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폼팩터] 1. 들어가는 말: 혁신 코드, 폼팩터

폼팩터

폼팩터란 무엇이며, [프로젝트: 폼팩터]는 무엇을 하고자 함인가.

폼팩터는 새로운 경험의 정의

‘폼팩터(form-factor)’라는 용어는 컴퓨터의 마더보드(motherboard) 규격을 이야기할 때 자주 사용되는데, 크기, 슬롯 형태, 전원 형태 등 주로 표준화된 하드웨어의 규격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폼팩터는 데스크톱 컴퓨터 케이스 내부의 마더보드와 확장 보드의 규격에 관한 요소로서 언급될 때는 하드웨어 사양과 거의 같은 말이 된다. 하지만 그 요소가 외장의 디자인과 인터페이스로 확장되면 단순한 사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미니 피시(PC), 일체형 피시 등 외형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도 폼팩터라는 말을 많이 쓴다. 특히, 휴대폰에서의 폼팩터는, 바(bar), 플립(flip), 슬라이더(slider), 쿼티(qwerty), 스위블(swivel) 등 외형적 요소로서 더 많이 사용한다.

[프로젝트: 폼팩터]에서 사용한 ‘폼팩터’라는 용어는 외적∙내적 두 영역의 요소를 모두 내포한다. 외형 디자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물론, 소프트웨어, 처리하는 매체 형식, 네트워크 프로토콜 등의 차이가 폼팩터를 갈라놓을 수도 있다. 때로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가 같은 폼팩터라도, 적용 형태의 차이-예를 들어 모바일이냐 차량용이냐-로 폼팩터를 구분하기도 한다. 그 모든 ‘형식[form]‘의 ‘요소[factor]‘를 종합하여, 하나의 구별 가능한 완전한 독립적 장치-부품이 아닌-로 인식될 때, 그 장치는 어떤 이름의 폼팩터로 분류된다. 따라서 폼팩터라는 용어의 중요성은 단순한 특징적 외형도 규격적 사양도 아닌, 그것이 차별하는 ‘독창성’과 ‘정체성’에 있다.

예를 들어 키보드 입력의 컴퓨터와 펜 입력의 컴퓨터는 입력 수단의 형식에서 서로 독창성을 가진다. 넷북은 인터넷 서비스를 중심으로 최적화된 저 사양의 랩톱 컴퓨터로서, 일반 랩톱 컴퓨터와 다른 정체성을 가진다. 때로는 그 독창성과 정체성이 역사적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그 반복성에 차별을 주는 주 요소가 기술의 발전일 때도 있다. 개념상으론 큰 차이가 없는 피디에이(PDA)와 스마트폰, 태블릿 피시-마이크로소프트 태블릿 피시 기반-와 하이브리드 피시-마이크로소프트 윈도 8 기반-의 차별이 그러한 예이다.
따라서 독창성과 정체성, 그리고 기술성이 폼팩터를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달리 말하자면, 새로운 폼팩터를 개발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요소가 바로 그런 것이라는 얘기다. 즉, 얼마나 독창성이 있느냐, 그 폼팩터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그리고 기술적인 발전 요소가 있느냐, 이런 질문에 확실한 답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폼팩터로서의 자격-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은 있는 것이다.

폼팩터는 더는 컴퓨터 하드웨어에 국한된 용어가 아니다. 앞서 휴대폰에서 사용된 예를 보듯, 디지털 기기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폼팩터는 ‘새로운 형식’을 정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애초에 새로운 컴퓨터 하드웨어를 규정하기 위해 사용되었듯, 이제는 새롭게 등장하는 디지털 기기의 새로운 형식을 정의하고 새로운 분류 체계를 부여하기 위한 보편적 표현법이 되었다. 형식은 사용자 경험을 규정하지만, 역설적으로 형식은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폼팩터라는 말은 그런 ‘새로운 경험’을 내포한다.
폼팩터가 단순히 하드웨어의 사양을 표현하는 용어에서 탈피하게 된 것은, ‘사용자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즉, 폼팩터로 표현되는 디지털 기기의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폼팩터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열쇠다. [프로젝트: 폼팩터]가 추구하는 폼팩터의 방향이 바로 그것이다.

21세기는 폼팩터 혁신의 시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말까지 약 100여 년 동안, 전기∙전자 분야의 발전은 그야말로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전구가 발명되고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시작된 개인용 기기의 역사는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의 발명으로 소형화와 경제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20세기 말까지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휴대폰의 발명과 성공적인 대중화가 이어지면서, 그야말로 ‘개인’ 단위로 단말기를 소유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 미디어 기기 분야에도 역시 많은 발전이 이뤄졌다. 예를 들어 케이블 방송과 컬러텔레비전, 그리고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워크맨은 미디어 분야의 큰 획을 그은 위대한 발명품들이다.

21세기는 컴퓨팅과 통신 기술이 미디어를 견인하면서 상호 융합을 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컴퓨팅과 통신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그로 말미암은 미디어의 변화는 그야말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비유하자면, 컴퓨팅의 발전은 ‘엔진’의 성능을, 통신 기술의 발전의 ‘도로’의 수준을 극대화했고, 이 고성능 엔진을 장착한 미디어 ‘자동차’는 쭉 뻗은 고속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21세기 뉴 미디어의 시대를 맞았다. 이제 또 다른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미 90년대 말부터 많은 회사들이 티브이, 컴퓨터, 모바일 기기의 새로운 미래를 실험해왔다. 2000년대 들면서 유행하기 시작한 융합[convergence]과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말은 그 미래상을 대변하는 모토였다. 그리고 모든 관심이 사용자 개인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디자인 컨설팅 회사 아이디오(IDEO)의 관찰 기법은 기업들의 단골 벤치마킹 사례였고, 디지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이들은 누구나 새로운 기능과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2006년 제프 한(Jeff Han)이 테드(TED)에서 시연한 멀티터치 기술이나, 2007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픽셀센스(PixelSense; 발표 당시 이름은 서피스(Surface))에서 보여준 자연스러운 사용자 인터페이스[Natural User Interface; NUI]는 사람들에게 강한 충격파를 각인시켜주었다. 이미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UX]은 그 당시 제품 기획자들의 유행어였다.

하지만 사용자가 타는 ‘자동차’는 여전히 트럭이었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폼팩터를 원하고 있었다. 그건 트럭이 아니라 멋진 세단 승용차였다. 그런 진짜 드라마 같은 변화는 바로 트럭과 승용차 비유의 원작자인 스티브 잡스가 주도한 애플에 의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주요 무대는 컴퓨팅도 아니고 통신도 아닌 개인 미디어 분야였다.

애플이 2007년 발표한 아이폰, 2010년 발표한 아이패드 등 일련의 개인 미디어 기기들은 시장에 거대한 파문을 던졌다. 단순한 전화기도 컴퓨터도 아닌 새로운 그 무엇-월스트리트저널의 월트 모스버그(Walt Mossberg)는 이것을 ‘포스트-피시(post-PC)’라 명명했고, 스티브 잡스도 이 용어를 빌려 즐겨 사용하였다-이었다. 애플의 제품은 더는 예전처럼 컬트 추종자들의 세계에 갇혀있지 않았다. 많은 아류가 쏟아져 나왔고, 결국 새로운 폼팩터 체계를 만들어냈다. 그렇다고 애플이 만들어 낸 새로운 폼팩터들이 모두 최초 발명품인 것은 아니다.
앞선 예에서 보듯, 이미 그런 흐름은 대세였고, 수많은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애플 이외에는 새로운 폼팩터로 이렇다 할 시장을 만들어 낸 성공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스티브 잡스는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이라는 표현으로, ‘경험’을 강조한 제품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우리는 그것이 단순히 새로운 서비스 기능이나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아니라, 새로운 폼팩터를 동반하는 총체적 혁신 체계의 구축임을 깨닫게 되었다.

[프로젝트: 폼팩터]는 소설 쓰기, 그리고 담론

이제 애플이 만들어낸 새로운 폼팩터의 시장은 성숙했다. 휴대폰의 대부분은 스마트폰 폼팩터가 되었고, 태블릿 폼팩터가 잠식한 피시 시장은 더는 과거의 규모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터를 잡아준 스티브 잡스는 흙으로 돌아갔고, 사람들은 그의 비전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또 다른 폼팩터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구글은 프로젝트 ‘글라스(Glass)’라는 안경 폼팩터를 들고 나왔다. 확인할 수는 없으나 애플은 소위 ‘아이와치(iWatch)’라는 시계 폼팩터를 개발 중이라는 소문이 들려온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태블릿과 노트북의 하이브리드 피시를 내놓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시원찮다. 그 무엇도 2007년 1월 9일의 아이폰이 준 그 전율을 따라가진 못했다. 사람들은 또다시 어둡고 복잡한 지하 동굴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프로젝트: 폼팩터]는 그런 디지털 기기 폼팩터들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분석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시작하는 프로젝트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학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미래학의 영역은 아니다. 지난 몇십 년간의 폼팩터 흐름을 이해하고, 그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문학 장르로 치자면 르포가 아니라 소설인 셈이다. 실은 ‘소설 쓰고 있다’는 비아냥의 대상으로서의 그 소설에 가깝다.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도 아니고, 예측 곡선을 제시하는 통계도 없다. 대부분 경험과 직관에 의한 주관적 결론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물이 과연 유의미할 것인가에 대해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이다. 이 분야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요소는 바로 소설적 ‘상상력’이다. 모두가 답은 없는 100페이지짜리 시장 분석 보고서를 쓰는데 힘을 쏟고 있다. 시장 분석 보고서로부터는 더는 얘기할 거리가 없다. 이제는 힘을 좀 빼고 상상을 해보고 답을 내보자는 것이다. 진짜 담론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앞으로 [프로젝트: 폼팩터]에서 진행하게 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미디어란 무엇인가, 왜 미디어 관점에서 폼팩터를 고민해야 하는가에서부터 출발하려고 한다. 그리고 미디어가 가지는 본질적인 개인화 속성을 살펴보고, 소비자 각 개인의 관점에서 폼팩터를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겠다.
그다음으로는 가정 및 개인 기기 폼팩터의 계보를 역사적, 분류적 기준에 따라 전체적으로 매핑할 것이다. 이를 통해 컴퓨팅 기기와 통신 기기가 어떤 흐름으로 발전하였고, 그 동력이 어떻게 미디어 기기로 융합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몇 가지 중요한 실패 또는 성공의 폼팩터에 대해서는 더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중요한 인사이트를 도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흐름의 방향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이는 지난 2008년에 제시했던 ‘코어와 스크린의 분리’라는 개념을 보다 구체화하고 그간의 추세를 반영하여 업그레이드한 것이 될 것이다. 이해를 위해 몇 가지 폼팩터 사례는 구체적인 사용 모델을 그려볼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답을 쓰긴 하지만 그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여러 업계∙학계 전문가들의 담론을 끌어내고, 이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목적이다. 고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모두의 공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더 나아가, 이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담론이 새로운 폼팩터의 등장에 작은 역할이라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보상이 될 것이다. 아이디어와 실행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말하자면 아이디어가 1차원이라면 그 실행은 3차원쯤 될 것-이다. 여기로부터의 아이디어가 실제가 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는 원대한 꿈을 꾸며 [프로젝트: 폼팩터]의 시작을 호기 있게 알리는 바이다.

글 : DIGXTAL
출처 : http://goo.gl/3XKxsI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