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은 규칙보다는 문화로 해결하라

회사를 경영하다보면 직원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뛰어난 멤버들로 구성된 팀이더라도 눈에 밟히는 요소가 없을 수 없다. 굳이 담당한 업무에서의 단점을 찾지 않더라도 성격적 결함, 거슬리는 습관들, 무례함, 팀웍을 해치는 것처럼 여겨지는 행동들, 무엇보다도 나 만큼 회사에 열의를 보여주지 않는 것 같은 모습 등등에서 경영자가 불만을 품지 않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업무 능력등 확실히 문제되는 요소가 문제라면 해고하면 되겠지만 업무 능력이 준수함에도 다른 영역에서 불만이 생기는 건 처리하기 까다로운 문제다.

이 불만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보자면 경영자의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라는 점 때문이겠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경영자는 누구보다도 많은 오너십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많이 생각하고, 누구보다도 많이 일한다. 누구나 그렇듯 경영자도 자신을 기준으로 상대를 평가하므로, 대부분의 경우 직원들은 기대 이하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고 해서 쉽게 해탈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아무리 상대들이 나와 다른 입장에 놓여있음을 이해한다 해도, 감정은 논리의 가르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조직이 크지 않은 스타트업이라면 일차적으로 대화와 설득으로 해결하려 할 것이다. 경영자의 회사의 비전, 업무의 신성함, 자신의 희생과 철학 등등이 이 대화에 동원된다. 하지만 말처럼 쉽게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겠지만 조금 신경을 안 쓴다 싶으면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부분들이 튀어나온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내가 말한 요소를 몰라서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이 다음 단계에서 흔히 경영자들이 빠지는 유혹은 강한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에 가까운 직무 원칙을 세우고, 굳이 자신이 애쓰지 않아도 시스템이 문제를 해결시켜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자신이 애쓰지 않아도”란 동기이다. 단순히 내규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언가 달라지길 기대하기 힘드니 만큼, 자연스럽게 보상/처벌 구조를 설계하게 된다. 그래서 원칙에서 벗어날 경우에 대한 패널티를, 반대로 원칙을 충실히 수행한 경우 인센티브를 포함한다.

이로 인해 경영자는 더 행복해졌을까? 그러나 이런 시도들이 그리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 여러 연구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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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에 있어 보상/처벌 설계가 잘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인센티브와 패널티간 균형이 공정하지 않다.
규칙 설계의 특성상 인센티브와 패널티가 공정하게 설정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를테면 지각을 자주 하면 구체적 불이익을 받기 십상이지만, 제 시간에 출근한다고 추가적 이득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2. 패널티는 ‘위반’의 의미를 변질시킨다.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의무를 다하지 않는 행위는 “비도덕한 행위”였으나, 패널티가 부여된 다음에는 “패널티를 감수하면 되는 행위”로 격하된다.

3. 규정의 강조가, 그 반대급부 또한 강조한다.
예를 들면 지각에 대해 철저한 처벌을 하는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러한 규칙은 “회사와 근로자간 시간 약속의 준수”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직원은 자연스럽게 같은 메시지에 해당하는 ‘칼퇴근’에 강한 욕구를 느끼게 될 것이다.

4. 규정의 적용 자체가 비용을 수반한다.
규정을 잘 적용하게 하기 위한 감시가 필요하다. 이 부분을 놓아버리면, 규정을 피해가거나, 악용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세세한 규칙의 적용은 딱딱한 업무 풍토만을 남기고,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경영자도 꾸준히 신경을 쓰고 감시해야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특히 가장 우려되는 점은 엄청난 몰입과 업무량을 동원해 ‘성취’에 집중해야 할 스타트업 구성원들이 점차 회사를 단지 약속된 만큼을 주고 받는 거래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는 사실이다. 규칙이 구성원을 그렇게 대했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율출퇴근제나 재택근무등이 보이는 우수한 퍼포먼스는 치밀한 감시와 규정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란 점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다 성공한 기업이라면 모를까, 아직 무엇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단계의 스타트업이 굳이 세세한 규칙을 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다시 대화와 설득이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규칙을 세우려 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보자. 명문화된 규칙이 존재하느냐 않느냐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다. 어차피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규칙의 종류 수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보상/처벌이 개입한 것이 문제다.

그런데 보상/처벌 없이는 규칙이 유명무실화되지 않을까? 지각을 하지 말라고 말만 한다면 넉살 좋게 웃으며 몇분씩 회사를 상습적으로 늦는 그런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지 않나? 무조건 보상/처벌을 없애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기존의 보상/처벌제가 놓치고 있던 점을 보완해야 한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보상/처벌 시스템은 한 가지 전제를 깔고 있다. 그 보상/처벌이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것’, 즉 이해득실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요소란 가정이다.

그러나 보상/처벌은 이해득실 외부에도 존재한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학습된 내제화된 도덕률을 통해 우리는 구체적 이득이 없는 선행을 하곤 하며, 구체적 손해가 없을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도덕규범을 준수하곤 한다. 이런 이타성을 억지로 보상/처벌과 무관한 개념으로 이해하려 하는 것보다는 보상/처벌이 이해득실뿐 아닌 문화적이고 도덕적인 만족감에서도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물질적 보상/처벌 설계를 수반하는 규칙 대신 ‘문화’라는 이름의 규칙이 자리잡을 수 있는 빈자리이다. 보상/처벌을 이해득실의 관점이 아닌 문화적이고 도덕의 영역에서 적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극도로 이기적인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잘 자리잡은 문화 안에서 개인은 자연스럽게 그 조직이 바라는 바대로 움직이게 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대화다. 다만 이 대화는 경영자와 한명 한명간의 대화가 아닌 구성원 전반이 업무에 대해 지닌 기대값과 필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경영자가 맨투맨으로 얘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경영자, 대표는 필연적으로 그 회사를 상징하므로 그의 말은 문화이자 동료의 시선이라기보다 회사 자체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물론 그렇다고 맨투맨으로 말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충분하지 않다는 것일 뿐..). 팀원들이 참여하는 자리를 통해 서로가 바라는 서로를 공유하다보면, 개별적인 규칙은 월급 주는 이의 명령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 내가 속한 조직의 도덕적 의무로써 내재화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대화는 계속 되어야 한다. 명문화된 규칙과는 달리 문화는 정량적이지 않으므로, 다양한 예외사항과 변경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이런 문화적 보상/설계는 그 조성부터 유지까지 큰 공이 들어갈 수 있다. 운 좋게 좋은 문화가 자리잡아도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면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일정 이상 조직이 커지면 또 다른 단계로 넘어가야 할 수 있다. 까다롭고, 너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초기기업은 아무리 규칙을 잘 세운다 해도 어차피 까다로운 일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세워진 문화적 규범은 그 효과가 매우 크고 규칙이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뛰어넘는다는 점이다. 규칙으로는 열정을 만들 수 없지만 문화는 가능하다. 스타트업이라면 가능한 즉 끝까지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규칙은 최소한의 영역에서 거들 뿐이다.

참고링크 : 우리는 왜 옳은 일을 할까?

글 : 이충엽
출처 : http://goo.gl/0gGD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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