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속에 피어난 생명을 살리는 Mine Kafon

마소드 하사니(Massoud Hassani)는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의 계속되는 전쟁의 포화속에서 태어났다. 거칠고 험준한 산들 속에 둘러쌓여있고 모래 바람 외에는 그렇다할 인프라도 갖춰지지 않은 도시였지만 마소드에게는 뛰어놀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그것의 의미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탁월한 발명가들이다. 5살 마소드는 친구들과 딱히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장난감을 만드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그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은 바람의 힘으로 굴러가는 공 뭉치였다. 그가 살던 콰사바라는 지역은 늘 바람이 끊임없이 부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장난감이었다. 아이들은 바람의 힘을 최대한 끌어안아 보다 빨리 보다 멀리 굴러갈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어내는데 몰두했고 달려가는 공뭉치들을 환호하며 더 멀리 달려가기를 바램했다. 마소드는 특히 밤송이 모양의 공뭉치를 좋아했다. 중심에서 뻗어나간 얇은 기둥들의 끝에는 넙적한 모양의 종이나 플라스틱을 달아서 최대한 바람에 닿는 면적을 넓히도록 해서 계속해서 굴러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

하지만 굴러가던 공이 언제나 지뢰위험 표시판을 넘어가 버리면 즉시 하던 놀이를 멈춰야만 했다. 땅밑에 지뢰가 깔려 있기 때문에 자칫 공을 가지러 갔다가는 생명을 잃거나 팔다리를 내 놓을 각오를 해야했기 때문이었다. 마소드는 번번히 공이 넘어갈 때마다 야속한 눈빛으로 그저 쳐다만 보았다. 공이 바로 몇발자국 앞에 있는데… 망설였지만 죽음의 위험보다도 혹시나 다쳤을 때 야단칠 부모님의 성화가 걱정되서 포기해야 했다.

지뢰위험 팻말 앞에서는 언제나 멈춰서야만 했다
지뢰위험 팻말 앞에서는 언제나 멈춰서야만 했다

하지만 마소드는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것들에 분노를 느꼈다. 나는 왜 이런 곳에서 태어났을까. 왜 우리는 끝없이 전쟁을 해야 하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그리고 지뢰를 밟아서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모습 앞에 무력감은 커져만 갔다. 특히 지뢰 문제는 심각했다. 표시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지뢰경고 표시판은 언제나 누군가가 목숨을 잃고 난 뒤에 새로이 설치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었다. 죽음이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었다. 결국 마소드는 14살, 고향을 떠났고 파키스탄과 러시아를 거쳐 네덜란드로 건너갔다. 사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로부터의 탈출에 가까웠다.

한편 국제 연합(UN)과 국제 적십자 위원회는 오래전부터 대인지뢰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승산이 없는 게임에 가까웠다. 현재 지뢰는 전세계 60여개 국가에 걸쳐 설치되어 있고 그 수만 1억개가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실 도대체 몇개나 심어져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누구도 몰랐다. 닥치는대로 묻어두기 때문이다. 지뢰는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수단이었지만 이것은 부메랑과도 같았다. 적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숨겨놓은 지뢰는 정작 시간이 지난 다음 아군조차도 그 위치를 제대로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 자칫 잘못하면 인명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제거하는 것은 정말이지 극히 일부에 불과할 수 밖에 없고, 무인기계로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그것을 폭파시켜서 제거하다보니 폭탄과 함께 박살나는 기계를 무한정 공급할 수도 없었다. 한마디로 지뢰를 심는것 대비 제거하는 비용이 천문학적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제네바에서 비인도적 무기금지 및 제한조약 회의를 통해 23개국 나라에서는 더 이상 지뢰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의했지만 현재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은 될 수 없었다. 때문에 대한민국도 마찬가지다. 만약 언젠가 남북한이 통일을 한다 하더라도 휴전선을 사이로 묻혀있을 엄청난 지뢰는 걷어낼 엄두도 못낼 정도다.

created by Benjamin D. Hennig of the Sasi Research Group (University of Sheffield)
created by Benjamin D. Hennig of the Sasi Research Group (University of Sheffield)

고국을 떠난 마소드는 어렸을 적의 고민은 잊어버린 채 이벤트 플래닝 회사 같은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열심히 생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하는 와중에 마소드는 늘 생각했다. 도대체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는 어떤 쓰임새가 있는 사람인지…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건지… 자신이 원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하지만 자신의 길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은 생각을 할 때 그림을 그리면서 그것을 구체화하는 습관이 있음을 자각했다. 생각을 그저 글로써가 아니라 그림으로써 표현하는 것은 뛰어난 문제해결 능력의 원천임을 자각한 마소드는 그때부터는 창의적 교육 방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다. 내가 가르치기 위해선 뭘 해야 하는걸까? 그리고 이런 방법이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자꾸 보여주고 이야기하면서 검증을 받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던 지인이 마소드에게 창의적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 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지원해 보지 않겠느냐는 조언을 던졌다. 마소드는 대학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자 최대한 빨리 학위를 따야겠다고 생각했고 4년제 아인트호벤 디자인 아카데미를 입학해 1년만에 졸업하고자 했다. 관건은 졸업작품이었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까… 그런데 그가 다니는 아인트호벤 학교는 전세계로부터 모여든 다재다능한 학생들로 채워진 국제학교였다. 창의적이며 독특한 재능을 가진 다양한 분야의 젊은 친구들을 접하며 마소드는 그들의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대해서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도리어 자신의 조국 아프카니스탄을 떠올리게 만드는 거울과도 같았다. 다시금 나는 이곳에 왜 와 있는가를 생각했다. 눈을 들어보니 잊으려 했던 현실이 되살아났다. 마소드는 전쟁의 참상이 단순히 자신의 나라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님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세계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전쟁을 벌이고 있고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음을 목격했다. 구글을 검색하니 UN과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위키피디아를 포함한 다양한 곳에 공개한 지뢰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만 1천만개 이상의 지뢰가 묻혀져 있음을 보며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그 순간, 자신의 머리 속에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릴적 가지고 놀았던 공 뭉치. 알밤 모양의 많은 기둥을 세운 바로 그 장난감. 지뢰위험 표시판을 넘어가 버려 애속하게 발만 동동구르며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 장난감이 바로 지구 전체의 지뢰를 퇴치할 수 있는 핵심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 버린 것이었다.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그는 즉시 프로토타입을 그렸고 곧바로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그 이름은 지뢰가 폭팔한다는 뜻의 마인 카폰(Mine Kafon).

마소드가 만들어낸 지뢰탐지폭파로봇 마인카폰
마소드가 만들어낸 지뢰탐지폭파로봇 마인카폰

마인카폰은 그가 어렸을 때 만들었던 장난감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바람의 힘으로 굴러가면서 바닥의 지뢰들에 압력을 가하게 되면서 폭팔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중심의 수많은 기둥살은 대나무로 만들어져 있고 기둥들이 전체 구체에 작용되는 힘을 분산하고 있기 때문에 지뢰이 폭팔에도 일부만이 부서질 뿐 굴러가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해당 부분의 대나무와 흡착판만 교체하면 그만이었다. 설사 지뢰의 폭팔력이 강해 전체가 다 부서진다 하더라도 마인카폰은 저렴하며 첨단기술이 필요없는 그야말로 탁월한 발명품이었다. 마소드는 마인카폰을 들고 고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다.

지뢰를 폭팔시키는 마인카폰
지뢰를 폭팔시키는 마인카폰

6

마소드는 고국땅을 밟았을 때 알라에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모든 것이 지금을 위한 길이었구나. 나 마소드(Massoud)는 이것을 위한 도구(method)였구나.

Massoud Hassani
Massoud Hassani

전쟁의 비극 속에서 그저 뛰어노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5살의 소년 마소드의 운명은 그가 접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결국 다시 조국의 미래를 위한 거대한 시작을 내딛은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세계의 수많은 생명들을 위한 소용돌이의 시작이었다.

글 : 송인혁
출처 : http://everythingisbetweenus.com/wp/?p=1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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