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과하이드] 하이드편 :: 내가 어디까지 참아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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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디까지 참아야 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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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일을 하다보면 종종 드는 생각,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런가?’, ‘그런 게 다 네가 오냐오냐해서 그래’ 이다. 좋은 게 좋다고 예스맨이 되어 하루 이틀 보내다보면 어쩐지 얕보이고 있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모두 자기 밥그릇 챙기느라 바쁜데 여기저기 치여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한번쯤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오래전 지방에서 일 년 정도 근무할 때 같은 사무실에 2년 선배가 있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소위 ‘까대는’ 것이었는데, 유독 나에게만 그러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도 눈만 마주치면 쓰잘머리 없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던졌다. 복도를 지나다 마주치면 ‘야, 선배한테 인사할 때는 90도로 인사해야지’, 옥상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데 와서는 ‘일을 열심히 안 하는구먼. 과장님한테 허락받고 여기 온거야?’ 등 반드시 뭔가 시덥지 않은 말을 걸었다. 그런 데에 일일이 상대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어 보기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가 던진 말에 적절히 반응을 안 했다간 더 낭패를 보기 때문이었다. 그는 못들은 척 하면 ‘어? 이것 봐라. 지금 기분 나쁘다 이거야?’, 그냥 쓴웃음으로 얼버무리면 ‘웃어? 내가 웃기냐?’로 이어지는 후속공격을 항시 준비하고 있었다.

나의 스트레스는 그와 마주치는 복도나 옥상에서의 상황이 일의 터전으로 점점 확장되어오면서 심해졌다. 그 선배는 나에게 외국 협력업체 주소를 대신 알아봐 달라, 지금 보고서가 급하니 바이어에게 보낼 감사편지 문안 초안을 대신 잡아 달라, 저녁에 인접 회사 사람들과 미팅이 있는데 싸고 맛있는 집 세 군데만 확인해 봐라 등의 부탁을 하더니 어느 날엔가는 아들이 드럼을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중고 드럼 가격이 얼만지 알아봐 달라는 가당치 않은 부탁을 했다. 당시에는 이런 상황에 적합한 표현어구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새로 생겨서 다행이다. ‘허얼~ 대박!!!’

나는 좋은 게 좋다고 처음에 한두 번 들어준 부탁의 성의가 퇴색될까봐 그 다음번 부탁도 군말 없이 들어주곤 했는데 아들의 중고 드럼 가격을 알아봐 달라고 하니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나는 사회 초년생이었고 인간관계나 처세의 기본은 호의와 헌신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물론 지금도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부탁을 받을 때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지만 어지간하면 성의껏 처리해주고 집에 와서는 이불을 발로 차며 후회하는 사이클을 반복했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또 번번이 그런 부탁들을 들어주고 있었다.

조직생활 10년차가 되던 즈음에는 그런 부탁을 들어주고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결과로 내 변변치 않은 인맥과 임기응변 능력이 생겼으니 손해 본 장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회로 나온 지 20년을 바라보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뭐,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모든 사회인은 리더이면서 또 누군가의 팔로워이다. 제법 경력을 쌓고 직위가 올랐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대면하고 싶지 않은 선배가 있고 이런저런 부탁들이 들어온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서는 제법 순조롭게 대응하고 있는 듯하다.

몇 년 전 있던 사무실에는 입심도 좋고 상대방이 싫어할 말만 골라서 하는 고약한 선배가 한 명 있었다. 이 사람의 특징은 일단 마주치면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상대를 칭찬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말을 조금 섞으면 반드시 상대의 속을 뒤집어 놓는 말을 꺼냈다. (그 사람이 왜 그러는 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꼭 있기 때문에 ‘그런 종류의 사람은 그냥 있는 것’이다.) 중고생 자녀가 있는 사람에게는 학교 성적을 물어보았다. (반드시 공부 못하는 자녀의 부모에게만 물어본다.) 과년한 여자 사원에게는 “애인 ‘아직’ 없지?”라고 물어본 후에 “대한민국 남자들이 사람 보는 눈이 없어”로 연계하고 나서, “000씨 어때?”로 이어지는 연속공격을 했다. (000씨는 회사에 납품하러 가끔 들어오는 나이 많은 노총각이었다.) 배 나온 사람에게는 콜레스테롤과 당뇨 합병증 콤비네이션, 머리숱 없는 사람에게는 박명수 얘기하다가 갑자기 가발광고 기습 공격. 휴우~ 뭐, 예를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이 사람에 대해 내가 취한 대응책은 ‘완전회피’였다. 복도를 가다가 저 끝에서 오는 것이 보이면 90도를 꺾든 180도를 돌든 마주치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마주치면 ‘아차!’라고 말하면서 다시 나오든가 내가 먼저 들어가 있던 상황이라면 볼일을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침을 계속 했다. 말을 붙일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옥상에서 거리를 바라보고 있거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뒤쪽이나 옆쪽에 나타나 불의의 일격을 받으면 무조건 스마트폰을 들고 ‘여보세요?’ 라고 했다. 가끔 스마트폰이 없는 상태에서 마주치거나 바닥을 보고 걷다가 복도에서 만나는 비상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무조건 그리고 즉각 어디로든 뛰어서 시야로부터 사라졌다. (이런 것은 사실은 경험이 많이 쌓이거나 상당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한 연후에 가능하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한 사람들의 스트레스와 억울함을 옆에서 듣고 있자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하는 게 무조건 상책인 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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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나는 간단한 영작이나 이메일 검토 등의 개인적인 부탁을 받는다. 외국에서 온 영어 이메일을 번역해 달라든가, 자녀의 외국 중고등학교 입학을 위한 영문 추천장을 받아왔는데 검토해 달라는 식이다. 나의 직위가 어느덧 단순 영작이나 문장 검토를 해줄 급은 아니지만, 직장의 임원들 중에는 외국물 좀 먹었다고 평소 자랑은 하지만 영어는 못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부하나 어린 사원들에게 시키기는 체면이 말이 아니니 나에게까지 일이 넘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이런 일을 초반에 딱 잘라서 외면하지 못한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직장생활을 하는 등장인물이 “에이, 이런 건 애들한테 시켜요” 라든가 “나 같은 고급인력은 공짜가 아닌데 그럼 선배는 나한테 뭘 해줄 거예요?” 라고 대사를 치는 걸 보면서 속으로 ‘나도 나중에 저렇게 해봐야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명확하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이다. “지금 제 업무 우선순위 상 내일까지 끝내야 할 일이 3가지이고 오늘 중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보고서가 2건이기 때문에 내일 저녁에 집에 가서 번역을 해서 모레 드리겠습니다.” “자녀의 학업은 중요한 일인데 전문가에게 맡기거나 돈을 들이지 않고 하겠다는 건 맞지 않고, 일과시간에 제가 이것을 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해드릴까요?” 등 할 말은 한다. 그렇게 명확하게 말 해놓아야 부탁하는 상대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고 일을 처리해준 다음에도 제대로 고맙다는 소릴 듣는다.

결론적으로, 라고 말하기에는 결론이 없는 주제의 글이지만, 나는 여전히 업무분장의 범위를 넘거나 일과 무관한 개인적인 부탁을 받고 있다. 피한다고 피해보지만 퇴직을 앞둔 선임선배와 어쩌다 마주쳐서 그다지 하고 싶지 않은 대화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20년 전처럼 ‘내가 만만해 보이나?’ 혹은 ‘어디까지 언제까지 참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래저래 사회밥 먹으면서 긍정적이든 아니든 이런저런 상황에 적응한 것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10년 정도 더 있다 보면 알 것 같기는 하다.

글/ 남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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