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보금자리, 비엔나를 떠나며

비엔나 스타트업 패키지에 선정되어 3개월 간의 비엔나에서의 여정을 마치며 비엔나 도심으로의 마지막 발걸음을 했다.

<비엔나 호프부르크 궁전의 외관>

도심 한복판에 있는 카페 센트럴(Café Central)에서 멜란지(Melange) 한잔을 시켰다. 5월 파이오니어 페스티발 참관차 왔을 때에는, “비엔나 커피”를 시켰었다. 나중에 알게된 정식명칭은 “Einspänner Coffee”. 휘핑크림이 가득한 달달한 이 커피는 다행히 “비엔나 커피”라고 주문해도 통했었다. 관광객처럼 두리번 거리던 그 당시 나에게 비엔나는 과거의 유산이 전부인 도시였다.

<카페 센트럴(Café Central)>

주문한 커피가 나오는 동안 주위를 둘러 보며, 1876년 설립되었다는 이 카페의 1913년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아돌프 히틀러, 블라디미르 레닌이 근처에 살면서 이 담배연기 자욱한 카페를 내집처럼 들락거렸다고 한다. 이들이 이웃사촌으로 카페에서 마주쳤을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이 동네에서 전통에 빛나는 카페라고 명함을 내밀려면 세계사 책에 나오는 인물 한두명으로는 곤란하다.

비엔나는 20세기 초에 200만명이 사는 세계 지성의 수도였다. 이후 세계대전과 제국의 붕괴를 겪으면서 줄었던 인구가 다시 200만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19세기 말 비엔나는 혁신이 꿈틀대는 도시였고, 1910년을 전후하여 만개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가인 구스타프 말러가 비엔나에 입성한 해인 1897년을 살펴보자.

5월 11일, 구스타프 말러는 비엔나 궁전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바그너의 로엥그린과 모짜르트의 마법피리를 연주하며 화려하게 비엔나에 데뷔했다. 아마도 눈에 보이는 저 앞 길을 생각에 잠겨 자주 걸어 다녔을 것이다. 회화, 건축, 디자인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선두로 여러 예술가들이 비엔나 분리파(The Vienna Secession)를 결성하여 기존 학구적 스타일에 결별을 선언하였고, 이 카페에 둥지를 튼 “젊은 비엔나” 라는 작가집단의 멤버 하나는 문학에서 가식을 벗어 던지고 “Reigen”(La Ronde) 이라는 포르노에 가까운 연극대본을 썼다. 모두 1897년 바로 이 근처에서 생생하게 벌어졌던 일들이다.

스타트업 패키지는 비엔나 시가 전 세계 10개의 혁신 스타트업을 선정하여 3개월간의 숙박과 항공권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각종 워크샵과 네트워킹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였다. 아무런 조건도 없었다. 그냥 불러서 환대한다고나 할까? 비엔나는 왜 이런 프로그램을 하는 것일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 궁금증은 깨끗하게 풀렸다. 비엔나는 문화, 예술의 수도였던 20세기 초의 영광을 다시 재현하고 싶어 한다. 시대가 바뀌어 지금 자본주의 시대의 지성은 당대와 같이 학문이나 문화, 예술에서가 아니라, 현실 문제에서 혁신을 추구하고 있고, 이에 맞추어 비엔나는 글로벌 혁신의 보금자리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는 경험을 통해 성숙한다. 비엔나는 이미 긍정적인 과거를 경험하였고, 경험은 일상의 공기가 되어 오늘에도 흐르고 있었다. 비엔나는 예나 지금이나 혁신의 보금자리였다.

비엔나가 가지고 있는 혁신을 잉태하는 힘은 무엇일까? 일상 생활을 관통하고 있는 비엔나의 정신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짧지 않은 3개월 동안 내가 알아낸 비엔나의 힘은 다양성(Diversity)와 관용(Tolerance)으로 요약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이 도시는 이런 가치를 보여주는 데에 남달랐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제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으로 옮겨가면서 국가, 인종, 언어, 종교적 차별을 포함한 거의 모든 종류의 차별을 폐지하였으며, 타 제국, 예를 들어 러시아 제국에서 노골화된 유대인 차별이나 타 언어의 사용을 금지하는 일도 이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양성의 존중은 자연스럽게 관용의 전통을 만들어 낸다. 타인의 생각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매도 하지 않는 것이며, 새로운 생각을 포용하는 배려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학구적 틀에서 벗어나려는 분리주의가 시작하고 꽃을 피웠으며, 직접 보고 큰 감동과 영감을 받은 이곤 실레의 작품을 잉태한 것이다. 데카당스(Decadence) 적인 시도를 자연스럽게 포용할 수 있는사회는 드물다. 그 만큼 성숙함과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한가지 더 뽑는 다면 미래지향성이다. 비엔나에서 도심의 유적들은 완벽히 관리되는 한편, 바로 아래 지하에는 지하철이 도시 전체를 구석 구석 24시간 연결하고 있으며,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외곽만 해도 초 현대적인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하루를 스타트업 데이로 지정하여 수십가지의 행사를 곳곳에서 동시에 진행하고 있었고, 혁신을 주제로 하는 파이오니어 페스티발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경복궁에 해당하는 호프부르그 궁전에서 열렸다. 비엔나는 과거에 매몰된 관광도시가 아니라, 시선은 온전히 미래를 향해 있는 살아있는 도시였다.

<호프부르그 궁전에서 열리는 Pioneer Festival>

카페에서 커피잔을 내려 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렇게 3개월간의 즐거운 비엔나에서의 여정은 끝나지만, 나의 조그만 혁신은 이 멋진 도시의 호의를 고맙게 기억하고, 힘차게 세계에 도전할 것이다. 올해 또 대한민국의 스타트업 하나가 비엔나 스타트업 패키지 수혜자가 되어 아마도 이 카페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축하한다 그리고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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