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다는 사실을 제외한 모든 것이 변한다

질소는 원자번호 7이다. 보통 질소 원자의 핵에는 양자가 일곱 개, 중성자가 일곱 개 있다. 따라서 무게는 14다. 하지만 자연계는 변종 질소가 있다. 즉 중성자가 하나 더 많은 중질소다. 쇤하이머는 이 중질소를 사용해 아미노산의 행방을 쫓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이 중질소를 포함한 아미노산을 사용해서 사료를 쥐에게 먹이고 나서 쥐를 죽이고 모든 장기와 조직에서 중질소의 행방을 찾았다. 아울러 쥐의 배설물을 모두 모아서 중질소의 행방을 찾았다.

여기서 사용한 쥐는 어른 쥐였다. 어린 쥐라면 섭취한 아미노산은 신체를 구성하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성숙한 쥐는 더 이상 자랄 필요가 없다. 따라서 섭취한 아미노산은 생명 유지에 필요한 에너지원으로 연소되고 모두 배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아마노산이 연소되고 남은 찌꺼기에 함유된 중질소는 모두 소변으로 배출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빗나갔다. 중질소로 표시된 아미노산은 사흘 동안 투여되었다. 그동안 소변으로 배설된 것은 투여의 24.7퍼센트, 약 3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양이다. 변으로 배출된 것은 오직 2.2퍼센트였다. 나머지 아미노산은 체내의 어딘가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다. 투여된 중질소 가운데 56.5퍼센트가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 속으로 흡수되었던 것이다. 실험 기간 중 쥐의 체중은 변하지 않았다. 이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긴 이야기의 결론을 짓자면 이것이다. 쥐를 구성하고 있던 몸의 단백질은 겨우 사흘 만에 식사를 통해 섭취한 아미노산의 약 50퍼센트에 의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다. 쇤하이머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신체 구성 성분의 동적인 상태’라 불렀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했다.

“생물이 살아 있는 한 영양학적 요구와는 무관하게 생체고분자든 저분자든 대사물질이든 모두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생명이런 대사의 계속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야 말로 생명의 진정한 모습이다.

* 생물과 무생물 사이,에서 발췌 정리

쇤하이머의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은 다양하다. 그 가운데 으뜸은 우리라고 믿는 것을 일단 신체로 한정하자면, 그 틀은 단기간에 동일할 수 있지만. 며칠이면 그 구성성분은 외부의 것으로 모두 바뀐다는 것이다. 온몸에 퍼져 있는 분자 하나 원자 하나를 느끼게 하는 철학적인? 연구인 셈이다.

사람은 자아를 벗어나서 존재할 수 없다. 자신이 싫든 좋든 나는 나다. 이런 자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제와 비슷한 범위 내에서 행동하고 사고한다. 그래서 과거와 오늘, 미래로 분열된 이 세계를 온전히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자아는 가끔 혹은 자주 자신의 세계 갇히게 한다. 그래서 아집을 부리고 나만 생각하고 더 큰 것을 놓친다.

이런 생각이 들때면 쇤하이머의 연구를 생각하는 게 어떨까? 나라고 믿는 육체적인 것도 며칠이면 그 구성요소가 모두 바뀐다. 그런 육체에 담긴 정신이 백년 혹은 천년 만년 한결같은 아집과 독선을 보이면서 사는 게 왠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우리 몸에 들어와서 잠시 머물다 가는 구성요소처럼, 그런 흐름과 유연함을 사고에서 보인다면 어떨까? 조금 더 생명다운 사고 방식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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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83663301@N00/5442622887
글 : 신승환
출처 : http://www.talk-with-hani.com/archives/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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