는 법률은 지속성이 높을 수 없다. 법안이 통과되면 어디까지를 매크로 프로그램으로 봐야 하는지도 관건이 될 것”이라며 “새로운 매크로 기술이 나올 때마다 법안이 이를 아우를 수 있는지, 기업은 이에 따른 의무를 매번 이행할 여력이 될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관련 기관과 협회가 성명을 통해 지적했듯 법안에 사용된 용어와 개념이 모호하고 광범위한 것이 그 이유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모든 사용자가 매크로를 쓰고 있는 셈 치고 모든 행동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는 것. 중복 규제 문제도 꼬집었다. 최민식 교수는 “매크로를 활용해 누군가의 업무를 방해할 때는 형법 제314조 업무방해죄를 비롯해 충분히 행위자를 처벌할 조항이 이미 있다”고 말했다.

역차별 문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장준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이론적으로 해외 사업자라 해도 국내서 국내 이용자 대상으로 서비스 제공하는 순간 국내법을 적용 받는다”면서도 “다만 국내법을 위반한 사업자에는 위법 책임을 묻는 것이 비교적 쉽지만 국내 영업소가 없는 해외 사업자에는 제제를 강제할 방법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 이는 입법보다는 집행의 문제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법안 취지 가운데 하나인 ‘여론 조작 방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최지향 이화여대 교수는 국내 정치권의 엘리트적 관점을 우선 지적하고 나섰다. “이번 법안 발의 과정에서 정치권이 논의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정치 엘리트가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드러난다. 마치 시민은 매크로를 통해 조작할 수 있는 무지하고 반민주적인 존재로 보는 듯하다. 여론이 본인들에게 불리할 때 돌아갈 때 이를 여론 조작이라 일컫는 오만함이 깔려있다”고 짚었다.

정용국 동국대 교수는 “온라인상에서 여론이 형성, 경쟁하고 채택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매크로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매크로를 활용한 여론 조작을 금지한 사례가 해외에는 없으며 애초에 여론 조작이라는 표현조차 드물다는 분석이다. “해외에서는 여론 조작을 위중한 범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정치 세력에 의해 여론이 형성, 경쟁, 채택되는 것을 민주주의적 질서로 본다.”

입법 대신 자율적 판단력을 키우는 방안을 촉구하기도 했다. 뷰티 유튜버 영상 PPL 광고를 예로 들며 “영상에 광고가 포함되는 건 이용자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알아서 판단할 수 있다”며 정용국 교수는 “자율적 판단 과정이 아닌 공적인 조치를 통해서만 여론이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강박관념이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비스가 출현하고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규제를 만들고 대치가 일어나는 상황은 반복된다. 차라리 서비스 기능과 한계를 이용자가 명확히 깨닫도록 돕는 것이 지속성 있을 것”이라 말했다.

곽규태 교수 역시 리터러시 향상을 대안으로 제안했다. “여론은 포털 사이트뿐 아니라 유튜브, 페이스북, 주변 사람을 통해 언제든 형성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수천, 수만 개 여론이 있다. 이들이 균형을 이루며 사회는 발전한다. 각 여론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유통되는지가 오히려 관건”이라며 “매크로 역시 개인 자유를 충분히 표출하는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사회 전반적 미디어 리터러시를 높이는 것이 어떠냐”는 것.

법안 실효성을 위해서는 규제 패러다임부터 바꿔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이지은 변호사는 “정보 산업 분야에서는 기술 진보가 법보다 계속 앞서기 때문에 네거티브 규제가 바람직하다. 안되는 행위를 정확히 규제하고 나머지는 허용해야 상호보완적 입법이 가능하다”며 “입법을 하더라도 개념을 명확히 하고 처벌 범위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모정훈 교수 역시 “기술적 법률은 기술 발전 속도를 쫓기 어려워 결국 몇년 안에 도태되거나 법률 자체가 사회 발전 막기 마련”이라며 인터넷 실명제가 위헌 판결을 받은 사례를 언급했다. “매크로 금지법은 법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점이 많은 만큼 지금 꼭 통과해야 할 법안도 아니다. 의무와 처벌을 먼저 규정하는 대신 햇볕정책처럼 사업자가 알아서 플랫폼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공표하게 해 스스로 해결을 모색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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