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기술인문학 이야기(7)] 공간이 없는 장소, 제약이 약화된 시간

인터넷과 디지털로 대표되는 새로운 시대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많이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이다”의 저자인 니콜라스 니그로폰테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보스턴의 거실에 앉아 전자 창문을 통해 스위스의 알프스를 바라보며, 젖소의 목에서 울리는 방울 소리를 듣고, 여름날의 (디지털) 건초 내음을 맡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아톰(자동차)을 몰아 시내의 일터로 가는 대신 사무실에 접속하여 전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경우 나의 작업장은 과연 어디인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source : http://www.flickr.com/photos/background-checks/3656609003/

장소와 주소의 새로운 의미

이와 같은 추세는 점점 더 장소와 주소의 개념을 바꾸어 놓는다. 한자로 주소(住所)를 해석하자면 “사는 곳”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물리적으로 거주하는 곳을 의미하는 단어였지만, 이제는 다양한 주소가 존재한다. 물리적인 거소에서 존재하는 것 이상으로 비트로 이루어진 가상의 장소에서 존재하는 시간의 비중이 커져가고 있으며, 비트의 공간에서 사람들의 거소를 나타나는 소위 “공간이 없는 장소”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지는 시대이다.

초창기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메일이 보급되면서, 이메일 주소가 자연스럽게 비트의 공간에서의 전통적인 주소 역할을 해왔다. 이런 경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최근에는 그 사람의 가상공간에서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장소가 더욱 많아지고 있다.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사람은 자신의 치장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을 마음껏 치장해서 남들에게 보란 듯이 주소를 공개하고 있으며, 이메일은 다소 사적인 공간으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행태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대별되는 소셜 웹 서비스들의 계정들도  인터넷 상에서의 개인의 페르소나(Persona)를 나타내는 주소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각각의 가상공간의 주소들은 모두 물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필자의 개인 이메일 주소는 구글의 데이터센터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며, 트위터나 페이스북 주소는 역시 이들 회사의 클라우드에 위치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필자에게 접촉을 하기 위해 이용하는 주소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사의 물리적 주소가 아니다. 많은 사용자들은 쇼핑몰에서 여러 매장들을 돌아다니듯이 네트워크를 돌아다닌다. 브라우저라고 이름 붙여진 자동차를 타고 가상의 주소 체계에 따라 이 서버에서 저 서버로 이동하면서 쇼핑을 한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새로운 “공간이 없는 나만의 장소”는 모든 사람들을 간단히 연결하는 거대한 새로운 가상의 공간체계를 만들었다.   


시간의 활용이 달라진 생활방식

과거의 전통적인 아톰 위주의 사회에서는 절대적으로 생산수단과 업무환경이 있는 곳에 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그리고 노는 시간과 집에서 쉬는 시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5시라는 일반적인 일하는 시간과 일하는 곳까지 움직이는 출퇴근 시간, 주말이라는 달콤한 충전시기와 직장에 따라 다르지만 일 년에 1~2주일 정도의 휴가를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너무나 당연했던 생활의 리듬이 인터넷과 모바일의 시대가 되면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업무와 관련되는 메시지가 개인적인 메시지와 함께 섞이지 시작했고, 평일 밤이라고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다. 일요일에도 경우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할 수 있으며,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영상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를 협업을 하는 당사자들과 나눌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명확한 일과시간의 구분을 짓고, 여기에 응답하지 않는 생활패턴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다. 전통적인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일을 사무실에 남겨두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언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일하는 것에 쏟기도 하고, 잠시 휴식이 필요하면 좋아하는 만화나 동영상을 찾아보거나, 음악을 듣기도 한다. 새벽 시간이나 일요일에도 여유가 있고 능률이 오른다면 일을 하고, 주어진 일을 모두 완수한 뒤에는 휴식을 가진다. 이미 우리는 출퇴근이나 정해진 시간의 경계에서 벗어나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만 전통적인 시간의 경계와 장소의 제약을 완전히 극복하는 정책을 기업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과거로부터의 습관을 쉽게 바꾸기도 어렵기 때문에 아마도 당분간 혼란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간에 분배와 활용에 대한 패러다임 시프트는 이미 일어나기 시작했다. 


글 : 정지훈
출처 : http://health20.kr/2298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