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아이디어] 3D 프린터의 모든 것

정보기술(IT)이 만들어내는 세상을 돌아다니면 나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 그 방향을 가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엔지니어들은 기술이 약속하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부질없다. 우리는 그것을 만든다”고 큰소리친다.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믿음에 베팅하곤 한다. 그러나 창업자들 중에 성공의 열매를 따는 엔지니어는 극소수다. 경영학자들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원리’를 찾는데 매달린다. 오랜 연구 끝에 내놓은 ‘이론’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결함을 갖고 있다. 복잡다단한 비즈니스를 설명하는데 역부족이다.

첨단 기술이 만드는 변화를 기록하는 나에게 IT는 여전히 ‘해독 불가능 지대(블랙박스)’로 남아 있다.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 나는 국내 외에서 발간되는 책을 열심히 읽는다. 지난 주말에도 교보문고를 방문해서 신간 ‘3D 프린터의 모든 것’을 샀다. 허제 씨가 쓴 이 책은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미국 CPA 자격증을 따, 지금은 회계법인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그는 3D 프린터 전도사로 더 유명하다. “국내 제조업의 발전과 청년 창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이 책 곳곳에서 저자의 열정을 읽을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발견한 매력은 3가지다. 우선 최근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끄는 3D 프린터의 역사와 다양한 응용분야를 깔끔하게 정리했다는 점이다.

3d

3D 프린터는 미국 발명가 찰스 훌이 1984년 3D 시스템즈 사를 설립하고 86년 “액체 플라스틱을 연속적으로 층층이 쌓는 방법으로 딱딱한 물체를 인쇄하는 기술로 특허를 받은 것이 그 시초”라고 소개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된 것은 2007년 부터다. 특허권이 만료되면서 저렴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3D 프린터를 활용하는 분야가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헤드버블은 고객의 머리모형을 제작해주는데 특히 신혼부부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한다. 또 교육 용품과 인공 치아, 음식(초콜릿), 총기복제 등도 3D 프린터의 주요 생산품이다. 비행기 제작회사인 보잉은 비행기 컨셉 모델과 부품의 프로토타입 일부를 3D 프린터로 찍어내고 있다.

저자는 3D 프린터가 새로운 제조업 혁명을 이끌고 있다고 강조한다. 3D 프린터가 제조업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배경을 전 세계적인 공유와 개방운동에서 찾고 있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저자는 그 주역들을 소개하고 있다. 렙랩(RepRap), 팹앳홈(Fab@Home), 메이커봇(MakerBot) 등이다.

렙랩은 2005년 영국 바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연구하는 아드리안 보이어 교수에 의해 시작됐다. 누구라도 3D 프린터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연구내용과 설계를 모두 인터넷에 공개하고 있다.
팹앳홈은 코넬 대학 컴퓨터설계연구소에 있는 호드 립슨과 에반 말론이 시작했다. 3D 프린터 애호가들이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것은 물론 멀리까지 실어 나르고 있다. 팹앳홈에서 제작해 판매하는 3D 프린터는 전문 업체의 제품에 비해 성능이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2009년에 설립된 메이커봇도 이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 회사는 창업한지 4년 만에 2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과 스스로 설계해서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것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
개인 제조업 운동은 우리나라도 확산되고 있다. 저자는 그 현장을 답사해 생생한 정보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책은 마지막으로 3D 프린터를 이용해 창업하는 방법까지 안내하고 있다. 저자가 오랫동안 발품을 판 흔적을 이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곁들여 소개함으로써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눈에 거슬리는 대목도 지적해야겠다. 오탈자가 많고 거친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편집의 품질만 보면 내가 읽은 동아시아의 책 가운데 ‘최악’이다. 이 점을 바로 잡는다는 전제를 달아 강추!!!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리 속을 맴돈 질문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새로운 제조업 혁명이 우리나라 제조업, 더 나아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어떠할까..하는 의문이다. 아쉽게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저자는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 나는 그 답을 ‘정보가 만드는 비즈니스 혁명’에서 찾고 싶다. 정보가 1차로 콘텐츠/미디어 산업을 해체한 것은 일반인들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그 물결이 소프트웨어(SW)에 이어 제조업까지 밀려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3D 프린터의 등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볼 때 3D 프린터는 ‘정보라는 반죽을 사용해 다양한 음식(제품)을 뽑는 기계장치’다.

이러한 경제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문헌을 소개하고 싶다. 우선 정보가 만들어내는 경제변화의 핵심을 ‘파괴의 비트(Bits Of Destruction)’라고 파악한 글을 권하고 싶다.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 필자는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 프레드 윌슨(Fred Wilson) 씨다. 그는 2008년 말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비트가 콘텐츠에 이어 유통과 금융 등 전 산업을 재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통찰력을 우리는 지금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나에게 정보의 중요성을 가르쳐준 책이 있다. 바로 ‘정보경제(원제: 2020 Vision)’다. 경영 컨설턴트인 스탠 데이비스와 빌 데이빗슨이 공동으로 펴냈다. 이 책은 제목처럼 ‘2020년 우리가 살 미래의 경제’를 그리고 있다. 저자들은 “정보가 새로운 경제에 신선한 피를 공급하는 대동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책은 1991년 미국에서 출판됐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번역본(박영률출판사)이 나왔다. 책이 나온 지 20년 이상 지난 지금 읽어도 재미있다.

글 : 서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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