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아이디어] 우리나라 IT를 소개하는 책에도 ‘명품이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블로거인 임정욱 씨가 최근 흥미로운 글을 올렸다. “미국 혁신의 원동력을 서점과 도서관을 가득 메우는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바로 ‘미국의 혁신, 책의 힘’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서다.

그는 “평소에 서점과 도서관을 방문할 때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시각을 담은 책이 쌓여있는 것을 보고 부러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미국 출판사들은 재능 있는 잠재 작가들을 열심히 발굴해내고, 언론들도 좋은 책을 띄우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비해 “치유(힐링)와 자기계발서의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독서문화는 우려할만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글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네티즌들간에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나는 정보기술(IT) 및 비즈니스 분야를 소개하는 글을 쓰면서 이러한 쏠림현상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과연 그 해법은 없을까. 나는 오랫동안 이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나름대로 그 해답을 찾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 동안 내가 고민했던 내용도 곁들여 소개하려고 한다.

대한민국_IT_인사이드

이를 위해 최근 국내에서 출판된, 돋보이는 책 2권을 살펴보자. 먼저 검토할 책은 ‘대한민국 IT 인사이드’다. 저자(조신 박사)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정보기술(IT) 분야 민간 기업과 정부 정책연구소에서 일했다. 최근에는 연세대 미래융합기술연구원장이라는 또 다른 중책을 맡았다.

그가 펴낸 책은 오랜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데다가 일반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쓴 점이 우선 눈길을 끌고 있다. 저자는 IT 산업의 가치 사슬을 콘텐츠(C), 플랫폼(P), 네트워크(N), 그리고 디바이스(D)라는 4개의 틀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IT 산업의 태동기부터 최근 세계 정상의 기업들과 대등하게 경쟁하기까지 고속 성장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또 동시에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 노키아, 삼성 등 글로벌 IT 기업들의 부침도 날카롭게 분석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저자는 앞으로 IT 비즈니스가 어떻게 전개될지 전망하고 우리나라 기업들이 직면할 기회와 위험요소도 꼼꼼하게 살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세 번 놀랐다. 우선 책의 구성방식이다. 저자는 정교한 이론의 틀을 마련한 후 비즈니스 현실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책에서 그가 사용한 ‘C-P-N-D’의 틀은 난마처럼 얽혀있는 IT 비즈니스의 지형을 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좋은 강의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했다.

두 번째는 책이 다루는 내용의 포괄성이다. 이 책은 IT산업 전반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모바일 디바이스(이동 단말기) 산업부터 소비자들과 만나는 길목을 차지하기 위한 전투를 소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또 그 안에 담긴 내용물인 콘텐츠, 마지막으로 디바이스(단말기)를 구성하는 부품 및 소재산업까지 아우르고 있다.

세 번째는 구성의 치밀함이다. 저자는 콘텐츠 산업의 시장규모를 거론할 때 수치를 중복 계산할 수밖에 없는 속사정을 각주로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또 ‘구름 컴퓨팅’을 의미하는 용어인 ‘CLOUD’의 어원을 소개하는데 이 부분도 나는 처음 접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CLOUD“라는 용어가 ‘common, location-independent, online utility on demand(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문 서비스)’의 머리글자에서 따왔다고 소개한다.

내가 이 책의 저자인 조신 박사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가 페이스북에 소개하는 글을 읽고 흥미를 가졌다. 그의 글은 단순히 이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그 후 그의 블로그를 찾아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 책은 학교 담장 안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 교수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될 것으로 나는 본다.

ted

이어 소개할 책 ‘천재들의 유엔, TED’은 실용서다. ‘기술(T)과 연예(E), 다자인(D)이 결합된 축제’로 널리 알려진 TED의 이모저모를 담았다. 저자(김수현)는 SBS 문화부 기자. 그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직업의식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좋은 것을 발견하면 남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다”는 것. 그는 마감시간에 쫒기는 가운데서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TED는 우연하게 그의 곁으로 찾아왔다. 2010년 한국 언론사 최초로 TED콘퍼런스에 초청되어 TED의 큐레이터(최고운영자) 크리스 앤더슨과 제이미 올리버 등 유명 인사를 인터뷰한 것이 그 시작이다. 바로 TED에 매료된 그는 그 후 직접 현장을 휘젓고 다니며 ‘TED 주역들의 이야기’를 취재한 현장 르포를 책으로 펴냈다.

우리나라에서도 TED는 익숙한 이름이 됐다. 실제로 TED닷컴의 트래픽(네티즌들이 방문한 시간) 중 상당량이 한국에서 나온다, TED토크를 번역하는 일에도 열성인 나라이며 TEDx명동, TEDx이태원 등 TED 관련 행사가 많이 열리기도 한다. 대학생들은 스마트폰에 TED 앱을 깔아놓고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TED에 대해서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실망스럽다. “그거 테크놀로지,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에서 첫 글자 따서 만든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TED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잘라 말한다. TED는 단순한 동영상 강의 사이트가 아니며 토크로만 이루어진 것은 더 더욱 아니라는 설명이다.

개방된듯하면서도 폐쇄적인 TED콘퍼런스, 연사를 환영하며 수영장에 뛰어들기도 하는 TED액티브, 유명인과 함께 지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조찬 모임 등 TED에는 수많은 종류의 만남과 이야기가 있다.

책은 그 동안 저자가 취재하면서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책 말미에는 TED에 관한 상식, 볼 만한 TED토크 소개, TED 참가하는 방법, 주요 웹사이트 등을 부록으로 실었다.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 내용을 파헤치는 노련한 방송기자의 솜씨를 맛보는 것은 덤이다.

이제 임정욱 씨가 제기했던 질문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미국 작가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정보기술(IT)이 바꾸는 세상을 이해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미국은 정보기술(IT)이 싹을 틔우고 발전시킨 ‘거대한 실험실’이기 때문이다.

나도 외국 작가들이 쓴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다룬 책만도 족히 10권은 읽은 것 같다. 여러 권의 책을 읽어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과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나라 작가들만 할 수 있다. 나는 그 모델이 될 수 있는 책을 소개했다. 이러한 책을 읽고 격려해줄 ‘똑똑한(smart)’ 독자들을 만나고 싶다.

글 : 서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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