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Square] 자전거 경제학 그리고 아이폰

일요일 오후 강남에 볼 일이 있어서 나가려다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자전거를 타고 가보기로 했다. 중랑천을 따라 한강 강변까지 내려가 서울숲을 지나 동호대교를 건너 양재천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 서울 살면서 좋은 걸 딱 하나만 고르라면 잘 닦인 강변 자전거 도로를 꼽겠다. 시내 자전거 도로는 엉망이지만 한강 둔치 자전거 길은 꽤나 잘 돼 있다. 중랑천과 양재천, 탄천, 불광천, 홍재천, 안양천 등 한강으로 모이는 크고 작은 천변 길도 좋다.

‘BikeMateGPS’ 라는 아이폰 앱으로 측정을 해봤더니 편도 1시간30분, 22.4km가 나왔다. 2.99달러의 유료 앱이지만 전에 들고 다니던 GPS 수신기, 마젤란 익스플로리스트나 가민 60CSx와 비교하면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이다. 갔던 길로 그대로 돌아왔으니 모두 45km 정도, 올 때는 좀 더 천천히 와서 왕복 3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이 아이폰 앱은 칼로리 소모량까지 측정해 주는데 편도에 439kcal가 나왔다. 왕복 900kcal 정도 소모한 셈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진: 이정환닷컴, BikeMateGPS로 기록한 루트를 GPX 파일로 저장해 구글 어스에서 불러온 것.)

우리나라 성인 남성 하루 권장 칼로리 섭취량이 2500kcal, 여성은 2000kcal인데 이보다 더 많이 섭취하거나 운동을 게을리하면 살이 찌게 된다. 흔히 칼로리 섭취를 낮춰서 다이어트를 하지만 이는 오히려 기초 대사량을 낮춰 건강을 해치거나 쉽게 살이 찌는 요인이 된다.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기초 대사량은 남성이 체중 1kg당 1시간에 1kcal, 여성은 0.9kcal 정도다. 핵심은 적당히 먹고 최소한의 운동을 해줘야 한다는 거다.

운동을 꾸준히 하면 기초 대사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운동을 안 하면 기초 대사량이 줄어들어 질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칼로리 섭취를 줄이는 다이어트 역시 마찬가지다.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걸 느끼게 되면 몸이 알아서 기초 대사량을 줄이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에너지 소모가 줄어들고 적게 먹어도 살이 쉽게 빠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조금만 먹어도 찌게 된다. 기본 칼로리를 섭취하되 기초 대사량과 활동 대사량을 늘리는 게 다이어트의 기본이다.

만약 내가 오늘 차를 몰고 갔으면 얼추 왕복 30km, 시간은 1시간40분 정도. 기름 값은 5천원 정도가 들었을 것이다. 그나마 주말 오후라 좀 한가해서 그렇지 평일이라면 2시간 훨씬 넘게 걸렸을 가능성이 크다. 택시를 탔다면 왕복 3만~4만원 정도? 전철을 탔다면 3번 갈아타고 왕복 3시간에 1100원. 다른 교통 수단과 비교해 봐도 딱히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자전거를 타는 데는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다. 아무런 자연 자원도 소모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몸을 굴려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김훈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 속도와 사람의 관계는 순결하다”. “속도와 힘은 오직 다리품을 팔아서만 나온다”. 날마다 밥을 먹기 때문에 내가 쓴 에너지는 고스란히 다시 재생된다. 만약 내가 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는다면 지방으로 쌓이거나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치게 된다.

자전거를 타면 얻는 것도 많다. 우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스펙터클한 길거리 풍경을 볼 수 있다. 앞만 보고 달리는 운전할 때와는 또 다르다. 시원한 바람을 맞고 달리다 보면 굳어 있던 우뇌가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사색의 즐거움도 있다. 자전거를 타면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솟아난다. 근육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나고 페달과 심장 박동이 일치하는 순간 지구 끝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걷기나 달리기와 비교하면 걷기는 좀 심심하다. 그리고 달리기는 너무 힘들다. 한 시간 이상 달리기는 어렵지만 자전거는 쉬어가며 두세 시간도 탈 수 있다. 자전거는 달리면서도 패달을 멈추고 쉴 수 있다. 작정하고 조금만 달려도 동네를 벗어나 훌쩍 멀리까지 나갈 수 있다. 그만큼 성취 동기도 크고 기분 전환에도 좋다. 에너지 소모가 크지 않아 쉽게 지치지 않고 오랜 시간 운동할 수 있기 때문에 최적의 유산소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좌파가 자가용 승용차를 모는 걸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여러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한 번도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나는 사실 운전하는 게 귀찮다. 어디 멀리 놀러 갈 때라면 모르지만 출퇴근길의 운전은 지루하다. 기름 값도 기름 값이지만 매번 신호등에 걸리는 것도 성가시고 골목길 주차 공간 신경 쓰는 것도 귀찮고 무엇보다도 운전 도중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싫다. 운전하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이반 일리히는 인류를 구원할 세 가지로 숲과 도서관과 자전거를 꼽은 바 있다. 그는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에서 “자전거를 탄 인간은 보행자보다 3~4배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는데 소비하는 에너지는 5분의 1 밖에 안 된다”면서 자전거의 효율성을 강조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면 세상의 모든 동물과 세상의 모든 기계의 효율을 능가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전거가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보다 더 빠르다는 역설적인 계산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의 남성은 1년에 1600시간 이상을 차에 소비한다. 차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정지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차 속에 앉아 있다. 차를 주차장에 넣고 주차한 차를 찾기도 한다. 또한 차를 사기 위한 계약금과 다달이 지불해야 할 월부금을 벌어야 하고 연료비, 고속도로 통행료, 보험료, 세금, 교통위반시의 벌금 등을 지불하기 위해 노동한다. 깨어있는 16시간 가운데 4시간을 차를 운전하거나 그것을 위하여 필요한 재원을 모으기 위하여 소비한다.”

“여기에는 사고로 병원이나 검·경찰, 법원, 또는 자동차 수리공장에서 보내는 시간, 다음에 더 좋은 차를 사기 위해 자동차 광고를 보거나 소비자 교육집회에 참가하여 소비하는 시간 등은 계산에 넣지 않았다. 1년에 7500마일을 달리는 데에 1600시간을 소비한다면 이는 시속 5마일도 채 안 된다. 자동차가 없는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시속 5마일 이상으로 자신이 원하는 곳이면 어디에라도 걸아갈 수 있다.”

일리히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혹시 우리는 자동차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자동차가 자전거 보다 딱히 더 효율적인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자동차 때문에 잃고 있는 것을 돌아보라. 당신이 좌파라면 자가용 자동차를 모는데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지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믿는다.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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