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와 네트워크 상의 자유, 그리고 빅브라더

개인정보보호와 네트워크상의 자유
From kickstarter.com

1989년 텍스트로 인터넷을 하던 시절, 아직 웹은 탄생도 하지 않았을 당시 R. U. Sirius (읽으면 당신 심각해? 라는 발음이다) 라는 인물이 몬도 2000(Mondo 2000)이라는 잡지를 창간한다. 미래학자이자 SF소설가로 유명한 사이버펑크의 대가 윌리엄 깁슨도 즐겨보았다는 이 잡지는 컴퓨터와 네트워크가 보여줄 미래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였다.

R. U. Sirius는 1992년 몬도 2000을 같이 집필하던 St. Jude Mihon과 함께 창조적인 해커들이 세상을 변형하고 지배하는 세상을 소재로 한 SF소설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암호화를 통한 해커들이 자유를 확보하고 정부의 감시에서 벗어난다는 설정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설정을 이야기하면서 에릭 휴즈(Eric Hughes), 존 길모어(John Gilmore), 팀 메이(Tim May)와 함께 다양한 사이버펑크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당시 팀 메이는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을 흉내낸 암호화무정부주의자선언(The Crypto Anarchist Manifesto)이라는 것을 쓰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암호화된 무정부주의자인 스펙터(specter)가 등장하고, 암호화된 통신과 익명성을 가진 온라인 네트워크가 정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나서 경제활동을 컨트롤하고, 정보들은 비밀리에 유지되는 그림을 그려냈다.

당시의 암호화 기술을 중심으로 한 이런 문화는 네트워크가 확대될수록 정부와 같은 빅브라더의 통제가 커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대한 탈출구의 역할을 하였고, 1990년 초반 다양한 암호화 기술에 심취한 해커들이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정기적으로 회합을 가지기도 하였다. 그 중 유명한 인물 중의 하나가 현재 와이어드의 수석기자로 해커 선언문과 <해커스>란 책을 쓰기도 한 해커문화의 대가인 스티븐 레비(Steven Levy)이다. 또한, 존 길모어는 암호화와 관련한 다양한 문서들을 사람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는데, 이 때 미국 국가안보국 NSA에서는 존 길모어를 방첩법(Espionage Act, 우리나라로 치면 국가보안법쯤 된다) 위반으로 잡아들이겠다고 위협을 하자, 이 사실을 공표하여 위기를 벗어나기도 하였다. 필 짐머만(Phil Zimmermann)이 개발한 PGP(Pretty Good Privacy)는 당대 최고의 암호화 소프트웨어라는 칭송을 받으면서 사이버펑크에 열광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이 되었고, 비상업적 용도로 완전한 오픈소스로 공개되었다. PGP는 그 알고리즘 자체는 전혀 몰라도 누구나 간단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 암호화된 메시지와 데이터를 네트워크를 통해 안전하게 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클린턴 행정부는 1993년 4월, 암호화와 관련한 정책을 발표한다. NSA에서 안전한 음성통화를 위해 암호화 칩셋인 클리퍼 칩(Clipper Chip)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공공부문에서 사용하는 것을 강제화하려는 시도를 하는데, 이 때 암호화 알고리즘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백 도어를 열어서 다양한 감시/감청을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았다. 이를 좌절시키기 위해서 나섰던 집단들도 사이버펑크 운동을 주도했던 존 길모어 등이다. 이들의 적극적인 활동으로 클린턴의 이런 시도는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정부 등에서 주도한 중앙집중적이고도 제어를 할 수 있는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 산업계와 개인의 자율적 선택으로 네트워크에서의 자유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최근 이런 사이버펑크와 암호화 및 해커들의 문화가 다시 주목을 받는 것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실리콘 밸리의 다양한 젊은 층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혁신의 물결이라는 긍정적인 부분과 위키리크스의 줄리안 어산지(Julian Assange)나 NSA의 기밀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일련의 사건들에서 보듯이 과거의 빅브라더와 암호화를 이용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충돌이 다시 한번 가시화되면서 네트워크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련의 개인정보 유출사건이나 국가가 전체를 통제하고 관리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주민등록번호 및 공인인증서라는 체계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몇몇 사건때문에 미봉책으로 덮고 넘어가야 하는 종류의 사안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것을 경제적 관점과 기술, 그리고 행정편이적인 시각에서만 접근했기 때문에, 이렇게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논쟁, 그리고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는 상관없는 피상적인 이야기와 대책들만 쏟아지고 있다. 이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펑크와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에 대해서도 더 고민을 하고, 그런 사회에서 자기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동시에 네트워크의 강력한 힘을 통해서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혜안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이제는 더 이상 숨을 곳도 없고, 사실 상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거의 사라지는 세상에서 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를 내가 개방할 것이며, 어떤 것들을 보호할 것인지 정도는 개인들의 자유에 의해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이 제공되어야 한다. 물론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보호하려면 보호할수록 할 수 없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불편도 감수해야할 것이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머지는 내 필요에 의해서 명시적인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그런 배려는 필요한 게 아닐까? 무조건 법률만 강화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쓰지 못하며, 중앙통제적인 인증과 관리시스템을 주면서 서비스 제공자들에게는 면죄부만 주는 현재의 시스템은 뭐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참고자료 ; Cypherpunk rising: WikiLeaks, encryption, and the coming surveillance dystopia

글 : 하이컨셉
출처 : http://health20.kr/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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