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코스 이야기 12] 직장내 경조사 문화

한가지 한국과 미국이 많이 다르다고 느낀 것은 직장내 경조사문화다.

한국에서는 직장인이 결혼한다고 하면 회사내의 관련부서를 돌면서 열심히 청첩장을 돌리는 것이 상례다. 보통 주말에 열리는 결혼식에 같은 부서의 사람들은 많이 참석해 축의금을 내고 축하해주는 편이다. 결혼당사자의 직속상관은 거의 반드시 참석하며 친한 직장동료들이 오지 않으면 섭섭해한다. 회사의 총무부서에서는 사장님 명의로 축하화환을 보내준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장이 주례까지 서주는 일도 드물지 않다.

동료가 아닌 회사 상사의 자녀가 결혼하는 경우에도 회사직원들이 열심히 결혼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결혼시즌이 되면 사내외에서 지나치게 많은 청첩장을 받아 부담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반면 미국에서는 직장상사는 물론 회사동료까지 거의 아무도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자신의 결혼소식을 주위에 알리기는 해도 같은 팀의 동료들도 전혀 초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회 등에서 하는 격식을 갖춘 결혼식일수록 더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초대받지 못하는 것을 주위에서도 당연하게 여긴다. 많은 사람을 초대하는 캐주얼한 결혼식의 경우 직장동료를 초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그 직장동료들과 회사를 떠나 좋은 친구관계이기 때문에 초대하는 것이다. 직장동료여서 초대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결혼식을 회사에는 전혀 알리지 않고 숨기는 경우도 있었다. 라이코스에서 오래동안 근무한 데비는 역시 10년동안 같이 일한 자신의 상사 짐이 결혼식을 숨겨서 섭섭하고 화가 났었다고 내게 털어놓은 일이 있다. 짐이 일주일동안 휴가를 간다고 사라졌는데 회사밖의 지인중 누가 “그가 결혼한다”고 말해줬다는 것이다. 그래서 데비는 지역신문을 뒤져서 그의 결혼식소식을 확인했다. 그런데 일주일뒤 ‘허니문’에서 돌아온 짐은 아무 말없이 계속 시치미를 떼었다는 것이다.

유대계인 신부 도리와 결혼한 조는 유대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랍비가 주례를 보고 후파라는 차양밑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서약이 끝나고 신랑이 보자기로 싼 유리컵을 오른발로 깬다. 바로 그 순간.
유대계인 신부 도리와 결혼한 조는 유대식 결혼식을 올렸다. 그래서 랍비가 주례를 보고 후파라는 차양밑에서 결혼식을 올리며 서약이 끝나고 신랑이 보자기로 싼 유리컵을 오른발로 깬다. 바로 그 순간.

하지만 나는 회사직원의 결혼식에 초대받는 행운을 누렸다. 회사의 IT담당 매니저인 조는 자신의 결혼식에 나와 다른 몇몇 동료를 초대해줬다. 그의 신부가 유대인이었던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랍비가 주례를 서는 유대식 결혼식을 볼 수 있었다. 미국에서 결혼식에는 보통 축의금은 내지 않는다.

대신 결혼할 커플이 자신들이 필요한 물품을 담은 ‘위시리스트'(Wish list)를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보낸다. 보통 아마존같은 온라인쇼핑몰의 링크로 되어 있는데 보통은 그 중에서 선착순으로 선물을 골라서 ‘웨딩기프트’로서 결혼식에 가지고 간다. 나의 경우는 책을 좋아하는 신부를 위해서 전자책리더인 ‘킨들’을 선물했었다. 하지만 조가 직장동료들을 결혼식에 초대한 것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라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열렸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과 함께 춤을 춘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이 열렸다. 신랑, 신부가 부모님과 함께 춤을 춘다.

그리고 미국회사는 보통 결혼하는 직원에게 공식적으로 화환을 보내거나 축하금을 지급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라이코스도 그랬다. 하지만 일부 회사문화에 따라 축하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장례식문화도 다르다. 한국에서는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가급적이면 회사동료의 가족장례식에 문상을 가는 문화다. 궃은 일일수록 더 챙기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직원본인이 사고로 고인이 된 경우나 고인이 된 동료의 가족을 직접적으로 아는 경우가 아니면 회사동료에 관련된 장례식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직원가족의 부음을 알게 되면 회사에서는 과일바구니나 꽃바구니를 보내서 조의를 표시한다. HR매니저인 다이애나는 회사대표로서 장례식에 간 일도 가끔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족의 장례식을 회사동료들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주위에서 이야기를 들었더라도 본인앞에서는 일부러 모른 척해주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본인이 감추고자 하지 않는 경우에는 회사에서 꽃바구니를 보내서 조의를 표시했다. 하지만 내가 장례식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이런 문화는 경조사는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라고 여기고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듯 싶다. 특히 자신의 가족사 등 사생활을 주위에 노출시키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이런 경우 가까운 주변 동료들에게도 결혼여부 등 자신의 사생활을 전혀 털어놓지 않는다. 주위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르켜 “그는 아주 비밀스러운 사람이다(He’s very private person)”란 표현을 쓰곤 했다.

싫든좋든 이런 문화 덕분에 내가 라이코스CEO로 재직한 3년동안 조의 결혼식에 참석한 일이 내 유일한 미국에서의 직장내 경조사경험이었다. 내 생각에 라이코스는 백인중심문화의 뉴잉글랜드에 위치한 회사라 좀 보수적이고 드라이한 편이었을 것 같다. 회사마다 문화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5년전 나를 결혼식에 초대해주었던 조는 지금 아브람이라는 귀여운 아들을 얻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아들바보인 그의 모습을 가끔 접한다. 참 좋은 세상이다.)

글 : 에스티마
원문 : http://goo.gl/f7YM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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