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상수…다시 일어서기 위한 ‘재도전 지원법’ 필요”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사업에 실패한 사람은 더이상 사람이 아니다” 실패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한정화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중소기업청장 시절 쓴 <대한민국을 살리는 중소기업의 힘>에 실려있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은 해당 구절을 언급하며 “재창업 기업의 생존율은 50%로 나타나지만 실제적으로 높은 사업 실패 비용과 불리한 제도 때문에 재도전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말했다.

재도전을 위한 유기적이고 선제적인 종합 대응과 실패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인이 실패 부담을 떠안는 구조에서는 위험 회피 경향이 강해지고 이는 곧 기업가 정신 쇠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6일 중기중앙회 여의도회관에서 열린 재도전 지원법 제정을 위한 정책 포럼에서 한정화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장은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도전, 창조, 개척정신”이라며 “실패를 딛고 도전하는 사회적 재도전 환경이 마련돼야 진정한 기업가 정신을 확립할 수 있다. 범부처별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벤처기업 패자부활제도를 시작으로 2010년 재창업자금지원 제도가 마련되는 등 각 부처별 재도전 지원제도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제도의 다양성만으로 재도전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어렵다는 평이다. 지원 정책이 있지만 부처별로 흩어져 있어 실효성이 떨어지거나 재도전과 관련한 법이 산재돼 있어 재도전 지원에 대한 연결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재도전 자금 지원책을 마련해뒀지만 이마저도 지원 3년차부터 원금을 상환해야 한다. 기업이 데스밸리를 마주하는 시기로 생존과 성장을 위해 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또 다시 위기에 직면한다. 이후 정부 보증 지원과 금융권을 통해 자금을 끌어와야 하지만 재도전 창업가에게는 이조차 녹록치 않다는 의견이다. 유희숙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장은 “금융 블랙리스트가 존재해 보증을 받아도 이전에 이용했던 은행은 다시 자금을 이용할 수 없는 구조”라며 통합적 연계 구조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배태준 한양대 창업융합대학원 교수는 “재도전의 특수성을 감안해 일반 창업지원법과 차별되는 활성화법이 필요하다”며 “중기부가 재창업지원사업 근거법을 만들고 재도전, 재창업, 재도전기업 등에 대한 개념 정리도 해줘야한다”고 제언했다. 김경만 중소기업중앙회 본부장은 “정부 차원에서 재도전에 대한 인식 개선이 있어야 한다”며 ‘실패는 상수’를 전제로 정부가 관련 정책을 다루고 재도전 지원법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보탰다.

전문가들은 영국에서 2001년부터 시행된 도산법(insolvency act)에 주목했다. 영국 도산법은 부실예방과 관리, 청산, 파산 면책 등 법적 정리, 재기를 지원하는 재도전 종합전담 서비스다. 창업 단계부터 실패 위험을 인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한 학회장 표현에 따르면 ‘망해도 크게 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구성됐다. 정부가 나서 조정과 법적 정리 절차를 일괄 처리하고 재기 지원 시 이전 사업의 실패 원인을 반복하지 않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배 교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낮추고 재도전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는 정에서 벤치마킹할만하다”고 덧붙였다.

실패 위험을 줄이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뿐 아니라 재도전에 대한 사회적 낙인효과를 없애는 것도 과제도 남는다. 한 학회장은 “아무리 노력해도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실패는 일어난다”며 “실패를 부담이 아닌, 사용할 수 있는 ‘자산’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패 사례를 데이터화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유희숙 한국재도전중소기업협회장은 “실패 사례는 사람마다 각각 달라 (정책적)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며 “어떤 부분을 보완해서 대응해줘야 할지, 구체적 방법을 논하기 위해서는 공유된 데이터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학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은 “실패를 용인하고 재도전을 응원하 수 있는 문화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며 “재도전 창업가를 위해 기존 정책 금융 기관 지원을 강화하고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민간이 협력해 기업가 정신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재도전 지원법과 관련한 정책과 재도전 문화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병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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