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은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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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 널리 사용하는 ‘웹’이라는 용어는 1989년 3월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의 연구원인 팀 버너스 리의 제안으로 시작되어 연구, 개발되었다. CERN은 유럽 최대의 연구 조직 기관으로 여기에는 천재적인 수천 명의 사람들이 창조적인 과제들에 공통의 목표를 맞춰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조직 구조는 오늘날까지도 유래가 없을 정도로 상당히 유연한 것으로 유명한데, 사람들은 CERN 내에서 조직의 장벽을 거의 느끼지 않은 채 자유롭게 교류와 협력을 하는 업무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룹 간 정보나 장비, 소프트웨어를 공유하는 방식에서도 조직의 벽을 거의 느끼지 않은 채 어려움이 없었다. CERN은 요즘의 기업들도 부러워 마지 않는 그런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CERN의 장점은 곧 고민거리이기도 했다. CERN의 규모나 업무의 내용이 워낙 크다 보니 조직 내에서 실제로 관찰된 업무구조는 다중 연결된 거미줄(웹:web)의 형태를 가져야 했고, 자유로운 상호 교류 문화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진화하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첫째 문제는, 조직 내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자기의 사수가 누구인지, 누구와 대화하는 것이 유용한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문제는 업무 정보의 효과적인 축적과 추적이었다. CERN은 필요에 따라 업무가 전환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의 업무 전환 기간이 2년도 채 안될 정도로 짧은 편이었는데, 업무가 교체되어 버리고 나면 그 사람이 진행하던 과제에 대한 정보는 그대로 손실되는 경우가 많았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무엇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를 그가 파악하기 위해 본인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과거 프로젝트에 대한 세부 기술 자료들이 영원히 유실되는가 하면, 긴급 상황에서 탐정 조사를 거쳐야만 복구되기도 했다. 사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정보가 담당자에 의해 제대로 기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서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았다는 점이다. CERN의 모든 연구 내용을 매번 책으로 만들어 정리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었지만, 그것도 비현실적이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새 기술을 적용해야 하고, 매 과제마다 전혀 다른 접근방법을 취해야 하는 경우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 팀 버너스리가 많은 시간을 들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는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는 CERN내의 수많은 연구와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서 정보들에 대한 정보 손실에 대한 답을 찾고자 많은 사람들과 토론을 했고,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최신 정보를 담은 책자는 비현실적이야, 책의 내용은 계속해서 수정되야 하고, 그럴 때마다 책을 새로 찍어내야 하나? 책의 내용도 문제지만, 책자의 구조 자체가 문제야’

그러다가 문득 책의 ‘선형성’이라는 특성에 주목을 하게 된다.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책은 수백에서 수천 장의 종이가 한 권으로 묶인 형태를 띠고 있다. 묶어두지 않으면 종이들은 제 각각 바람에 날리게 되어 순서가 뒤죽박죽 되어 읽기가 어렵게 되고, 원하는 내용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책은 이처럼 각 페이지들이 서로 연속해서 연결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런 물리적인 제약이 사라진다. 디지털 문서에 담기는 내용은 글자나 그림으로 제한될 이유가 없다. 소리도 담을 수 있고, 동영상도 담을 수 있다. 즉, 전자문서는 멀티미디어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그릇이 될 수도 있다. 또한 책과 달리 디지털 문서는 한 페이지에 담을 수 있는 물리적인 텍스트의 양의 제한이 없다. 때문에 페이지의 개념은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글자의 양이 아니라 하나의 생각을 담는 논리적인 구분이 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주제가 하나의 페이지에 담기는 것이다. 이 점은 사람들간의 대화를 떠올려보면 명확해진다. 사람들의 대화는 전혀 선형적이지 않다. 어떤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삼천포로 빠져 전혀 다른 이야기로 깊이 들어갔다 다시 돌아와서 이전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 이유는 사람의 사고 방식 자체가 방사형으로 떠오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가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사실 사람들의 비선형적 사고구조를 선형적으로 강요하고 있는 셈이었다.

‘아, 그거야’ 라며 버너리스는 무릎을 친다. 디지털 문서의 각 페이지는 책과 달리 물리적인 길이의 제한이 없다보니, 고유한 하나의 완결된 주제를 가지는 이야기인 ‘문서(document)’로 구분할 수 있고, 문서와 문서는 연속된 페이지의 형태일 필요가 없다. 하나의 문서에 모든 책의 내용을 담을 수도 있고, 주제별로 문서를 구분할 수도 있다.  특히  버너스리는 바로 이 ‘묶는 방법’에 주목을 한다. 문서와 문서를 손쉽게 묶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CERN내의 방대한 문서들을 손쉽게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 고민이 탄생시킨 것이 ‘하이퍼텍스트(HyperText)’[6]였다. 하이퍼텍스트라는 용어는 건녀 편의, 초월, 과도한이라는 뜻을 가지는 하이퍼와 텍스트(text)를 합성하여 만든 용어로 철학자 테드 넬슨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하이퍼텍스트는 문서와 문서를 ‘링크’라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여, 비선형적으로 문서를 언제든지 옮겨 다니며 읽을 수 있는 문서 구조를 정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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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http://websoftwareblog.com/five-mistakes-to-aovid-with-web-design/

버너스리는 CERN경영진에게 하이퍼텍스트를 사용하는 시스템을 제안한다. 오늘날 우리가 웹(Web)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는 웹이 CERN의 복잡성을 타개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버너스리가 CERN에 제출한 ‘정보관리에 관한 제안’ → 각주 처리Information Management: A Proposal; Tim Berners-Lee, CERN; March 1989, May 1990) 을 읽어보면 우리가 그를 사랑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고 그가 왜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이 제안을 통해, 하이퍼텍스트 시스템이 CERN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두를 보다 더 가깝게 연결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하기를 제안한다.

우리는 링크로 연결된 만국 공통의 정보 시스템을 지향해야 하며, 여기서는 화려한 그래픽 기술과 복잡한 부가 기능보다 보편타당성과 편의성이 더 중요하다. 누구나 중요하다고 느끼는 정보나 참고사항을 찾기 위해 어떤 곳이든 방문해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게 목표다. 이런 정보는 그 문서가 포함된 시스템의 바깥에서도 접근할 수 있도록 임계 문턱을 넘어 성장할 수 있고, 그럴수록 바깥에 있는 문서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 문서를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사용하게 할 수 있다. 문턱을 넘어가는 일은 기존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새로운 것들과 ‘링크’로 상호 연결되도록 최대한 허용할 때 빨리 진척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는 거미줄과 같은 방대한 문서들의 집합체,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는 CERN내의 복잡한 상태계 내에서의 정보 관리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머지 않아 CERN과 같은 문제를 봉착하게 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문제 해결에까지 관심을 확장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지구상의 그 어떤 곳에 있는 전자 문서도 손쉽게 접근하여 읽을 수 있는 하이퍼 미디어 시스템의 세상, 책이라는 물리적인 공간의 제약이 아닌 전 지구적인 지식의 소통을 꾀하려 노력했던 버너스 리. 멋있다라는 표현은 이럴 때 아끼면 안된다. 그가 이 때 출간한 책 제목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당신이 꿈꾸는 인터넷 세상, 월드와이드웹(Weaving the web)’.


웹이 지구촌을 뒤덮다 – 월드 와이드 웹

버너스리의 주도적인 공헌하에 90년대 초 탄생한 web은 전 지구적인 매체로서 확산되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HTML이라는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하이퍼텍스트 문서들이 웹 서버의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되었고, 인터넷 상에 분산되어 있는 수 많은 문서들이 자유롭게 묶이기 시작했다. 문자 정보나 음성 정보가 전부였던 제한된 소통 구조의 제 1스크린 시절의 통신 방법과 달리 문자, 음성 뿐만 아니라 그림이나 사진, 동영상까지 손쉽게 담아서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하이퍼미디어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들의 각광을 받았다.  또한 웹서버 상에 있는 하이퍼텍스트를 손쉽게 볼 수 있게 해 주는 소프트웨어인 브라우저들의 발전으로, 1994년 넷스케이프가 등장한 이후, 웹의 이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오늘날의 인터넷으로 성장하기에 이릅니다. 즉, 웹을 통해 인류가 만들어낸 정보의 소통성 수준은 혁명적인 수준으로 커졌다. 수많은 회사들은 자사의 서비스를 웹을 통해 제공하였고, 웹을 통한 고객과의 다양한 상호 작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데 포커스를 맞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닷컴 신화를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웹 1.0의 종말

웹은 버너스리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하였고, 덕분에 인류가 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그러나 웹은 본격적인 인터넷 사용자의 증가 속에서 금방 그 한계를 드러낸다. 이 때까지만 해도, 웹은 HTML을 통한 ‘정보의 제공’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진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HTML은 그 자체로 정보를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링크를 통해 연결된 문서간의 손쉬운 이동을 제공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었지만, 하이퍼텍스트 문서는 HTML이라는 문법을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게다가 쏟아지는 정보를 HTML문서에 업데이트를 하는 것 역시 만만찮은 비용이 들어갔다. 세계 곳곳에서 생성되는 문서들은 결국 옛날 정보와 새로운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정보의 홍수속에서의 혼란성을 야기시키기에 이르렀다.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의 등장으로 최신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정보에 대한 접근이 쉬워지자 오히려 이런 양상은 커져만 갔다. 일반인들은 정보에 대한 일방적 수용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닷컴 버블이 일어나면서 독점적인 정보로 돈을 버는 상업 사이트가 우후죽순으로 등장하였고, 가치있는 정보들은 은폐되어 비용을 지불해야만 하는 형태로 변질되어 갔다. 획기적이 개념의 웹은 그것이 널리 확산되면서, 단 방향적인 정보의 소통 구조와 정보 독점 내지는 상업적 이용으로 그 성장의 한계를 직면하게 되었다. 그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이 닷컴 기업의 붕괴였고, 웹 1.0 시대의 폐막이었다.


글 : 송인혁
출처: http://everythingisbetweenus.com/wp/?p=354 / 모두가 광장에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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