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스이야기 21] 미국에서 출장다니기

사회초년병때 미국에서 출장을 많이 다니는 사람을 보고 부럽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다. 막연히 우아하게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멋지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미국직장에 다니며 직접 출장을 다녀보니 그게 그렇게 멋지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꽤 고달픈 일이었다. 미국에서는 워낙 잦은 출장에 건강을 해치기도 하고, 또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가급적 출장이 없는 일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좁은 나라인 한국에서 국내출장을 다닐 일은 많지 않다. 멀리가는 출장이라고 해봐야 부산이나 제주도 정도인데 비행기로 한시간도 안걸리는 거리라 사실 당일치기 출장도 가능하다. 공항까지 교통편도 편리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웬만한 기업에서는 보통 출장일정이나 예약은 총무부서 담당직원이나 거래하는 여행사에서 해준다. 내 경우도 그랬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샌프란시스코 공항

그렇지만 국토가 넓은 미국에서는 국내출장도 만만하지 않다. 해외출장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멀고 힘들었다. 보스턴에 살때는 캘리포니아출장보다 런던출장이 더 편하게 느껴졌고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는 서울출장이 뉴욕출장보다 더 편하게 느껴졌다. 심지어는 서울행 항공권가격(8백불구매)이 뉴욕행항공권가격(1천불구매)보다 더 저렴할 때도 있었다.

미국에서 국내출장을 조금 다녀본 내 경험을 소개한다. (그렇게 자주 다닌 것은 아니었지만)

CEO도 직접 항공권과 호텔 예약하는 문화

라이코스에 CEO로 부임을 하고 나는 내 출장일정 같은 것이 있으면 비서가 알아서 척척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전담 비서도 없었고 오피스매니저(사무실관리)를 겸하고 있는 리셉셔니스트에게 부탁하면 되기는 하지만 대체로 직접 예약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영업담당인 에드에게 “출장예약을 누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냐”고 하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여기서는 그냥 익스피디아 들어가서 각자 예약한다”고 답했다. 임원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CEO인 나도 누구에게 부탁하지 않고 직접 인터넷여행사이트에 들어가서 구매했다.

출장행선지에 따라서 항공권가격도 천차만별이고 수백개의 호텔중에서 적당한 곳을 골라내 예약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단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다! 델타, 아메리칸, 버진아메리카, 사우스웨스트, 젯블루, 알라스카, 프론티어항공 등 미국국내항공사도 많고 매리오트, 쉐라톤, 할리데이인 등 호텔체인도 다양하다. 출장지 미팅예정장소에 맞춰 동선을 최소화할 수 있게 호텔을 잡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비서 등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카약닷컴(Kayak.com)같은 사이트로 항공권 가격비교를 하고, 호텔은 Tripadvisor.com에서 평판을 체크한 다음Expedia.com이나 Hotels.com 같은 여행사이트에서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하는 것이 평균적인 미국비즈니스맨이 출장일정을 잡는 방법이다.

공항까지는 택시가 유일한 수단

출장 당일이 되면 공항에 가는 것도 스트레스다. 보통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것 같은 장거리출장은 시간절약을 위해서 이른 비행기를 예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새벽 4시나 5시에 일어나서 짐을 꾸려서 나가야 했다.

뉴욕같은 큰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미국에서 공항으로 가는 대중교통수단이 미비한 것이 보통이다. 보스턴교외(매사추세츠주 렉싱턴)에 살때에는 출장을 위해서 공항에 갈 때 택시나 사설리무진서비스를 불러서 이용했는데 약 20km, 40분정도 거리를 가는데 팁 포함해서 거의 편도 1백불을 줘야 했다. (보스턴시내에서는 지하철과 버스로 공항에 갈 수 있기는 하다.) 내가 라이코스에서 일하던 당시에는 우버가 그렇게 일반적이지 않아서 쓸 수가 없었다. 매번 택시를 예약하는 것도 참 귀찮은 일이었다.

사장이 출장간다고 직원에게 공항으로 태워달라거나 공항으로 마중을 나와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그냥 문화가 그렇다. 서울의 다음본사에서 누가 출장왔을때 내가 나가면 나갔지 직원에게 픽업해오라고 부탁한 일도 없었다.

보스턴 로건 공항은 주차장이 협소한 편이어서 주차하느라 비행기시간에 늦을뻔한 일도 있었다.
보스턴 로건 공항은 주차장이 협소한 편이어서 주차하느라 비행기시간에 늦을뻔한 일도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 차를 공항에 가져가서 장기주차장(Long-term parking lot)에 세워놓기도 했는데 분주한 공항일수록 주차료도 비싸다. 며칠만 세워놓아도 역시 10만원에 가까운 요금이 나온다. 그래서 또 주차료가 상대적으로 싼 공항외부의 장기주차장을 검색해서 이용하기도 해봤는데 번거롭기는 마찬가지다. 차를 주차하고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들어가야 한다.

짜증나는 보안검색

미국의 국내항공편은 티켓팅도 거의 셀프로 해야 한다. ID를 주면 친절하게 알아서 발권을 해주는 항공사직원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짐은 가능하면 부치지 않고 가지고 탄다. 보통은 랩탑을 넣는 손가방이나 배낭과 함께 기내에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바퀴가 달린 여행가방을 가지고 간다. 젯블루나 사우스웨스트 같은 항공사를 제외하고는 짐을 부치는 것도 가방 하나당 20불씩 별도 요금을 받기 때문이다. (예전에 프론티어항공은 기내 화장실이용에 돈을 받겠다고 했다가 성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철회한 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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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줄이 늘어선 보안검색대를 지나는 것도 고역이다. 랩탑을 일일이 꺼내야 하고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채로 금속탐지기를 지난다.(갈아신을 슬리퍼를 제공해주는 한국공항은 고객에 대한 배려심이 아주 깊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 역시 피곤하고 퉁명스러운 얼굴의 공항검색요원과 마주해야 하고 재수없으면 몸을 더듬는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

국내선 항공사라운지는 거의 이용한 일이 없다. 한두번 들어가 본 일이 있는데 정말 별 것이 없다. 스낵과 음료가 조금 있는 정도이며 사람이 많아서 쾌적하지도 않다.

새벽의 게이트앞.
새벽의 게이트앞.

새벽에 일찍 공항에 간다고 해서 사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미국공항은 새벽 5시에 가봐도 놀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다들 이처럼 바쁘고 부지런하게 산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장거리비행에도 음식을 주지 않는 미국국내항공편

장거리비행의 경우에는 샐러드나 샌드위치라도 사서 탑승해야 한다. 점심이나 저녁시간을 포함해서 비행시간이 7시간이 넘더라도 미국국내선의 경우는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돈을 내고 식사를 살 수 있지만 차가운 샌드위치나 스낵, 땅콩 정도만 제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항공사의 항상 미소를 띄고 있는 친절한 승무원들의 서비스를 받다가 사무적이고 딱딱한 미국항공사 승무원을 대하면 처음에는 좀 적응이 안된다. (사우스웨스트나 젯블루는 예외. 이 항공사들의 승무원은 아무 명랑하다.) 불결하고 좁은 좌석에 짐짝처럼 실려가는 것도 괴로운데 배까지 고프면 최악이다. 뭔가 먹을 것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렌트카가 꼭 필요

목적지 공항에 내리면 서둘러 렌트카를 빌리러 가야 한다. 뉴욕 같은 일부도시를 제외하고 보통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차가 없으면 꼼짝할 수 없기 때문에 차를 빌리는 것이 답이다.

LA공항에서 렌트카회사 셔틀버스 기다리기
LA공항에서 렌트카회사 셔틀버스 기다리기

렌트카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렌트카 오피스에 가면 또 긴 줄이 늘어선 경우가 많은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예약해둔 렌트카를 빌려서 새로운 차에 적응해가며 조심조심 낯선 곳에서 운전해 역시 예약해둔 호텔로 찾아간다. (이것도 지금은 우버 덕분에 렌트카가 필요없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빨간눈 비행

서부에서 동부로 출장가는 경우 3시간의 시차가 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에 3시간 더 빨리 일어나서 미팅장소로 가는 것도 고역이다. 서부에서 동부로 갈때 밤 10시~새벽1시사이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면 3~5시간을 비행하고 2~3시간의 시차를 더해 아침일찍 도착한다. 비행기에서 새우잠을 자는 대신 도착하자마자 바로 일정을 시작해 하루를 절약할 수 있다. 이런 노선을 ‘빨간눈 항공편'(Red Eye Flights)이라고 부른다. 피로에 절어 눈이 빨개진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나도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출장을 갈 때 이용해 본 일이 있다. 비행기에 탑승해 자리를 잡고 나면 모두 담요를 뒤집어 쓰고 모두 취침모드로 돌입한다. 시간과 돈(호텔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도해봤는데 몸이 상한다.

***

보통은 이게 평균적인 미국 비즈니스맨의 출장패턴이다. 경우에 따라 상상을 초월하게 출장을 많이 다녀야 하는 직업이 있다. 앱인디에어(Up in the air)라는 영화에 나오는 조지 클루니 같은 사람이다. 미국전역을 돌아다니는 트럭운전사들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소위 ‘로드워리어’라고 할 수 있다.

미국회사의 임원이라고 해도 조금 더 좋은 좌석에 앉고 조금 더 좋은 호텔에 묵는 정도지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미국 국내항공편의 일등석이나 비즈니스석도 사실 한국국적기처럼 훌륭한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다. 조금더 넓은 좌석을 제공할 뿐이다.

그래서 미국의 진짜 부자들은 개인전용기(Private Jet)를 갖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다.

라이코스는 당시에 비용절약을 위해서 나를 포함한 임원들도 모두 이코노미석을 타는 것으로 했다. 그래서 더 출장이 고달팠는지도 모르겠다.

글 : 에스티마
원문 : https://goo.gl/8jGtF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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