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벤처 인큐베이팅 역사를 쓰고 있는 한인배 서울벤처인큐베이터 운영지원실장

SONY DSC

국내 최초로 민간 인큐베이터를 꾸려서 ‘인큐베이터’라는 단어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15여년 간 창업가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주는 한인배 서울벤처인큐베이터 운영지원실장(48)을 만났다.

그녀는 호텔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던 그녀는 “호텔에서 사회에 대한 눈을 떴고 사회인으로서의 예의범절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서 ‘의미’를 발견하니까 공부도 저절로 되더라. 대학 때는 소홀했던 영어 공부는 물론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공부에 몰입했고 책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놔둘리가 없었다. 호텔 게스트로 자주 오던 기업인으로부터 스카웃 제의를 받고 유니레버코리아로 이직한 그녀는 7년간 다국적기업의 시스템을 체험하며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벤처 업계로의 모험을 결정하였다. 당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인큐베이터 사업을 어떻게 현재의 위치까지 끌고 올 수 있었을까? 인터뷰를 위해 구로에 있는 서울벤처인큐베이터 사무실을 찾았다.

SONY DSC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서울벤처인큐베이터를 설립했다. 설립할 당시의 이야기를 해달라 

1999년 중소기업청의 의지와 벤처기업협회의 추진력으로 경북대 이장우 교수와 당시 협회장이던 이민화 회장의 주도 하에 최초 순수 민간 인큐베이터인 서울벤처인큐베이터를 설립하였다. 나는 혼자 실무를 도맡아야 했다.

사실 처음에는 모 벤처기업과 파트너 관계로 시작해서 그 벤처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처음 그 회사를 찾아갔을 때부터 자존심이 상했었다. 첫째, 환대는 고사하고 아무도 반겨주지 않더라는 것. 둘째로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공기 같은 지원환경조차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수가 있다. 나는 전 직장(유니레버코리아)처럼 모든 게 준비되어 있을거라 예상했는데, 겨우 찾은 담당자는 건물 지하 방으로 나를 데려가더니 책상 하나 놓여있는 텅 빈 공간을 사무실로 쓰라고 했다. ‘여기 계속 있어야 돼?’라는 생각으로 이틀을 고민했다. 3일째 되는 날, 채용자에게 이메일을 써서 사무실 여건을 설명하고 조치를 부탁한 후에야 비로소 사무실 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아 이게 바로 맨 땅에 헤딩이구나’를 깨달았다.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방이 나보고 동굴에서 전화하냐고 묻더라. 텅 빈 지하 사무실에 내 목소리가 울려서. 그래서 내가 그랬다. “아뇨, 사무실이 커서 그래요”

근무한지 일주일이 지나니까 재밌었다. 딴지 거는 상사도 없고, 전통적인 비즈니스 세상에 있다가 여기로 오니까 내가 뭐만 해도 감탄하고 칭찬해주었다. 동굴 같은 곳에 있어도 칭찬 받으니까 좋더라. 그래서 신나게 인큐베이터 설립 작업을 했고 인터넷 서치를 통해 비즈니스 인큐베이터 관련 자료를 다 찾아내 읽었다.

 

‘동굴’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던 것인가?

벤처 업계로 온 후 기뻤던 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이장우 교수님, 이민화 회장님 등 무척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직장에서 자리 유지를 위해 이전투구하던 사람들과는 달랐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과 이야기를 ‘뿜어냈다’. 세상을 개척하면서 살아가는 능력자들이었다. 더 최선인 선택이 많은데도 굳이 여길 선택한 사람들과 꾸준히 함께 일하면서 많이 배웠고 좋은 기운을 받았다. 생각이 현실이 되는 과정을 체험할 수 있었고 그런 사람들과 어울려서 나온 결과물이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SONY DSC

 

2001년 즈음 벤처 버블 붕괴가 일어났는데..

2000년 즈음에 창업 교육을 했는데 강사로 왔던 사람들이 벤처에 대해 각기 다른 시각을 이야기했다.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 사람도, 거품이니 문제가 있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전자는 전도사 같은 사람들이, 후자는 투자사 대표가 주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코스닥의 위기가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 했었는데, 발달된 촉으로 현장에서 감지하다 보니 그런 예측이 가능했던 것 같다. 실제로 불과 몇 개월 뒤에 그런 일이 닥쳤다. 인터넷 비즈니스 시장이 해외에서부터 냉랭해지고 국내에도 한파가 불어닥쳤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환호를 받으면서 올라갔을 때는 재미있었고, 내려갈 때는 정신이 없었고, 그 다음에는 지루했다. 다시 올라갈 줄 알았는데 올라갈 기미는 없었고 힘들었다. 주변의 고요함이 익숙치 않았다.

당시 서울벤처인큐베이터에게 건물을 빌려주었던 회사가 부도가 났다. 법정관리인이 건물 퇴거 명령을 했지만 버텨야겠다는 생각에 ‘반 땡깡’으로 1년을 버텼다. 나갈 때에는 전세보조금까지 받아가지고 나와 작은 공간에서 연명하였다. 입주기업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 사명감이었다. 생존에 관계되는 도전을 받게 되었을 때 비로소 이 업에 대한 오너십이 생긴 것 같다.

 

그 기간 동안에 다른 생각(이직)이 들지는 않았나?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 때 탈출을 생각하며 대학원 진학도 했었다. 하지만 이직이 쉬운 일은 아니더라. 밖에서는 인큐베이터가 하는 일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내가 얼마나 생각의 폭을 키웠는지, 그동안 어떤 일을 해냈는지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매력적인 일을 찾지 못했다. 또한 서울벤처인큐베이터에서는 중요한 업무의 권한과 책임을 진다는 게 내 적성에 잘 맞았다. 내겐 의사결정권이 있다는 메리트가 중요했던 것 같다.

 

서울벤처인큐베이터가 걸어온 길

사업 초기에는 스타 기업 발굴 및 육성이 목적이었다. 처음 시작부터 스타적 자질이 있는 ‘싹’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인큐베이터가 작위적으로 스타를 만들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공립학교’에 가깝다. 벤처의 질적 향상을 끌어올리려는 대중 인큐베이터로서, 민간 인큐베이터이지만 창업의 전체적인 ‘물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적합한 환경 조성을 통해 창업가를 위기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예전에는 아귀가 딱 맞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 세계(벤처)는 그게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서울벤처인큐베이터는 최소한의 위험을 관리해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활동이 일어나도록 환경을 조성해나가고 있다. 경험, 기술, 노하우 등을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유기적 관계가 자연스럽게 엮여지고 이어지는 창업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수한 구성원들을 모시고자 한다.

SONY DSC
벽조차 의견을 주고 받고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소통의 장’으로 탈바꿈시킨 한인배 실장. 그녀는 서울벤처인큐베이터를 오가는 모든 이들의 네트워킹을 돕기 위한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현재 서울벤처인큐베이터는 공간을 베이스로 하는 인큐베이팅과 기술창업아카데미 중심의 교육·멘토링 프로그램, 그리고 ‘프리 스타트업 위닝 캠프(PSWC)’라는 엑셀러레이팅 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 시니어의 경우 1인 창업 전용공간인 ‘그린존’ 공간을 통해 시니어 전용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가장 기뻤던 적/슬펐던 적이 있다면?

창업 교육을 받는 수강생에게서 3개월 사이에 표정과 행동의 변화가 감지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수료식 때는 마음이 담긴 선물을 주기도 한다. 마음 알아줄 때가 제일 기쁘다.

하지만 슬플 때도 있다. 회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대표도 사라져버려 연락이 끊긴다. 안타깝고 애잔하다. 벤츠 타는 사람들은 봐도, 벤치에서 자는 사람들은 보지 않았으면 한다.

창업은, 결국 자기 능력대로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장에 대한 이해력, 기술력, 비전 등 창업가가 갖고 있는 능력이 결국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래서 서울벤처인큐베이터의 목적은 창업가 자신이 역량을 키워야 할 이유를 깨닫도록 하는 것과 지뢰탐지기 같은 촉을 키우도록 돕고, 안목을 넓히게끔 돕는 데에 있다.

벤처는 존재하나 ‘벤처용 고객’은 없다. 벤처라고 해서 부족한 부분을 어느 정도 봐주면서 물건을 사가는 ‘벤처용 고객’은 없다는 뜻이다.

내가 요즘 대표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창업 정책과 관련 지원이 많아 바깥은 호재가 만들어지고 있다. 하지만 과연 자신의 내부는 어떠한가? 자신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환경 등 외부 변수에 대한 관심을 끊고 오로지 자신의 역량을 고객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해보아야 한다. 기본적인 체력을 키워야 한다. 본인 역량이 있어야 하고 서비스 구현 능력이 있어야 한다.

 

SONY DSC

 

15년여 간을 버텨온 원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무엇이든지 생각하면 해낼 수 있다는 것? 15년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네트워크’이다. ‘하자’는 결심만 내가 하면 된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은 100번을 강조해도 모자라다. 능력 있는 좋은 사람들을 곁에 둘 수 있었던 게 내가 서울벤처인큐베이터를 여기까지 이끌고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네트워킹의 비결이 있다면?

내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면을, 많은 시간동안 노출시킬 때 네트워킹이 일어난다.

사람은 여러가지 면을 갖고 있지만 상대에게 좋은 인연이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만날 때 내 어떤 면을 맨 앞에 보여주고 있느냐에 달렸다.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나를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상대에 대한 일종의 배려이다. 물론 사람인 이상 만날 웃고 지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절제와 통제력을 갖고 좋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면 스쳐갈 인연도 잡을 수 있다. 나도 후천적으로 훈련된 부분이 많다.

물론 자기 절제를 하면 자기를 쉬게 해줘야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휴식이라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감정의 손익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소비된 게 있으면 번 게 있어야 한다. 감정이 소모되는 경우(화내는 경우, 의도적으로 기분이 좋아보여야 할 경우) 자기 자신을 위로하고 보상해줄 시간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으로써 보상 받는다.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많다 보니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익숙한 동네를 돌아다닌다.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카페에 앉아있거나 아이쇼핑을 하기도 한다. 미장원 가는 것도 좋아한다.

 

SONY DSC
인터뷰를 하던 회의실 옆 강의실에서는 ‘린스타트업 이해와 고객개발을 위한 팀워크’라는 주제로 ‘기본이 강한 벤처창업하기 7기’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기본이 되는 인간 됨됨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노력을 바닥에 깔고 사업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괜한 고생을 한다고 생각되어도 나중에는 그로 인해 잘 될 것이다. 인간 됨됨이를 먼저 갖추고 그 다음, 일에 심혈을 기울이면 더 잘될 것 같다. 사람 사이에 신뢰라는 고리가 있어야 연결도 되고 일도 구현이 된다.

기본을 갖춘다는 게 무슨 뜻인가? 인품과 인덕의 기본은 어렸을 때 배운 걸 잊지 않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를 적시에 할 줄 아는 것이다.

내가 봤을 때 하느님은 스스로를 돕는 자만을 골라서 돕는 것 같다. 운을 부르려면 내 정성이 어느 정도까지는 다다라야 한다. 그리고 근면하면 운도 사람도 붙는다.

 

안경은 brightup@gmail.com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