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주주에게는) 참 나쁜 회사?

앞서 “애플 주가 왜 계속 오르나“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듯, 애플의 주가 상승 기세는 놀랍다. 주가는 500달러를 넘어 섰고, 시가 총액은 5000억 달러를 넘었다. 잡스가 물러나고 쿡이 새로운 CEO가 되면서, 잡스가 없는 애플의 주가가 어디까지 갈 것인지가 새로운 업계의 관심사가 되었다. 지금의 기세로는 선장이 잡스이든 쿡이든, 애플의 거침 없는 항해는 계속 될 것만 같다.

엄청난 현금 보유액, 형편 없는(?) 주주 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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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현금을 가진 애플
5000억 달러, 500달러라는 숫자와 함께 주목을 받고 있는 숫자가 하나 더 있다. 100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 보유액이 그것이다. 1000억 달러라면 원화로 110조 원이 넘는 숫자이고 한국 증권 시장의 시가 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시가 총액 170조의 65%에 달하는 숫자이며, 2위인 현대자동차와 3위 포스코, 4위 기아자동차의 시가 총액을 합한 수치(113조 원)와 유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애플은 지금 가진 현금만으로도 한국 주식 시장 시가 총액 2~4위 기업 전체를 시가로 바로 인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애플은 이렇게 많은 현금을 가지고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애플의 주가는 사상 최고를 넘어 질주하고 있지만, 애플의 주주 대접은 나쁘기로 유명하다. 최근 열린 주주총회에서 수정 되었기는 하지만, 애플의 주주는 애플의 이사직을 선임하는데 반대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배당은 1996년 이후 17년째 단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주주 입장에서는 주가 상승으로 상당한 자본 이익을 안겨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더 나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드는 것도 당연할 법하다. 그리고, 이런 주가상승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기업에게 필요 이상의 현금 보유란…

기업이 현금을 필요 이상으로 잔뜩 쌓아두고 있다는 것은 주주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행동이다. 이것을 개인으로 비유해 보자. 내가 1000원을 사업 하는 친구에게 투자 하였다. 친구는 수완이 좋아서 그 1000원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었고, 1000원의 가치를 가진 사업은 2000원의 가치가 되었다(주가상승). 그런데, 그 친구는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데 필요한 금액을 제외한 남는 돈(500원이라고 하자)을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닐 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친구에게 투자한 내 입장에서는 그 500원을 가지고 지금 사업을 더 크게 키우는데 쓰든(기존 사업에 재투자), 다른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는데 써서(신 사업 인수) 내 돈을 더 빨리 불려 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나에게 돌려주는 게(배당) 더 나은 것이다. 나는 그 500원을 받아서 소비를 하든, 또 다른 곳에 투자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애플이 110조원의 현금을 들고 몇 푼 안되는(?) 은행 이자만 받으면서 배당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애플은 이렇게 배당을 하지 않는 것일까? 스티브 잡스가 배당을 억제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그의 의도를 추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애플은 1996년부터 배당을 하지 않고 있는데, 바로 이 해에 1985년 애플을 떠난 스티브 잡스가 다시 애플로 복귀하였다. 경영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기 때문에 배당 여력이 없었을 것이고, 그 이후 경영 환경이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다시 급히 유동성이 필요한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배당을 하느니 그 보다 더 큰 자본 이익을 돌려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생각이 하나의 경영철학이 되고, 그래서 그는 물러날 때까지 배당은 하지 않는 고집을 부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배당이 아닌 재투자’라는 그의 선택은 엄청난 주가 상승이라는 결과로 나타났으니, 잘못된 것은 아닌 셈이다.

110조 원으로 무엇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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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의 새 CEO, 팀 쿡
이제는 그렇게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현금이 너무나 많고 CEO도 바뀌었으니, 그 현금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럼 애플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서 친구의 예에서 말했지만, 선택은 크게 두가지이다. 재투자를 해서 회사를 더 키우든, 주주에게 돌려주든.

애플이 지금 가진 돈으로 기존 사업에 재투자 해서 지금처럼 높은 성과를 올릴 수 있을까? iPod, iPhone, iPad에 이은 또 다른 메가히트 프로젝트를 숨겨 놓았을까? 아니면 기존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을까? 기존의 성과 보다 더 높은 성과를 기존 사업 부문에서 얻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면 전혀 새로운 회사를 인수할까? 애플은 여러 사업을 벌리는 것 보다는 소수의 제품군을 극단으로 완벽하게 만드는 쪽을 택하는 회사이니, 전혀 새로운 회사를 인수하는 것도 택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더 이상 주주들에게 자본이득을 돌려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이고, 이대로라면 주가는 곧 정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내 500원을 돌려달라

결국, 애플이 ‘주주에게 나쁜 회사’로부터 벗어나려면 배당을 하는 것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플이 배당을 한다면, 지속적인 배당을 중요한 투자 포인트로 생각하는 노년층, 기관투자가들로부터 더 큰 관심도 받을 수 있을테고 말이다.

친구가 500원으로 괜히 안 하던 사업을 새로 벌려서 있는 돈 까먹는 것 보다는 500원을 나에게 돌려주는 게 더 나으니까.

글쓴이 : M
출처 : http://mbablogger.net/?p=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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