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의 대한민국 벤처스토리 (6)] 벤처기업의 출구를 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한국기술거래소는 벤처 버블 붕괴와 정부 출자기관이라는 한계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제2벤처붐의 핵심이 M&A 활성화에 있다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진은 2001년 3월 한국기술거래소 1주년 행사모습. 왼쪽에서 3번째가 필자다.

1999년 대규모 벤처붐이 불기 시작했다. 1996년의 코스닥, 1997년의 벤처기업특별법, 1998년의 실험실 창업운동과 창업보육센터, 불법복제 단속, 인터넷코리아운동의 결과이다.

신문지상에서는 연일 ‘벤처 대박’을 보도하고 있었다. 카이스트 출신 오상수 사장이 설립한 새롬기술은 세계 최초의 인터넷전화, ‘다이얼패드’ 하나로 시가 총액이 5조원을 넘어섰다. 매출은 없었다. 그러나 가치는 당시 웬만한 재벌을 능가했다. 새롬기술을 이어받은 미국의 스카이프사가 올해 들어 9조원에 매각된 것을 감안하면 거품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지훈 관동대 IT융합연구소 교수는 저서 <거의 모든 IT의 역사>에서 실제로 구글 보이스가 다이얼패드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여하튼 창업 동지들 모두가 대박을 터뜨리니 당연히 젊은이들의 피가 끓었다. 대학에서 청년창업이 활발해지는 것은 물론 대기업 간부들도 창업대열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언론인과 공무원들이 퇴직을 하고 벤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신랑감 1순위가 벤처기업가가 됐다.

드디어 벤처붐 조성이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벤처산업의 설계자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오고 있었다. 실험실에서 창업한 카이스트 교수들은 연일 전화를 해왔다. “이제 기술은 준비됐는데, 영업은 어떻게 하느냐? 자금 관리는 대안이 있느냐?” 사실 벤처창업자들의 대부분은 기술자들이었다. 그들은 기술의 전문가일 뿐 영업 전문가는 아니었다. 사업은 기술과 시장의 결합이기에 나머지 반쪽을 채워야 했다. 모든 기술창업자들이 영업의 달인은 아니지 않은가.

벤처붐을 질시하는 전통 제조업 사장들의 반발도 거세졌다. “벤처만 중소기업이냐? 한국산업의 뿌리는 전통제조업이 아닌가?” 제조업의 반발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벤처를 육성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인수합병(M&A)과 기술거래였다. M&A는 기술벤처의 출구였고 기술거래는 전통제조업의 출구였다. 특허거래는 혁신 경제의 근간이다.

기술창업자들이 기술을 완성하면 세 가지 시장진출 방안이 있다. 첫째는 직접 시장개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공확률이 높지 않다. 둘째는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것인데 불공정거래를 극복하지 못하면 수익이 안 난다. 셋째는 기업을 파는 것이다. 즉 M&A가 또 다른 대안으로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M&A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그러나 미국 창업기업의 90%는 M&A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M&A 규모가 나스닥의 열배에 달한다. M&A를 통해 대기업은 혁신적 기술을 얻고, 벤처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얻으며 초기 창업투자를 한 엔젤들은 수익을 얻는다. 코스닥 상장까지 1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중간 투자회수시장이 없다면 초기투자는 불모지가 될 수밖에 없다. 엔젤 투자자 육성이 창업 활성화의 근간이며 M&A 중간 회수시장이 엔젤육성의 핵심인 것이다.

전통 제조업의 혁신은 내부 기술개발로 이루어지기는 어렵다. 외부의 기술도입이 필요하다. 대학 연구소의 기술을 거래를 통하여 도입할 수 있다면 다시 성장엔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특허거래는 미래 산업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를 위한 기술거래의 활성화는 당시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였다.

정부는 기술거래를, 벤처기업협회는 M&A거래를 목적으로 의기투합해 2000년 3월 한국기술거래소를 설립했다. 초대사장은 홍성범 세원텔레컴 사장이었다. 벤처기업협회가 78억원, 지식경제부 50억원, 은행과 산업은행이 30억원, 그리고 벤처캐피털협회 등이 20억원을 출자했다. 1차 벤처붐의 주역이 코스닥이었다면, 2차는 기술거래소라는 꿈을 안고 민관합동 경영이라는 도전을 한 것이었다. 미국의 체스브로 교수가 2003년 ‘Open Innovation(개방형 혁신)’을 주창하기 무려 3년 전에 한국이 세계 최초로 개방혁신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도전했던 것이다.

비록 벤처 버블 붕괴와 정부 출자기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현 정부 들어 산업기술진흥원으로 통합이 됐으나, 제2 벤처붐의 핵심이 M&A 활성화에 있다는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글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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