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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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측정되어야 경영된다. (what gest measured gets managed)

경영학의 이론에 큰 공헌을 했던 피터 드러커는 ‘What gets measured gets managed’라는 말을 했다. 즉, 측정 되는 것이 바로 관리되고, 경영된다라는 뜻이다. 그만큼 기업의 경영에 있어서 수치로 측정되고 모니터 되는 것은 중요한 활동이며, 과연 무엇을 측정하고 트래킹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경영자들이 밤새워 고민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경영자의 관심분야가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활동, 아무리 선의의 활동을 한다고 해도 바다에 돌을 던지는 기분으로 계속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그 활동을 하기 이전 대비 얼마나 개선이 되고 있고,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은 경영자의 본능에 가깝다.

한편, 90년대 후반에 한 회계사가 Harvard Business Review에 Balanced Score Card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야기했던 비유가 있다. 그것은 바로 비행기 조종사가 비행기를 조종하는데, 계기판에 한가지 정보만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 비행기는 사고가 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기업을 운영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익(profit)’이라는 한가지 지표로만 판단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 그 아티클의 요지. 그렇다면 다른 지표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위에 언급한 그 회계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았다. 이익이 얼마나 꾸준히 나고 있는지, 매출이나 이익이 증가 혹은 감소하고 있는지, 고객들은 우리 회사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는지, 우리가 경쟁자 대비 얼마나 잘 하고 있는지, 우리의 종업원들은 얼마나 우리 회사에 대해서 만족하고 다니고 있는지 등등. 그렇다. 기업의 경영자는 생각할 것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이러한 지표들은 기업의 재무지표, 운영지표, 고객지표, 혁신지표 등등으로 카테고리를 나눠 볼 수 있고, 그들을 모두 한꺼번에 보는 계기판(dashboard, 저자가 쓴 정확한 용어는 scorecard)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균형잡힌 기업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였다.

‘이익’이나 ‘이익률’, ‘매출’ 등의 단편적인 지표에만 집중할 경우에 생겨나는 문제점들은 단기적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나타난다. 점점 고객이 떠나가고, 종업원들이 회사를 나가고, 심각한 경우에는 사회에서 그 기업에 대해서 외면하고 비난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단기적이고 단편적인 지표에 의존해서 기업을 경영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요즘에는 돈을 버는 것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교육과 모티베이션에도 신경을 쓰고, 사회공헌에도 어느정도는 이바지할 줄 알며, 고객에 대한 평판을 무엇보다도 신경쓰는 그런 균형잡힌 기업을 우리는 원하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의 많은 경영자들이 단기적으로 이익을 올리고 매출을 올리는 것이 기업의 존재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다 돈벌려고 하는 짓’ 이라는 생각을 경영자도, 고객도 모두 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나 60-70년대 고도성장의 시기를 거치면서, 결국 우리 모두 ‘수출 몇백만불’ 같은 구호아래 똘똘 뭉쳐서 외화벌이에 앞장서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했고, (혹은 실제로도 그랬고) 많은 사람들은 정해진 트랙을 열심히 달리는 사이클 선수처럼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전거 패달을 밟듯이 달려왔다. 문제는 이런 경우에 발생하는 고객과 회사간의 거래라는 것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 ‘제일’ 큰 기업인 삼성만 보아도 그 시작은 쌀, 제당, 제지, 모직 등과 같이 우리 삶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었고, 이런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마인드라는 것이 딱히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나 ‘종업원의 모티베이션’ 따위를 신경쓰는 수준은 아니었을 터이다. 하지만 그처럼 기업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고, 그 돈을 버는 도구는 사람들의 삶에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였던 심플한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

#2. 단 하나의 지표

그런 의미에서 Frechreit 라는 Bain & Company의 컨설턴트가 ‘The ultimate question’ 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Good Profit / Bad Profit이라는 개념은 흥미롭다. 즉, 이익에도 착한 이익과 나쁜 이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나쁜 이익은 이런 것들이다. 고객들이 이동통신 서비스를 쉽게 해지할 수 없도록 복잡한 절차를 만들어서 고객들을 자신들의 나쁜 서비스에 가둬놓음으로써 돈을 버는 행위, 호텔 등에서 작은 물품을 잃어버리거나 모르고 가져나오는 경우에도 투숙객에게 몇배의 비용을 물리는 행위, 비디오나 DVD를 늦게 반납하면 하루 늦을 때 마다 몇배의 비용을 물리는 행위, 낚시글로 고객을 유인한 다음에 광고를 보여주는 행위 등. 이러한 나쁜 이익은 모두 고객에게 ‘보복’을 가하는 형태로 이뤄지거나, 고객을 ‘인질’로 잡아두려는 방식으로 구현되는 모든 비즈니스에서 생겨나는 이익을 일컷는다. 고객들은 한두번쯤 속아서 이들을 이용하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순간에 울며 겨자먹기로 이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속으로는 칼을 갈고 있다.

반면에 착한 이익은 고객이 서비스와 제품에 만족하고 그에 합당한 가격을 기꺼이 지불할 뿐 아니라 주변에도 이런 것들을 추천할 경우에 발생한다. ‘이거 정말 훌륭하다. 내 주변에 이런 좋은 것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좋은 것을 보여주고, 그에 대한 합당한 수익을 거두는 것이 좋은 이익이다.

위에 언급한 책, The Ultimate Question 에서 인용되는 좋은 이익과 나쁜 이익의 예 중에 하나는 넷플릭스(Netflix)와 블록버스터(Blockbuster) 라는 비디오/DVD 렌탈 체인의 대결이다. 90년대 후반까지 미국에서 독보적인 영화 비디오/DVD 렌탈 체인점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던 블록버스터는 단기적인 이익에만 집중했다. 처음에 영화를 빌릴 때에는 싼 가격에 주지만, 고객들이 비디오를 늦게 반납하면 그것에 대해서 하루 늦을때마다 몇배에 달하는 비용을 부과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종업원의 숫자도 많이 줄였고, 고객들은 줄어든 종업원 숫자 때문에 매장에 가더라도 영화를 빌리기 위해서 긴 줄을 서야 했다. 반면에 넷플릭스는 소매점포를 갖고 있지 않고, 인터넷으로 DVD를 주문하면 배달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기존의 블록버스터와 같은 소매점포 위주의 사업에서 통용되던 고정관념을 깬 것은 고객이 혹시 DVD를 잃어버리거나 훼손한다고 하더라도 ‘보복성’의 큰 금액을 물리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그 사람이 반복적으로 그런 행동을 보이지만 않는다면 그냥 용서를 해주는 관용을 베풀었다. 넷플릭스는 그 대신에 ‘괜찮으니 앞으로 더 많이 넷플릭스를 이용해 달라’는 말로 대신한다. 두 영화 DVD렌탈 업체의 대결에서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2010년 블록버스터는 파산을 신청했다.

이런 아름다운 비즈니스 일화들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지 않을까?’, ‘왜 우리나라에서는 고객을 홀려서라도 단기적으로 이익을 취하고 보는 이른바 ‘먹튀’들이 판을 칠까?’ 많은 대기업들이 과거에 이런 먹튀식 영업을 통해서 많은 부를 축적했기 때문일까? 물론 대기업들이 욕먹을 짓을 많이 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 나름대로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사실인것 같다. 90년대 후반이었던가? LG와 삼성의 서비스 기사들 간에 서비스 질 향상에 대한 경쟁이 붙어서, 그 이전까지는 양말에서 구린내 풍기면서 다니던 기사분들이 어느 순간 멋진 유니폼을 입고 깔끔하게 집을 방문해서 문제를 해결해주었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니 말이다. 대기업들이 하청업체나 중소기업들에게 어떤 압력을 가했는지는 여기에서는 일단 덮어두기로 하고, 고객의 측면에서만 생각을 해 본다면, 그들이 극단적으로 먹튀정책을 쓴 것은 거의 없었거나, 있었다고 해도 언제부턴가는 의식하고 고쳐나갔던 모양이다.

항상 이렇게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아름다운 스토리가 드물지?’ 와 같은 우울한 질문이 나올 때면 쉽게 떠오르는  ’단골’ 이유가 있다. 그건 ‘우리 나라의 시장이 작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것이다. 어차피 기업들이 나쁜 장난을 쳐도 고객들 입장에서는 달리 다른 대안들이 없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내수 산업이라는 것이 삼성, 현대, GS, SK, LG 이런 몇몇 이름들 사이에서 돌고 돌 뿐이고, 어차피 누가 비즈니스를 운영하던지 비슷비슷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은 하게 된다. 한 사람이 나쁜 짓을 했을 때 가장 추악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공격하기 어려운 논리는 그가 이렇게 말할 때이다. ‘나만 그렇냐?’

#3. 나쁜 이익 몰아내기

이들을 퇴치하고, ‘작은 시장’이라는 지겨운 논리를 불식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런 ‘나쁜 이익’을 소비자들이 똘똘 뭉쳐서 외면하고, ‘착한 이익’에 더 많은 몰표를 몰아주는 것이다. ‘착한 이익’을 통해서 성공하지 않으면 안된다라는 인식을 도처에 심어주는 것이다. ‘착한 이익’이 승리하는 사례를 점점 더 많이 만들어줌으로써 결국엔 누가 이기는지를 보여주는 것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영화나 소설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보여줄 수가 있는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현실에서 이러한 나쁜 이익을 몰아내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이 글의 모두에서 인용한 피터 드러커의 말 처럼, 나쁜 이익과 착한 이익을 구별하는 것은 측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 회계시스템은 숫자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쪽으로는 발달했지만, 그 숫자가 착한지 나쁜지, 고객들의 만족으로 생긴 것인지, 고객을 인질로 잡아서 생긴 것인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만약에 우리가 기업들의 재무제표에 같은 100억의 수익을 올렸다고 하더라도 하트가 다섯 개짜리 100억 짜리인지, 아니면 하트 한개짜리 100억 짜리인지를 매길 수 있다면 좀 더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을까?

물론 많은 기업들이 수익 이외의 방법으로는 별점이 매겨진다. 고객 만족도 1위, 어쩌구 저쩌구 브랜드 파워 1위, 가장 혁신적인 기업 1위 등등이 그런 방법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자기 자신들이 스스로 돈을 주고 사온 타이틀인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기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전 세계의 회계사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회계 정보에 정성적인 의미의 ‘좋은 이익’과 ‘나쁜 이익’을 정확하게 측정하지 않는 이상, 제3자의 별점만을 통해서 착한 이익과 나쁜 이익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는 일인것 같다.

#4. 이익은 그 자체가 나쁜 것인가?

하지만 내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착한 이익’마저도 나쁘게 인식이 되는 것 같은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떤 회사가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와 제품을 제공하고 이익을 올린 경우를 ‘착한 이익’이라고 정의했다면, 그러한 착한 이익 자체는 인정을 해 주어야 할 터인데, 착한 이익조차도 너무 많아지면 우리사회에서는 ‘좀 나누자’라며 칼날을 들이댄다. 그 기저에는 ‘너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번 이유는 소비자들이 너를 그만큼 사랑해줬기 때문이므로, 그 사랑을 이제는 너가 사회를 위해서 써야 하지 않겠니?’ 라는 것과 ‘너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많이 힘들다’라는 분배정의의 논리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 논리의 옳고 그름 따위는 있을 수 없을 터이며, 어떤 방향으로 기우느냐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서 판단할 수 밖에는 없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와 시민의 자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몇몇 나라에서는 그런 기업을 애초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창업가들과 그 회사에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한 주주들이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어야 ‘분배정의’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몇몇 사회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돈을 잘 벌고 있는 회사의 옆구리를 찔러서, ‘나누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사람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분배에 대해서 더 민감한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 이익이라는 것은 이미 내부적으로 한바탕 나눠먹고 난 다음에 남겨진 잉여 중의 잉여이므로, 좀 나눠서 가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 기업의 투자자, 채권자 등은 모두 그 기업과 내부적으로 얽히고 섥혀 있는 관계인 경우가 많기에, 칼로 두부 자르듯이 그들을 싹 도려낼 수 없기 때문이리라.

‘너 그거 돈벌려고 하는 짓이지?’라는 말은 ‘이윤창출을 통한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고귀한 목적과 ’종업원들에게 꼬박꼬박 월급 주기’라는 기업의 현실적 존재목적과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다들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너는 너의 배만 부르려고 하냐?’는 질타의 목소리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너는 돈을 벌어서 너도 잘 되고, 너에게 투자하는 주주들 및 채권자들에게 가치를 창출하려고 하는구나?’ 라는 좋은 의미로 해석되기에는 현재 대한민국의 기업에 대한 감정의 골은 꽤나 깊어 보인다.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의 급격한 노령화와 저출산으로 말미암아서 정부 주도 혹은 공기업 주도로 생성된 연금 관리 기구들이 대부분 정부주도의 건설산업이나 인프라 사업, 혹은 대기업 및 은행 등에 그 돈들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람들이 이담에 이담에 나이를 먹고 늙게 되면, 이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다양한 연금을 관리하는  기구들은 돈을 안정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는데, 동시에 대중들은 안정적으로 이윤을 창출하는 기업들에게 이윤을 나누자고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도대체 누구 돈을 누가 나누자고 하는 것인지 헷갈릴때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기업형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s)’ 중에 하나가 바로 기업의 노동자들이다. 예컨대 스타벅스와 같은 커피 전문점이 2012년 현재 한국에는 1만개 정도 존재한다. 각 점포당 주인이 한명, 종업원이 3-4명 씩만 있다고 해도 5만명은 될 터이다. (그리고 분명히 이들은 비정규직이 대부분일 터이다) 신기하게도 커피 전문점들이 낮은 커피 원두 원가에 비해서 비싼 가격에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며, 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에는 이러한 약 5만명의 주인과 직원들이 커피 전문점들이 취하고 있는 이익 덕분에 돈을 벌고 있는 사실과, 그 커피 전문점에 투자한 사람들이나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덕분에 부를 창출하고 있는 점은 크게 상관하지 않는 듯 하다. 대신에 수백만의 (예측컨대 정규직 사원들이거나 커피 전문점의 커피를 즐길 정도의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비싸게 커피를 마시므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서 그 값이 내려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 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다. 또 한가지 신기하게 생각되는 점은 종이값과 인쇄비가 수십원 밖에 안되는 신문을 그 10배가 넘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 신문사와, 단 한푼의 원재료비도 안드는채 인터넷 성인광고로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인터넷 신문들이 커피전문점에 대한 비판 기사를 찍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글: MBA Blogger
출처: http://mbablogger.net/?p=4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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