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box]이 글은 최앤리 법률사무소 김상훈 변호사의 기고문입니다. 스타트업을 위한 양질의 콘텐츠를 기고문 형태로 공유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벤처스퀘어 에디터 팀 editor@venturesquare.net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graybox] “코로나 때문에 장사를 못했는데, 임대료는 그대로 내야 하나요?”라는 질문,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실제로 코로나19 초기 정부의 방역 지침에 따라 면세점이나 상가가 영업을 못 하게 되면서,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에 임대료를 둘러싼 분쟁이 전국적으로 발생했습니다. 이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중요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른바 호텔롯데 면세점 사건에서, 대법원은 임대료 감면 여부와 그 범위에 대한 기준을 새롭게 제시했습니다. 1. 임대료, 못 쓴 공간에는 안 내도 된다 호텔롯데는 김포·김해공항 면세점을 운영하던 중, 국토부가 국제선을 인천공항으로 일원화하는 방역 정책을 시행하면서 면세점 영업이 중단됐고, 이에 따라 임대인인 한국공항공사에게 임대료 전액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코로나는 한시적인 상황이며, 영업도 일시적으로만 불가능했던 것이므로 계약 전체가 불가능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보아 일부 기간에 대해서만 임대료 감면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기존의 입장보다 훨씬 넓은 관점에서 사안을 바라보며 중요한 법리를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첫째, 임대인의 ‘공간 제공’ 의무를 단순히 자리를 내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공간이 ‘사업의 목적에 맞게 실제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재해석했습니다. 둘째, 일정 기간 동안 전혀 사용할 수 없었던 경우, 그 기간만큼은 계약 자체가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고, 임대인 의무의 완전한 불이행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에 따라 대법원은 단순히 일부 감면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의 임대료 전액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임차인 입장에서 보면 “장사를 아예 못 한 기간”이라면 해당 기간 동안은 임대료를 전혀 내지 않아도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 공익 목적 조치, 계약 책임은 누가 질까?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코로나19 시기의 특수한 사건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사회적 재난, 감염병 확산, 정부의 긴급명령이나 지침 등 공익을 목적으로 한 행정조치로 인해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못한 상황에서, 과연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법적 기준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용할 수 없는 공간에 대해 임대료를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일정 요건이 충족되면 전액 감면이 가능하다는 판단은 기존의 판례와는 매우 다른 전환점이라 생각듭니다. 이 사건은 ‘임대차계약’에 관한 것이지만, 그 법리가 확장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합니다. 예를 들어 호텔, 컨벤션 공간 임대 등까지도 일정 기간 계약상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면, 동일한 논리 구조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코로나19라는 상황만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감염병 재확산, 기후 재난, 전시·안보상황 등 다양한 공익 목적의 제한조치에 대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3.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할 때 주의할 점은? 계약서에는 단순히 ‘불가항력’ 조항만 명시할 것이 아니라, 정부 조치나 행정명령으로 인한 영업 중단 시 계약상 책임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적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대체적 이행 방법이 가능한지, 임대료 감면의 기준은 무엇인지, 해당 기간 동안 계약을 유예하거나 해지할 수 있는 권리가 누구에게 있는지 등이 사전에 정리되어야 불필요한 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공간 제공과 같은 계속적 계약에서는 ‘단순히 장소를 빌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이번 판결이 분명히 했기 때문에, 계약서에도 사용 목적, 운영 가능성, 실질적 이익의 실현 여부를 중심으로 책임 분담 기준을 명시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이미 계약이 체결된 경우라면 지금이라도 이를 재검토하고, 변경계약 체결 또는 부속합의서를 통해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사후적으로 계약당사자 간 책임을 둘러싼 다툼이 생기면, 손해의 범위뿐 아니라 계약해제나 차임 감면의 범위까지도 오랜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사전적 정비가 결국 비용과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 됩니다. 4. 불확실성의 시대, 올바른 계약서 작성이 필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지 호텔롯데와 공항공사 간의 개별 분쟁을 넘어서, 우리 사회 전반의 계약 체결 문화에 깊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계약서는 단순한 형식적 문서가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여 위험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계약을 체결하실 때에는 감염병 확산이나 정부의 공익 목적 조치 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을 대비한 책임 분담 조항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반드시 점검하시고 이미 계약이 체결된 경우에도, 필요하다면 변경계약이나 부속합의서를 통해 재정비하는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결국 분쟁 발생 시 법적 대응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사전적 대비야말로 위험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점을 강조드립니다. 관련 칼럼 더보기 https://www.venturesquare.net/972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