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영향을 미친 SF소설과 영화들 (7)

SF의 황금기가 1938~1950년 이었다면, 1950~1965년까지의 시기는 실버에이지(silver age)로 이야기 한다. 황금기에 워낙 유명한 작가들이 많이 등장해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될 뿐, 실버에이지에도 정말 좋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에는 SF가 소설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영화라는 미디어에 최적화된 작품들도 많이 등장했고, 오늘날까지 SF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휴고(Hugo)와 네불라(Nebula) 상이 만들어져서 SF의 붐을 이끌었다.

휴고 그린스백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휴고상(Hugo Award)은 1953년에 처음으로 시상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SF컨벤션의 멤버들의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된다. SF와 판타지 소설과 단편, 영화, 작가 등에 대해 시상을 하는데, 최초의 휴고상 수상작은 알프레드 베스터(Alfred Bester)<파괴된 사나이(The Demolish Man)>다.

네뷸라상은 휴고상보다 조금 늦은 1965년부터 시상을 하기 시작했는데, 네뷸라상 수상작은 미국의 SF/판타지 작가회에서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휴고상이 팬들의 입김이 강하다면, 네뷸라상은 조금 작가들의 생각이 더 반영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첫 번째 네뷸라상 수상작은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큰 인기를 끌었던, 프랭크 허버트(Frank Herbert)<듄(Dune)>이다.

이처럼 휴고상과 네뷸라상은 새로운 SF작가들의 발굴과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SF소설과 영화 전반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실버에이지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이 많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첫 번째 휴고와 네뷸라상을 탄 두 명의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자.

알프레드 베스터, 파괴된 사나이

알프레드 베스터가 SF작가가 된 것에는 <어메이징 스토리>의 H. G. 웰즈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SF에 대한 열렬한 팬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알프레드 베스터는 원래 DC 코믹스의 스토리 작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에서는 상상력과 설정의 기발함이 대단하다. 작품적인 측면에서는 <타이거, 타이거>와 <파괴된 사나이> 딱 두 편만 제대로 성공을 했기 때문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두 작품이 모두 높은 평가를 받는다.

유명한 작품은 두 개지만 SF작가로서의 경력은 상당하다. 처음으로 작가로서 데뷔한 것은 스릴링 원더지 1939년 4월호 콘텐스트 1등 당선작이 된 <파괴된 공리(The Broken Axiom)> 이었고, 이후 3년 간 14편의 중단편을 발표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인상적인 작품들은 없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그런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스승이었던 스릴링 원더지의 두 편집자가 DC코믹스로 가면서 이들의 권유로 DC코믹스의 일을 받아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슈퍼맨>을 비롯하여 <그린 랜턴>, <캡틴 마벨> 등과 같은 유명한 작품들의 시나리오를 맡아서 코믹스 특유의 시각적인 장치와 강렬한 액션, 간결한 문장 등에 익숙해지면서 자신 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어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정규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특히 당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더 쉐도우>의 드라마에도 관여하는 등 이 분야에서 최고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최초의 휴고상 수상자, 알프레드 베스터 from goodreads.com
최초의 휴고상 수상자, 알프레드 베스터 from goodreads.com

연관글

2015/05/17 – 수퍼히어로 등장의 역사 (1) – Shadows와 Doc Savage

라디오와 방송작가로서 최고의 인기를 끌었지만, 방송의 검열이라는 장치 때문에 많은 갈등을 하던 알프레드 베스터에게 또 다시 창작의 의욕을 불러 일으키는 사건은 우연찮게 찾아온다.

잘 알던 작가인 호레스 골드가 <갤럭시> 지의 편집을 맡았다면서, 알프레드 베스터에게 원고를 요청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SF작가로서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하고, 방송작가로서의 입지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알프레드 베스터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시 SF에 도전하게 되는 계기를 그렇게 만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의 인생을 다시 SF작가로 바꾸어 놓은 <파괴된 사나이>의 집필이 시작된다.

타임머신을 갖추고 범죄를 그 발생지점까지 더듬어갈 수 있는 미래경찰을 상대로 범인이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완전범죄를 기도하는 미스터리물을 기획하고 있던 그에게 호레스는 시간여행 테마는 진부하니 경찰관에 타임머신 대신 텔레파시 능력을 갖게 하자는 제안을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 그는 텔레파시를 가진 미래경찰과 이와 연관된 에스퍼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의 집필에 착수해서 1952년 1월부터 3회에 걸쳐 갤럭시 지에 연재되면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파괴된 사나이>다. 이 작품은 멋진 구성과 주인공들의 강렬한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 방송작가 출신 다운 역동적인 대사 등이 어우러지면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작품으로 거듭난다.

사실 1953년 제 1회 휴고상에서 <파괴된 사회>과 경쟁한 작품은 아서 클라크의 명작 <유년기의 끝> 이었으니, 이 작품이 얼마나 당시에 높은 평가를 받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후 1956년에 <타이거, 타이거!>를 발표하면서 최고의 작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는데, 이 작품은 갤럭시 지에 <내가 가는 곳은 별의 무리 (The Stars My Destination)>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다.  이 작품은 <파괴된 사나이>의 스케일을 좀더 넓히고 정념과 에네르기를 더욱 확장시킨 것 같은 작품이었다.

프랭크 허버트, 듄

최초의 네뷸라상 수상자인 프랭크 허버트는 역사상 최고의 대하 SF시리즈 중 하나로 꼽히는 듄 시리즈의 작가라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대하 SF’ 라는 쟝르를 연 것으로도 유명한 듄(Dune)은 단순한 SF가 아니라, 인류의 삶과 철학, 정치,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심지어 아서 클라크는 “듄에 견줄 작품은 반지의 제왕밖에 없다” 고 말하기도 하였다.

최고의 SF대하소설 을 쓴 프랭크 허버트 from Wikipedia.org
최고의 SF대하소설 <듄>을 쓴 프랭크 허버트 from Wikipedia.org

40대까지 기자로서 일을 하던 프랭크 허버트는 1950년 대 들어서 30대가 되어서야 SF소설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들을 읽기 시작했고, 몇몇 단편소설들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단편을 발표하면서 20편 정도를 써냈고, 1955년 <바다의 용(The Dragon in the Sea)>라는 첫 번째 장편을 발표하였다. 늦게 시작해서 최고의 반열에 오른 케이스다.

듄은 기자 출신인 프랭크 허버트의 장점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1959년 <듄>을 쓰기 위해 먼저 철저한 자료수집을 시작했다. 무려 6년 간의 자료수집과 구상, 조사 등과 함께 꾸준히 대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뒤에 1965년에야 작품을 낼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처음 <듄>에 대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오리건 주의 사막에 대한 기사를 쓰려고 사막을 조사하다가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조사한 자료가 너무 많아서 기사는 제대로 못 썼지만, 결국 <듄>으로 나온 것이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듄의 출판과 관련해서도 사연이 많다. 처음에는 잡지에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분량이 너무 길어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연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출판해줄 출판사를 찾아다녔지만 약 20군데의 출판사에서 듄의 출간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때 한 출판사 담당자가 거절을 하면서 “나는 이번 10년간 가장 큰 실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는데, 이 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듄은 연재가 시작된 1965년에 네뷸러상 수상, 1년뒤 66년에 휴고상 수상을 하면서 20세기 최고의 SF소설 중의 하나로 꼽히는 대작이 되었다. 프랭크 허버트는 듄 시리즈의 후속작을 연달아 발표하면서 하나의 거대한 듄 월드를 창조하였고, 1984년에는 세계적인 히트를 시킨 영화 듄(Dune)까지 탄생하였다.

1986년에 마지막 시리즈인 ‘듄의 신전’을 발표하고, 1986년 2월 11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듄 시리즈를 미완성으로 남기게 되는데, 그가 생전에 아이디어에 대해 이것저것 메모를 한 것들을 정리해서 아들인 브라이언이 후속작을 냈다. 그렇지만, 아버지만한 재능은 없었는지 아들 브라이언이 쓴 듄 시리즈는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래 임베딩한 영상은 데이빗 린치가 감독을 맡아서 영화화한 1984년작 듄(Dune)의 한 장면이다. 개인적으로 듄 시리즈는 다시 리메이크가 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작품이다. 사실 2008년 파라마운트가 새로운 듄을 영화화한다고 발표해서 많은 팬들을 흥분시키기도 하였는데, 아쉽게도 여러가지 이유로 2011년 프로젝트 중단되고 말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예 TV시리즈로 리메이크가 된다면 더욱 좋을 듯하다. 물론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가겠지만 말이다.

듄은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Cryon Interactive가 제작하고 Virgin Interactive가 유통을 맡았는데, 경제와 군사 전략게임으로 출시가 되었다. 아미가와 IBM PC 용으로 출시가 되었는데, 게임 역사적으로도 처음으로 플로피디스크 게임에서 CD포맷으로 컨버팅이된 게임 중의 하나라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리고, CD로 발매가 가능했기에 데이빗 린치의 영화의 일부와 3D 렌더링이 된 장면 등도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세가의 콘솔용으로도 발매가 되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Weswood에서 <Dune II: The Building of a Dynasty>, . <Dune 2000>, <Emperor: Battle for Dune>  등의 후속작도 발매가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Dune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다시 작품의 판권을 얻은 Cryo Interactive가 Dune Generations를 제작하던 도중 재정적인 문제로 파산을 하면서 이후에는 새로운 게임들이 등장하지 못했다.

아래 임베딩한 영상은 1992년 당시의 화제작이었던 Dune의 PC 인트로 영상이다. 지금보면 어설프게 보이겠지만, 당시로서는 최고의 퀄리티를 보여준 인트로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글 : 하이컨셉
출처 : http://goo.gl/4KJWLb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