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수집, 영업비밀·기술유출 소송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방법

이 글은 위포커스 특허법률사무소 이동환 변리사의 기고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양질의 콘텐츠를 기고문 형태로 공유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벤처스퀘어 에디터 팀 editor@venturesquare.net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어떤 일을 잘못 시작하였을 때 하는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 이 말을 하며 후회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단추와 단춧구멍은 순서대로 짝을 이루어 끼워져야 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어떤 단춧구멍은 짝을 잃을 수밖에 없고, 그 잘못을 깨닫는 순간 그때까지 끼웠던 단추를 모두 풀러 다시 끼워야 한다. 단추 끼우기와 같이 시간을 들여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단추 끼우기 같지는 않다.

민·형사 소송이 대표적인 예이다. 시작부터 꼬이면 이를 바로잡는 것은 쉽지 않다. 만약 소송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거나 그 사전 준비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해 보자. 쟁점사항이 어떤 것인지, 대처 방법이 무엇인지, 비슷한 사례에서 어떤 판결이 나왔는지 검색하고 정보를 모은다. 변호사와 상담하거나 Chat 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경로를 통해 알아본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한 가지 공통된 지점에 도달한다. 바로 소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증거를 최대한 수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증거수집은 소송의 첫 단추 끼우기라고 할 수 있다.

소송이 어떤 유형인지에 따라 증거수집 방법이 달라지고, 증거수집 난이도도 차이가 난다. 금전거래나 대여금 관련 분쟁에서는 계약서, 차용증 등의 증거를 준비하면 되므로 간단한 편이다. 특허침해소송에서는 상대방의 제품을 확보하고 상대방의 서비스를 사용함으로써 증거를 수집할 수 있다. 다만 특허의 권리범위나 상대방의 제품/서비스에 따라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디스커버리 제도(증거개시 제도)를 우리의 민사소송 절차에 맞추어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있다. 또한 상간자 위자료 소송에서는 흥신소나 사설탐정에게 의뢰하여 증거를 수집하기도 한다.

영업비밀·기술유출 소송이나 아이디어 탈취 소송에서의 증거수집에 대해 살펴보자. 대기업, 중견기업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선임한 대형로펌의 도움을 받아 법무팀이나 감사팀이 증거수집 및 정리 업무를 수행할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 중소기업에는 담당자조차 없을 가능성이 높다. 운 없는(?) 누군가가 자신의 본래 업무 외에 증거수집 및 정리 업무까지 갑자기 맡게 될 것이다. 그 누군가가 기술과 법 모두를 잘 알고 있는 자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변호사를 선임해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변호사가 현장을 뛰어다니며 증거를 수집해 주지 않는다. 영업비밀의 3가지 성립요건(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에 대한 일반적인 가이드를 제시하면서, 그에 맞는 증거를 수집·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할 것이다. 결국 소송에 필요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사내 담당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영업비밀·기술유출 소송이나 아이디어 탈취 소송에서 증거는 어떻게 수집하고 정리해야 할까. 증거수집 및 정리에도 노하우가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잘’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필자는 작년 말까지 수원지검 산업기술범죄수사부에 근무하였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 관련 기술유출 사건에서 100만 개가 넘는 압수 전자파일 중 법원에 증거로 제출될 것을 찾아내고 정리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 그 당시 사용하던 방법 중 한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바로 육하원칙(5W1H)에 맞추어 증거를 수집 및 정리하는 것이다. 민·형사 소송 관련된 서면은 모두 육하원칙에 맞추어 작성된다. 경찰의 송치의견서, 검사의 공소장, 변호사의 준비서면, 판사의 판결문에서 범죄사실이나 인정사실의 문장 구조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누구에 의해 언제 어디서 일어난 일인지, 회사의 어떤 정보가 유출된 것인지, 어떻게 유출이 된 것인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유출을 한 것으로 보이는지에 대한 자료 각각을 취합한다. 이렇게 기준을 세워두면 어떤 증거가 부족한 상황인지 아니면 아예 누락되었는지 파악하기도 용이하다.

물론 영업비밀·기술유출 소송이나 아이디어 탈취 소송에서 가장 핵심은 ‘무엇’에 대한 증거이다. 문제 되는 정보, 기술 혹은 아이디어가 일정 수준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만 사법 제도 하에서 보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내 담당자라면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고 먼저 ‘무엇’에 대한 증거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무엇’에 대해서는 다른 누구보다도 피해를 입은 회사가 가장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많은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2차 피해가 없도록 조치를 취하면서 회사 보유자료 중에서 사건과 관련성 높은 것을 최대한 뽑아내도록 하자. 예를 들어 문제 되는 정보, 기술 혹은 아이디어와 관련하여 외부에 공개된 적은 없는지, 회사가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 비용 혹은 노력을 들였는지, 회사의 매출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적용되어 있는지, 비밀이라고 표시되어 관리되었는지, 암호화되어 있는지, 접근 권한이 다르게 부여되어 있었는지, 접근 방법이 어떻게 되는지, 반출 내지 열람 시 통제가 적절하게 되고 있는지, NDA 체결 이후 외부로 제공되었는지, 산업기술보호법상 첨단기술이나 신기술에 해당하는지 등에 대해 뒷받침할 수 있는 각 자료들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

피해를 입은 회사는 선임한 변호사나 수사기관에게 열심히 모은 증거를 전달한다. 하지만 변호사나 수사기관은 문제 되는 ‘무엇’에 대해 명확하게 잘 모르는 상태이다. 증거가 잘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변호사나 수사기관의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달된 증거 모두가 빛을 발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법원을 설득하기 위한 힘이 부족해지고, 소송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제 증거수집 및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증거부터 엉켜버리면 소송 진행이 점점 어려워진다. 영업비밀·기술유출 소송이나 아이디어 탈취 소송은 더욱 그렇다. 부디 필자가 공유한 팁을 활용하여 영업비밀·기술유출 소송의 첫 단추를 ‘잘’ 끼울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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