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직의 나쁜 버릇 – 쪼기문화

내가 잘 가는 미용실이 있다. 그런데 그곳을 가면 마음이 불편한 것이 하나 있다. 내 머리를 자르는 사람은 한명인데, 그 주변에 서너명의 보조인력이 서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한 명 정도의 보조인력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꼭 3-4명은 서 있다. 왜 그런지 물어보면 보고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즉, 내 머리를 어떻게 자르는 것인지를 보고, 보조인력을 하시는 분들이 배우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그 미용실에 간지 몇년이 지났건만, 나는 그 보조분들이 배운 것을 써먹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고, 또 보고 배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서 있다.

한국사람들의 직장이라는 곳에는 다른 사람이 ‘노는 꼴’, ‘쉬는 꼴’을 못 보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런 문화가 만연해서 그런 꼴을 못 보는 그 사람조차도 그런 조직문화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다. 조직의 문화라는 것은 아래로부터 바뀌던지 위로부터 바뀌던지, 아무튼 어느 한 편에서는 댐의 작은 균열들이 서서히 생겨서 급기야 큰 물줄기를 만들어줘야 하는 것인데, 우리 모두는 우리가 싫어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일조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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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조직에서는 이른바 ‘쪼기 문화(쪼으기 문화)’가 팽배한 것 같다. 흔히 “쫀다”는 말로 대변되는 행동의 정의는 ‘한치의 쉴틈도 주지 않고, 주도면밀하게 상대방을 일을 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쪼기 문화’ 에서는 창의성이나 여유 따위의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얻어내기 위해서 상대방을 열심히 쪼아대면, 그 사람은 때가 되면 알을 낳는 닭처럼 내가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라는 믿음이 바탕이 되어 있다.

쪼기 문화의 백미는 일이 끝난다음에 상대방의 상태일 것이다. 즉, 상대방이 충분히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으면, 그 일을 책임졌던 매니저는 그만큼 ‘잘 쪼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문제다. 일이 끝나고 나서 그 일을 실행한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매니저 혹은 그 윗선에서는 사람들을 충분히 쪼지 않은 것은 아닌지 살짝 불안해진다. 이른바 insecure overachievement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우리말로 풀자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나머지 쓸데 없이 오바한다는 뜻이다.

쪼기 문화의 또 다른 병폐는, 쪼기 문화가 한번 치닫기 시작하면 점점 더 디테일해지고, 점점 더 잘게 쪼게 된다는 점에 있다. 엊그제 조성문 씨의 블로그에 올라온 진정한 행복에 대하여 – 가족 중심 문화의 중요성이라는 글에서, 모든 택시기사들만이 ‘어느 길로 갈까요?’를 묻는다는 글귀에 참 공감이 됐다. 택시를 타고 가는 시간이 몇분 혹은 십여분 늘어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택시기사를 ‘쪼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쪼다보면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한편 쪼기 문화의 좋은 점은 분명히 있다. 그만큼 사회의 템포가 빨라지고, 사람들이 디테일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빨리 빨리 쪼아대는 고객들 덕분에 모든 종업원들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처럼 일하고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영화를 두배속으로 돌리는 것과 같은 속도로 일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작은 존대말 하나에도 실수하면 진상을 부리는 고객이 나타날까 두려워서, 매장의 직원들은 컵이 ‘뜨거우시고’, 옷들이 ‘두꺼우신’ 세상에 살고 있다.

항상 누군가에게 뒤쳐질까 두려워하는 우리 조선인들은 쪼기 문화를 통해서 점점 더 사회가 돌아가는 바퀴를 빨리 돌리고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빨리 바퀴를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바퀴 자체를 크게 만들어서 한번 바퀴가 굴러가더라도 크게 굴러가도록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도 이제는 속도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바퀴가 더 커질 수 있도록 leverage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만좀 쪼고 말이다.

글 : MBA Blogger
출처 : http://mbablogger.net/?p=6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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