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트이너뷰(2)]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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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란 본래 제주어로 개인의 집과 마을 길을 잇는 골목길을 뜻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 속에서 걸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새로운 여행문화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패키지 관광이 아니면 렌터카로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는 방식이 대세였던 제주도 여행에 걸어서 마을 길, 산길, 들길을 걷는 형태의 여행 방식이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이런 여행 문화의 변화는 대형 관광지나 호텔, 렌터카 업체와 여행사, 그리고 대형 기념품 상가 중심이었던 제주 지역의 여행산업을 마을 곳곳의 작은 가게와 민박집, 까페, 택시 등 중소 규모 사업체나 마을 단위의 축제나 관광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하게 만드는 변화를 만들고 있다. 또한 자연과 지역 문화의 가치를 가까이 보여줌으로써 생태와 문화다양성이라는 가치를 계몽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여행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하게 집중된 서울과 수도권과 비교하여 상대적인 소외감을 가지고 있는 여러 지역에 서울이나 수도권을 따라하는 방식의 개발이 아니라 자기 지역의 고유한 가치를 중심으로 한 방식으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긍정적인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이런 변화를 주도한 것은 제주도 서귀포시 출신으로 언론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가 고향에 돌아온 서명숙 현 제주올레 이사장이 2007년 설립한 사단법인 제주올레다.

“누가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와서 길을 걷겠냐?”

그녀가 처음 제주에 걷는 길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서명숙 이사장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걷기여행길”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현실로 만들었다. 그녀에게는 스페인 산티아고의 순례길에서 경험한 걷기여행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있었으며,  그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영국인 길동무가 전해준 ‘너의 나라에 걷는길을 내보라’는 한마디에서 싹튼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나의 고향 제주에 산티아고 길 못지 않은 걷기여행길을 내겠다.’는 목표 외에는 사람들의 관심이나 물질적인 대가에 대한 기대없이 시작한 일이었기에, 밀려드는 크고 작은 좌절의 경험을 겪으면서도 두려움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제주올레가 길을 내는 과정은 다양한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과정이었다. 외부적으로는 지방자치 단체와 올레길이 지나는 마을의 주민들, 올레길을 찾는 여행객은 물론 때로는 군부대와 땅 주인, 중앙 언론과 크고 작은 후원기업들까지. 그리고 내부적으로는 자원봉사자 그룹과 다양한 배경을 가진 단체 실무자들을 아우르며 원활하게 소통하고 협력하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제주올레의 모습을 갖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통해 제주올레가 갖고 있는 혁신적인 가치와 함께 서명숙 이사장과 그 구성원들이 보여준 도전정신과 창의성, 협력성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사회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앙트러프러너(Entrepreneur)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 일반 정보 >

서명숙
1957년 제주도 서귀포 생
현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
2001~2003 시사저널 편집장, 2005 오마이뉴스 국장
저서: 흡연여성잔혹사, 웅진닷컴, 2004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걷기여행, 2008, 북하우스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북하우스, 2010

사단법인 제주올레
2007년 9월 설립
이사회, 자문단, 후원사, 자원봉사자, 자발적 커뮤니티로 구성
올레코스 개척 및 관리, 코스정보제공 및 안내, 걷기축제 등 행사 주최, 올레아카데미 등 지역환경교육, 기념품 판매 수익사업 등
http://www.jejuolle.org

< 서귀포 출신의 여성언론인 서명숙 >

지금은 올레시장으로 이름을 바꾼 서귀포상설시장. 그곳에 명숙상회라는 이름의 도매상이 있었다. 이북출신이었던 아버지와 서귀포 토박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 서명숙의 이름을 딴 가게였다. 육지를 잇는 정기적인 항공편도 카페리호도 없고 제주에 관광을 간다는 개념도 없던 시절, 제주도는 말 그대로 한반도의 변방이었다. 서명숙은 그 변방의 섬 제주에서도 다시 남쪽 끝, 변방의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서귀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 변방의 도시 서귀포에서 자라면서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 갖지 못한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서귀포 아이들에게는 넓은 바다와 그를 따라 이어지는 숲이 곧 놀이터였다. 활동적이라기 보다는 혼자 책 읽기를 좋아하는 소녀였던 서명숙도 친구들과 어울려 자연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대도시에서 태어났다면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지만 야생의 자연이 늘 가까이 있던 서귀포에서 자란 덕분에 그녀에게는 책 속에서 접하는 넓은 세상에 대한 동경과 함께 자연의 감수성이 자랄 수 있었다.

자연의 혜택에 더해 그녀가 어린 시절 얻은 또 하나의 행운은 적극적인 여성상이었다. 그녀의 이름을 딴 명숙상회는 서귀포에 식료품이나 잡화를 공급하는 도매상이었다. 어린 명숙의 눈에 그 가게를 운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바다에서 물질을 하고, 텃밭을 가꾸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등 여성의 활동이 적극적인 곳이 제주도기도 하지만 명숙의 집안 분위기는 좀 더 특별했다. 거래에서 중요한 결정은 항상 어머니의 몫이었고 아버지는 묵묵히 지원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 경험을 통해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여자는 보다 더 중요한 결정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 이런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는 여성에서 배타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언론계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펼치고,  이후 제주올레라는 새로운 일을 개척하는데 중요한 자산이 되어준다. 변방의 땅 서귀포에서 자란 책벌레 소녀이자 명숙상회의 둘째 딸로서 서명숙은 자연의 감수성과 세상을 보는 시야 그리고 적극적인 여성의 역할상을 가진 언론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서울에서 대학을 마친 서명숙은 언론인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1983년 월간마당에 입사하면서 언론계에 처음 일을 시작한 후 시사주간지인 시사저널에 오랫동안 몸담았다. 2001년 시사저널에서 시사주간지 최초의 여성 편집장으로 활약한 그녀는 2년 동안의 프리랜서 언론인으로 활동한 후 다시 인터넷언론사 오마이뉴스로 자리를 옮겨 역시 편집장을 맡는다. 당시 한겨레 권태선 편집국장과 함께 중앙언론사의 여성 편집장의 잇따른 탄생을 기념하는 축하행사가 열렸을 정도로, 중앙언론의 편집장은 여성 언론인에게 넘기 힘든 벽이었다. 1세대 여성언론인으로서 그녀가 자신의 일에 쏟았을 열정과 땀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는 것이었다.

그런 서명숙에게 특히 10년이 넘게 몸담았던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런 그녀가 오마이뉴스 편집장을 막 그만둔 2006년 소위 시사저널사태가 벌어진다. 편집을 마치고 인쇄에 들어간 기사를 사주가 나서서 빼내면서 회사측과 기자들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오랜 세월 언론인으로 살아온 그녀였기에 언론이 광고주로부터 100%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 같은 취재와 편집을 마치고 인쇄까지 들어간 기사를 사주가 나서서 뺀다는 것은 언론의 상식과 기본을 뒤흔드는 상황이었고,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냥 보고 있을 수 없는 큰 사건이었다. 후배들이 파업에 나서고 회사측이 외부필진을 동원해 억지로 잡지를 내자, 그녀는 온라인매체 오마이뉴스에 ‘짝퉁 시사저널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어 시사저널 회사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시사저널 사태는 회사측과 기자들 사이의 지루한 힘겨루기로 이어졌고 결국 퇴직 기자들이 모여 새로운 언론 ‘시사in’을 창간하는 결실을 맺으며 끝났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패배였지만 언론인 서명숙의 마음에는 큰 상처가 남았다. 평생 사랑했던 일. 평생 그것뿐이었던 일. 언론이라는 일이 싫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후배들이 새로 시작한 잡지 ‘시사in’을 돕기 위해 편집위원산티아고 길을 걷고, 직함을 맡고 글을 실었지만 이제 더 이상 언론이라는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불태울 열정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녀에게 큰 고통이었다. 언론인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해본 채 언론인의 길을 접은 서명숙은 새로운 길을 고민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걷기여행을 떠난다. 아마 그때까지도 ‘서귀포에서 자란 언론인’이라는 자신의 성장과정이 그 이국의 길과 만나 그 어떤 폭발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으리라

<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위에서 얻은 변화의 씨앗 >

2006년 당시 이미 국내에는 걷기여행 혹은 새로운 여행문화에 대한 크고 작은 흐름들이 존재했다. 그녀가 산티아고로 떠날 마음을 먹은 것 역시 먼저 그곳을 걷고 온 이들이 쓴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199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유명관광지의 패키지 관광과 유럽배낭 여행이 전부였던 시기를 지나 해외여행에는 다양한 형태로 새로운 곳을 찾는 흐름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인도, 터키 등의 오지여행과 함께 걷기 여행은 그러한 새로운 해외여행을 대표하는 흐름이었고, 그런 변화는 이미 출판계에 나타나고 있었다. 2007년 1월에는 정상정복 중심의 국립공원 관광에 대한 대안으로 지리산 둘레의 마을과 숲을 잇는 둘레길을 만들자는 취지로 사단법인 숲길이 출범하였다. 제주도 내에도 ‘오름에 부는 바람’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제주여행을 고민하는 시민운동그룹이 존재하였으며 곶자왈 지키기, 오름 오르기, 마을 길 걷기, 생태적 여행, 공정 여행이라는 새로운 의제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언론인으로서 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한 서명숙은 배낭 하나 둘러메고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도보여행 코스인 산티아고 길은 보통 30~40일을 걸어야 하는 코스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한민국 직장인들은 감히 다녀오기 힘든 길이다. 게다가 매주 또 매달 마감과 싸워야 하는 일중독 언론인이었던 그녀으로서는 더욱 꿈꾸기 어려운 길이었다. 자유인이 된 서명숙은 다행히 ‘해야지, 해야지’하면서 일을 미루지 않는 사람이었다. 함께 떠나자고 했던 친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하나 둘씩 빠지고 결국 혼자 떠나야 할 상황이 되었지만, 그녀는 기꺼이 혼자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녀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발견한 것은 스페인의 이국적인 풍경과 작은 마을로 이어지는 소박한 삶의 모습뿐만은 아니었다. 그녀가 길 위에서 마주한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정말 소중하지만 바쁜 일상과 이어지는 업무 속에서 한번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어린 시절 서귀포의 바닷가를 뛰놀던 소녀는 이제 오랜 서울 생활과 치열한 직장생활을 거치며 잊고 있던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었다. 도시에서 그녀는 항상 사람들과 어울려 일을 하고 수많은 정보들을 끊임없이 접하면 살아왔기에 자신이 혼자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원을 가로질러 작은 마을들을 잇는 한 달이 넘는 순례자의 길에서 그녀는 혼자 자연 속에서 멋지고 즐겁게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확인한 자신의 가치였으며,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살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소중한 가치였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그 가치는 철저하게 그녀의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그 길 위에서, 그녀는 하나의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어느 날 한 영국인 여성과 길동무를 하게 된 것이다. 저녁에 도착한 어느 마을 작은 식당에서 서명숙은 ‘이곳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에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앞으로 빚을 내서라도 몇 년에 한번은 다시 이 길을 걷고 싶다.’고 기쁨에 가득 차 말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 영국 여인은 서명숙의 말에 맞장구치고 만 것이 아니라 그녀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제안을 했다. 바로 ‘너희 나라 대한민국에 이런 자연의 길, 치유의 길을 내보라.’는 것이었다. 길을 낸다? 아스팔트 도로면 모를까, 어떻게 21세기에 사람이 길을 낼 수 있단 말인가? 영국의 어느 비영리단체 활동가였던 그 여인은 마침 서울에 몇 번 다녀온 적이 있었고, 정신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서울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터였다. 두 사람은 잠시 쉬고 자신을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아가는 전형적인 한국 사람들에게 자연과 인간 속을 걷는 길이 주는 치유가 얼마가 소중할 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제안은 서명숙에게 엉뚱하고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서명숙은 우연히 들은 한 마디의 엉뚱한 발상을 현실로 바꿀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일의 씨앗은 싹을 틔울 만한 자리에 떨어져 봄을 기다리게 되었다. 한국에 산티아고와 같은 자연 속 치유의 길을 낸다? 서명숙에게는 그 길이 어디쯤이면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 뛰놀았던 제주의 바닷가며 숲길을 다시 이으면 되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의 고향 제주도가 렌터카를 타고 한 이틀 유명 관광지를 돌고 나면 볼 것이 없다는 사람들의 평가에 속상해하던 그녀에게 바다를 따라 걷는 제주의 길은 딱 맞아 떨어지는 정답이었다.

무언가를 비우려 걸었던 길 위에서 서명숙은 언론인으로서의 삶을 마감한 빈자리를 새로운 변화의 씨앗으로 채우고 돌아왔다. 그 변화의 씨앗은 강렬하게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을 땅에 심고 가꾸기 시작하는 순간, 그 어떤 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은 험난한 미래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했다. 과연 내가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왜 하필 나여야 할까? 이런 의문 속에서도 그 씨앗은 서명숙의 가슴 속에서 무럭무럭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 누가 비행기타고 제주도까지 와서 길을 걷겠어? >

산티아고 길을 걷고, 그 길에서 만난 어느 영국인 여성으로부터 들은 말 한 마디에서 ‘내 고향 제주의 자연 속을 걷는 치유의 길을 만들자.’라는 새로운 목표를 품고 한국에 돌아온 서명숙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겪은 치유의 경험과 새로운 길에 대한 포부를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그 포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이 아닌 그저 막연한 목표일뿐이었다. 당장이라도 고향에 내려가 길을 낼 것만 같았던 스페인에서의 설렘은 점차 사라져가는 듯했다.

‘꼭 내가 길을 내야 하나? 내가 아니라도 언젠가 누군가는 그런 길을 만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그녀는 자신에게 강렬하게 다가온 부름에 저항했던 것이다. 이때 그녀에게 힘을 준 것은 바로 산티아고에서 돌아온 그녀로부터 새로운 포부를 전해 들었던 지인들이었다. 각자의 분야에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여성들의 느슨한 모임에 속한 그녀의 지인들은 ‘아니 그 멋진 계획은 어디에 두고 아직도 서울에 있느냐?’며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더 나아가서 그녀가 그토록 자랑했던, 렌터카를 타고 관광지만 찾아 다니는 여행자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는 어린시절 추억 속의 아름다운 서귀포 바닷가의 오솔길을 한번 걸어보기나 하자고 그녀를 보챘다. 결국 성화에 서명숙은 몇 명의 지인들과 서귀포를 찾았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우비를 준비하지 못해 우산을 받쳐든 채 바닷가를 걸은 그 여성들은 제주의 숨겨진 매력에 열광했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못지 않은, 아니 훨씬 더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길이 제주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제서야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왔던 부름에 응하고 말 그대로 새로운 길을 내는 일에 팔을 걷어 부치게 된다. 마침 왕년에 제주에서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역의 자연과 문화에 누구보다도 애정이 깊은 동생 서동철이 탐사에 앞장서주었다. 거기에 서귀포시의 관광관련 예산으로 최소한의 탐사비용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이 싹트면서 주변의 우려와 반대라는 시련 역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만들어내는 이들(entrepreneur)이 피할 수 없이 들어야 하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너 미쳤니?’라는 말일 것이다. 첫째로 새로운 일의 가치란 잘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기에 그것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는 의미가 없거나 불확실하기 때문이며, 둘째로 그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뜻을 가진 한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자체단체나 대기업에서 하면 모를까 한 사람의 자연인이 어떻게 그런  변화를 만들 수 있겠냐는 의문 말이다. 애써 그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무언가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개인의 재산과 노력을 쏟아 붓고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면, 즉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는 데 실패한다면 확실하게 보장된 것은 바로 참담한 결과가 아닌가? 이런 이유로 앙트러프러너에게 ‘너 미친 거 아니야?’라는 주변의 반응은 늘 당연한 것이며 서명숙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주도에 걷는 길을 내겠다는 그녀에게 어머니가 꺼낸 첫 마디 말도 바로 그것이었다. ‘니가 드디어 미쳤구나.’ 주변의 우려는 강렬했다. ‘비행기 타고 제주까지 와서 누가 하루 종일 걸어 다니겠느냐?’로 대표되는 우려가 있었고, ‘입장료 수입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길을 내서 뭘 하겠다는 거냐?’라는 반대도 있었다. 산티아고의 사례를 이야기하면 ‘거기는 외국이고 유명한 곳이니까 되는 거지. 제주도는 안돼’라는 답이 돌아왔다. 제주도에 걷는 길을 만드는 것에 성공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 코스를 개척하느라 오래된 옛길을 가로막고 있는 쓰러진 나무와 돌을 치우러 다닌 탐사팀에게는 ‘제 정신이 아니다.’, ‘사람들 안 다닌 지 오랜 길을 다시 열겠다고 나서면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는 꾸지람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자신의 시간을 내서 보수도 받지 않고 봉사하는 일에 칭찬을 못할 망정 이렇게 기를 꺾는 것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로운 일을 만든다는 것은 늘 그런 식이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일이라면 이미 세상에 나와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기에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일을 만드는 과정은 험난할 수 밖에 없었다.

‘내 고향 제주의 자연 속을 걷는 치유의 길을 만들자.’라는 것이 꿈으로 존재할 때는 그저 아름다운 꿈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뛰어들려 할 때, 그것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현실이다. 주위 사람들의 우려와 만류는 이렇듯 만만하지 않은 현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 만만치 않은 현실이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책임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마음 속에 품은 꿈에는 실패와 책임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꺼내 드는 순간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른 책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다. 그 앞에서 서명숙은 무모하리 만큼 도전적으로 일을 벌여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가장 큰 밑바탕에는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면 좋아할 것이다. 굳이 스페인까지 가지 않아도 이 아름다운 내 고향 제주의 자연 속에서 내가 경험한 치유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단순한 믿음이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서명숙이 일에 나선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믿음은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를 부추겨 서귀포 바닷가길을 함께 걸었던 이들은 제주도의 새로운 매력이라는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들은 모두 제주도를 몇 번씩 찾아본 경험이 있었으며, 해외의 유명한 관광지나 아름다운 자연을 이미 접해본 경험이 있었다. 서명숙이 인정할만한 감각과 감수성을 가진 그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잠재적인 시장의 수요를 판단할 수 있는 중요한 판단기준이었다. 또한 그녀는 두 가지 중요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언론 활동을 통해 형성한 중앙 네트워크와 토박이로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인적 네트워크였다. 사단법인으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시사저널 지키기 운동을 하던 시절부터 자발적으로 일을 돕던 무적전설이라는 젊은이가 제주올레 일을 돕기 위해 제주에 내려왔다. 그리고 누나의 일에 적극 찬동하고 지지해 나선 동생 서동철을 비롯해 적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이 서귀포에 있었다.

시장의 수요와 일에 필요한 기본적인 인적 네트워크에 서명숙 특유의 추진력이 더해지자 일은 차근차근 진행되기 시작했다. 먼저 자신의 집에 사무실을 차렸다. 서귀포시에서 코스 개척을 위한 최소한의 탐사비용을 지원받았지만 기본적인 동력은 자신들의 열정뿐이었다. 사단법인이라는 형식을 택한 것은 관과 기업을 포함한 다양한 범위의 후원을 통해 꾸준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사람들이 들끓고 전국적인 유명세를 치르거나 그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는 거창한 목표는 처음에 없었다. 오랫동안, 조금 힘이 들더라도 꾸준하게 길을 찾아 다니고 코스를 개척할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거창한 목표가 없었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았다.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목표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책임만 따르는 규모로 일을 시작했고, 무엇보다 그렇게 길을 찾아 다니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자신도 잘 몰랐던 제주도 곳곳의 절경들을 찾아 길로 잇는 과정은 산티아고에서 시작한 자기 치유의 연장선처럼만 느껴졌다.

그러나 코스가 생기기 시작하자 꾸준히 코스만 내도 좋겠다는 목표와 달리 개장행사를 할 때마다 폭발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다녀간 이들의 반응이 입소문으로 퍼지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제주올레는 급속하게 성장했다.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지자체와 기업을 중심으로 한 후원구조가 만들어졌다. 아마도 몇 가지 우연적인 요소 – 예를 들면 유명한 TV 버라이어티 쇼인  1박 2일 방영 – 들이 없었더라면 제주올레가 안정적인 후원구조를 갖는데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제주올레가 처한 환경은 지금과 무척 달랐을 지 모르지만 여전히 그녀는 꾸준히 자신의 방식으로 길을 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 사람들 사이로 낸 길 >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구호는 무척 단순하다. ‘자연 속을 걷자’는 것이다. 그 단순하고 명쾌한 구호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서 각각의 참여자들이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서명숙 이사장 자신이 산티아고에서 경험한 것은 자연 속을 걷는 동안 자기 자신의 내면을 마주하면서 얻는 자기치유였다. 실제로 제주올레의 주요한 참여자 층은 올레길을 걸으며 도시생활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의 경험을 얻은 이들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참여자층은 바로 서귀포를 중심으로 한 지역주민들이다. 그들은 올레길을 찾는 외지인들이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의 소소한 풍경에서 얻는 감동을 통해 자기 지역의 가치가 인정받는다는 자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올레길은 어떤 이에게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곳이었고, 어떤 이에게는 잃어버린 자부심을 되찾는 길이었으며, 또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는 건강의 길, 생태의 길, 문화의 길이었다. 지역자치단체로서는 새로운 관광자원으로서 의미가 컸으며, 후원기업으로서는 고객들과 소통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처럼 제주올레는 무척이나 단순한 가치를 제시하면서도 참여하는 각각의 주체들이 각각의 처지에 따라 다양한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장이었다. 제주어 올레가 본디 개인의 공간과 공동체의 공간을 이어주는 길이었듯이 제주올레는 다양한 가치가 만나는 길로 성장한 것이다.

>제주올레의 이러한 다양성은은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일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보아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부분 구성원들은 올레길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귀포 지역의 토박이로서 숨어있는 아름다움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던 사람들이 자발적인 자원봉사자로 처음 제주올레와 인연을 맺었다. 또 서명숙 이사장처럼 쫓기는 직장생활에 지친 삶을 살다가 자연을 걷고 치유를 얻은 이들이 제주올레와 함께 일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제주로 내려왔다. 업무 분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외업무 – 대관, 대언론, 대기업 업무 – 를 맡고 있는 사무국은 대부분이 타지역 – 주로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제주올레와의 인연으로 제주도에 내려온 경우며, 코스를 개척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탐사팀과 자원봉사자 그룹은 지역의 토박이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 출신의 중앙언론인이라는 서명숙 이사장의 위치처럼 지역 고유의 가치와 보편적 가치의 만남이 사단법인 제주올레에 참여하는 일꾼들의 구성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제주올레의 성장 과정에서는 지자체를 비롯한 관과 중앙언론 그리고 기업과의 협력도 중요한 요소였다. 처음 코스 당 5백만원의 탐사비용을 지원한 것은 지역의 새로운 관광자원을 기대한 서귀포시청이었으며, 개장행사마다 유명 언론인과 연예인들이 참가한 것은 제주올레의 초기 마케팅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초기에는 개인들의 소액 후원금이 부족하나마 사단법인 활동의 중요한 재원이었으나 제주올레가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여러 기업의 후원을 받기 시작했다. 이처럼 제주올레는 올레꾼들 그리고 길가에서 간식와 음료수를 파는 구멍가게 주인, 민박집 주인은 물론 동네 택시운전사와 이장, 동네청년회, 올레길이 지나는 지역의 땅 주인 등의 다양한 개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지역관광과 경제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는 지자체, 올레길을 걷는 대중들과 소통하길 원하는 크고 작은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 사이로 난 길이기도 한 것이다.

< 위기이자 기회, 그리고 도전 >

처음에 서명숙 이사장을 비롯한 몇 명이 그저 고되지만 즐겁게 길을 내러 다니기 시작한 지 채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올레길에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은 고무적인 현상이었으나 사람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 언론에서 앞다투어 제주올레를 취재하려 했고, 다양한 협력 제안이 들어오면서 살던 집의 방 하나를 사무실로 쓰는 구조가 쉽지 않았다. 올레길을 찾은 사람들은 코스를 걷다가 길을 잃어도, 버스노선을 몰라도, 잠을 잘 민박집이 마땅치 않아도 제주올레에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 전화기는 늘 울려댔지만 전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늘 통화중이었고, 애써 전화를 받고 설명을 해주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역정을 내거나 상처를 주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제주올레가 영리사업이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처지였다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상황이었고, 그 수익을 재투자하여 그러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인력이나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제주올레는 여전히 비영리 사단법인이었고 홈페이지를 통한 개인후원도 늘어났지만 사무실을 마련하거나 전화회선을 늘리고 전화를 받을 사람들을 고용할 수 있는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서귀포시의 코스개척 비용 지원이 중단되었다. 서귀포시의 관광자원 개발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시기에 제주올레에 대한 최소한의 지원을 끊는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관청 나름의 논리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원봉사자들은 늘었지만 점점 늘어나는 업무에 지쳐갔고, 호의로 협의를 위해 찾아왔다가 찾아오는 사람들에 지친 제주올레 일꾼들의 적극적이지 않은 태도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생겼다.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올레라는 브랜드를 함부로 사용하는 이들, 갑작스러운 성장 과정에서 생긴 사소한 실수들을 문제 삼는 이들이 생겼고, 제주올레는 그런 이들에게 상처를 입었다. 기회가 곧 위기이고, 위기가 곧 기회라는 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물론2009년 기준 190억 원의 경제효과와 25만 명의 방문객이라는 가시적인 수치로 보았을 때, 제주올레는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며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주올레 현상이라고도 할만한 대중적인 관심과 방문객들의 찬사를 바탕으로, ‘지원은 받지만 간섭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지자체와 대기업의 지속적인 후원을 받아 재정을 유지하며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일꾼들과의 내부 업무체계도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시행착오 속에서도 다양한 외부 협력을 성공적으로 지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올레가 지속적인 도전을 통해 극복해야 할 부분들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첫째로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갖추는 것이다. 사단법인의 특성상 기본적인 재정수입은 지자체, 기업, 개인의 후원금, 그리고 그 외 일정한 수익사업을 통해 얻게 된다. 현재의 제주올레의 경우 그 중에서도  지자체와 대기업의 후원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 대규모 후원이라는 것은 무척 튼튼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척 취약한 구조이다. 지자체의 후원이란 기본적으로 지역주민들을 설득하는 대의명분을 바탕으로 하고, 기업의 후원은 홍보효과 등 기업의 이익을 바탕으로 하는데, 현재 이 두 가지는 모두 제주올레의 브랜드 가치와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브랜드 가치와 대중적인 인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주올레의 핵심가치에서 출발하는 것이지만 2007년 제주올레의 출범 이후 정상적인 상태를 넘어서는 과열 양상의 연장선으로 볼 수도 있다. 급속한 관심의 집중과 분산이 반복되는 한국 사회의 경향상 당연히 급속한 변화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제주올레의 브랜드 가치를 지키고, 대중적인 관심과 사랑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에 영향을 덜 받는 자체 수익사업 등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갖추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10년부터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올레패스포트 판매, 지역의 유휴 노동력을 활용하여 기념품을 제작, 판매하는 형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런 새로운 도전을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둘째로 주로 지역 내에 존재하는 외부와의 사소한 갈등을 치유할 필요가 있다. 제주올레는 기본적으로 지역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를 위해 다양한 노력해왔다. 마을과 소상인을 중심을 한 지역관광경제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올레 길동무’ 등 지역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가파도를 탄소배출 제로의 섬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에 참여하는 등 환경보존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위해 노력해왔다. 대체로 지역사회에서는 제주올레의 노력과 성과를 높게 평가하고 애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이긴 하지만 지역사회와 사소한 갈등을 겪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주올레가 워낙 급속한 성장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갈등의 예로서 ‘올레라는 말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쓰던 말인데 이제는 상표권이 등록되어 있어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한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자연이 더 파괴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막연한 소외감의 표현이 있으며,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마음먹으면 관이든 기업이든 다 움직일 수 있다는 식으로 오만하다.’이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이러한 지적들은 사소한 오해에서 비롯되었거나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제주올레가 세밀한 소통에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워낙 갑작스럽게 제주올레의 영향력이 성장하는데 반하여 사소한 소통에 힘을 쏟을 여력이 없었다는 점도 그 이유겠지만, 지역의 막연한 배타성이나 빠른 성장에 대한 질시 정도로 인식하고 세밀한 노력을 쏟지 못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잠재적인 갈등 요소는 제주올레가 대중적인 인기와 영향력을 지속할 때에는 잘 드러나지 않겠지만, 변화의 시기에 불필요한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으로 제주올레가 좀 더 포용력을 발휘하여 치유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제주올레와 지역사회 시스템의 변화 >

이처럼 제주올레라는 새로운 도전은 여전히 안정적인 지속 가능성을 갖추기 위한 과정에 있지만 그 동안의 활동을 통해 이미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첫 번째로 제주올레는 새로운 여행 문화의 확산에 기여했다.

한 마디로 걷기 여행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제주올레가 새롭게 만들어낸 여행문화는 걸음으로써 그 지역과 자연환경과 문화와 교감하는 여행 또 걷는 과정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치유하는 여행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여행 문화의 흐름은 이미 존재했지만 제주올레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고 하나의 사회현상이 되면서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두 번째로 제주올레는 지역의 관광산업 구조를 바꾸었다.

기본적으로 제주 지역의 관광산업은 저렴한 가격에 패키지 상품 소비자를 모집한 여행사가 구매력을 근거로 식당, 숙박시설, 관광지에 리베이트를 받는 구조로 성장해왔다. 이러한 구조는 정보에 제한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관광 소비자에게 저렴하지만 불필요한 옵션이 붙은 질 낮은 여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식당, 숙박시설, 관광지 등에게는 상품의 질을 높이기 보다는 리베이트에 의존해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을 이어왔다. 렌터카와 자전거 등을 이용한 자유관광이 늘어나자 역시 정보독점을 이용한 쿠폰북 형태가 또 다른 방식으로 등장했다. 블로그 등의 개인 매체가 발전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지만 제주의 관광산업은 관광지와 관광객 사이에서 정보를 독점한 소수 관광사와 매체가 그 독점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구조에서 벗어날 계기를 찾지 못하고 있었으며, 여행객들은 제주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보다는 비효율적이고 상업적인 관광지에서 실망감을 안고 돌아가야 했다. 이에 따른 관광객의 만족도 저하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변화의 노력이 민,관에 의해 이루어졌고 실제로도 크고 작은 변화의 흐름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구조의 본격적인 변화는 리베이트나 모집행위 없이도 그 가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올레길을 찾는 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또한 대규모 자본이 개발한 대형 관광지와 리조트, 골프장, 렌트카 업체 중심으로 성장해온 지역의 관광산업이 올레길을 따라 늘어나는 민박집, 까페들과 다시 활기를 찾은 구멍가게, 택시와 버스 등으로 균형점을 찾게 되었다. 더불어 올레길을 따라 분포된 작은 마을에는 올레꾼들의 수요에 맞추어 독특한 개성을 가진 게스트하우스나 민박집들이 생겨나고, 새로운 형태와 주제로 소규모 마을 축제를 만드는 등 스스로의 발전방향을 새롭게 고민하고 있다. 제주도 내, 서귀포 권역에서도 외진 마을이었던 낙천리는 이제 의자마을로 유명해졌다. 아무도 찾지 않던 한적한 마을에 주민들은 아무나 쉬어가라는 의자를 천 개 만들어두었고, 마침 이 마을로 올레길이 지나가면서 올레꾼들에게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전까지 제주지역의 마을발전 모델이 대단위 리조트나 골프장 등 외부자본의 투자유치를 통한 개발이었음을 생각할 때 낙천리 의자마을의 사례는 작지만 대단히 의미 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또 제주올레 8코스와 9코스가 만나는 대평포구에서는 제주 사람들이 즐겨먹는 생선젓갈에서 이름을 딴 ‘자리젓’이라는 마을밴드가 주말마다 공연을 벌이기도 했다. 해녀 할머니들의 전통민요 공원과 외지에서 유입된 젊은 주민들의 밴드 ‘자리젓’이 공존하고, 공연이 끝나면 마을주민이 총출동하여 노래자랑을 펼치는 이 잘 어울리지 않는 마을 축제는 올레꾼들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이색 축제이다. 대부분의 지역 축제가 지자체의 예산으로 풍물장터나 공연 등으로 천편일률화된 현실에서 이러한 작은 시도들이 이뤄지고 주목을 받는 것은 제주올레라는 새로운 여행흐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촉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지역 발전의 좋은 본보기를 만들었다.

개발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 주장하는 개발의 논리는 무척이나 단순한 것이었다. 공장이든 토목공사이든 폐기물시설이든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일을 유치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투자를 통해 대도시의 성공모델을 따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는 중앙정부와 거대기업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도 빈번했다. 당연히 그 다른 어떤 가치보다도 중요한 스스로가 가진 가치에 대한 자부심이 사라지는 것이 큰 문제였다. 제주올레는 그 어떤 기업이나 관공서 시설, 해외자본이라는 형태의 ‘투자’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장점과 특성에 맞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임으로서 지역이 성장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성공 모델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많은 지자체와 지역의 발전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제주올레의 성공사례를 전파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런 분석과 적용이 모두 성공적일 수는 없겠지만 기업, 중앙정부, 해외로부터의 투자 유치가 아닌 방법에도 성공의 가능성이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는 것은 ‘지역균형발전’이 구호로서만 존재하는 우리 현실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 맺으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명숙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 전에 이미 많은 한국인들이 산티아고를 걸었다. 이미 제주도에는 오름이나 곶자왈과 같은 자연을 여행산업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제주도 내의 지자체와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지역의 발전과 연결시키기 위해 매년 머리를 짜고 수 억원의 예산을 써왔다. 그런데 왜 ‘제주 걷기관광’이라는 변화에는 그들이 아닌 서명숙이라는 사람이 필요했을까?

한 도보여행가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동생이 ‘똑같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었는데 왜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람들을 위한 길을 만들었고, 왜 어떤 사람은 여전히 길을 걷고 있느냐?’라고 농담처럼 물었다는 것이다. 물론 길을 걷고 그 경험을 책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 세상사람들과 나누는 것과 많은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는지는 그 기준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이 과연 새로운 일을 만들어낸 사람과 여행가의 차이를 만든 것일까? 우리는 제주올레가 싹트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명숙 이사장의 새로운 발상과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도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책임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력을 엮어낸 과정을 살펴보았다. 바로 그 과정에서 나타난 서명숙의 태도와 정신과 그리고 활동이, 새로운 일을 만들고 그 결과로 사회의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오는 앙트러프러너십이 그 차이의 비밀이 아닐까?

 

글: 오이씨 박범준 (제주 바람도서관장으로 일하며 제주의 혁신을 도모)
출처: http://oecenter.org/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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