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는 한 줄을 따른다(Form follows Single-line.)

‘형태는 한 줄을 따른다(Form follows Single-line.)”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 라는 저 유명한 20세기 기능주의자들의 명구에 반하는 의견을 내겠다는 뜻은 아니고, 오늘 할 이야기인 상품 컨셉에 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좋은 표현이라 생각이 들어 적어보았습니다.
 
 지난 15년 넘게 인터넷 서비스 관련 업무를 하면서 늘 마음 한구석 가지고 아쉬움은, 인터넷 바닥의 서비스 기획 혹은 상품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해 구체적인 업무 영역과 성공 방식이 어느 정도 규명 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새로 입문한 후배들에겐 본인도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작성한 기획서나 스토리보드 따위를 던져주며 참조하라고 하던가, 프로젝트에 즉각 투입시켜 각종 허드렛일을 시키면서 몸소 체험하라는 식의 황당한 통과의례를 겪게 하는 것이 다반사였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산업에 비하면 매우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고, 기술이나 제반 환경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게 주요 원인이겠지만, 그래도 이 영역을 직업으로 가지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는 몇 가지라도 일을 잘 하는 기준 같은 걸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은 매번 신입사원을 뽑고 함께 일을 하면서도 적지 않은 부채의식이었습니다.
 
 때로는 다른 분야에서 롤 모델을 찾아 보기도 했는데요. 무형의 컨텐츠와 서비스를 창작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작가나 영화감독, 방송계의 PD, 아트디렉터 등의 직업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  이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을 뵐 기회가 될  때마다 해당 업계의 정립된 업무 절차와 성공 방정식 같은 것들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tvN의 잘 나가는 작품들을 기획하신 이지은 작가님을 만나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요.
 
 이작가님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저는 후배들에게 본인의 기획 안을 단 한 줄로 적어보라고 합니다.’

 상당히 많은 초보작가들이 처음부터 복잡한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A작품에선 이거, B작품에선 저거를 따다가 스토리를 만들어내거나, 정작 본인이 진정으로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감을 잡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작품 컨셉에 대해 물어봤을 때 이 작품은 ‘한 번에 한 가지씩 특별한 재주를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 혹은 ‘1박2일 동안 숨겨진 여행지에서 즐기는 게임’이란 식으로 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대중은 생각보다 직관적이고 간단한 걸 원하는 데, 이게 성공 프로그램의 기본요건이라는 겁니다.
 
 저도 몇 가지 측면에서 매우 공감가는 이야기였는데요.
 먼저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새로운 상품에 대해 학습하기 귀찮아하고, 보수적인 수용 태도를 지니고 있어서, 복잡한 소개를 불편하게 여기기에 오히려 한 놈만 패는(파는) 전략이 유리하다는 것이죠.
간단한 컨셉은 구전효과 측면에서도 유리합니다. 주변 친구들이 ‘너 지금 하고 있는 그게 뭔데?’라고 물을 때, 한마디로 ‘공짜 문자야’라던가 ‘로모 액션샘플러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어’라고 대답해 줄 수 있다면, 자연스런 확산이 가능 할 겁니다.
 
둘째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멤버 모두에게 명확한 비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형의 제품일 수록 이렇게 이렇게 한 줄로 공유된 비전은 제품의 기획, 개발, 운영 단계에 있어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을 일관된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컨셉이 복잡하거나 추상적일 수록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중심점을  찾기 어렵고,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고, 나중에 컨셉을 제시했던 사람의 의도와는 다른 제품이 나올 가능성이 높고, 혹은 아예 제품이 나오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상품의 형태는 단 한 줄로 규정될 때 멋지고 빠르게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만일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기능을 담아내야 한다면, 우선 순위를 두고 단계적으로 개발하고 시장에 접근하심이 고객과 프로젝트 팀 모두에게 유리합니다.
많은 경우 프로젝트의 성패는 ‘실력이 있고 없고’, ‘방법론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과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배달의 민족’이나 ‘조용한 카메라’같이 제품의 이름 자체에 녹아 들어갈 수도 있고, 제품의 슬로건에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 곁의 훌륭한 서비스들은 이미 이런 생각들을 서비스와 경영철학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1. 배달의 민족
‘한마디로 주변에 있는 중국집, 치킨집 정보를 알려주는 서비스’

한줄_배달의_민족
사진출처 : 우아한형제들

 2. 김기사
‘블랙박스 기능까지 기본으로 장착된 무료 내비게이션’

한줄_김기사
사진출처 : 록엔올

3. 많이 쓰시는 paper.li의 슬로건
‘Create your online newspaper in minutes.’

한줄_paper.li
사진출처 : paper.li

  제품 스스로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제 시장에 출시되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상품 중 많은 경우가 이 시작점에서 이미 실패하고 시작하는 경우를 보곤 했습니다.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이를 한 줄로 설명해보십시오.
 이 한 줄이 진정 날이 시퍼렇게 선 칼날과 같이 명확해 보인다면, 적어도 로켓에 올라 탈 필수요건 중 한가지는 갖추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글 : 전성훈
출처 : http://goo.gl/pG4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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