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가닉 마케팅인가(Why Organic Marketing)?

<<오가닉 미디어>>를 출간하고 나서 “책 홍보도 좋지만 무슨 미디어에 오가닉이냐, (한심하다)”는 반응을 본 적이 있다. ‘소셜 미디어’라고 하면 될 것을 왜 새로운 용어를 만드냐는 반응도 있었다.

나는 오가닉 미디어에서 ‘오가닉’이라는 수식어가 앞으로 필요 없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믿는다. 전통 미디어와 오가닉 미디어의 대조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미디어는 유기체이며 생명이 길고 진화하는 미디어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하고 도태되는 미디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정립되어온 미디어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지금으로서는 ‘오가닉’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 글은 같은 맥락에서 마케팅 개념을 정리한 것이다. 오가닉 미디어가 소셜 미디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듯, 오가닉 마케팅은 마케팅 기법의 일부가 아니다. 마케팅의 본질적 진화다. 전통적 의미의 미디어, 제품, 소비자, 유통, 영업 등의 개념이 통째로 바뀌고 유기적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진화하는 가운데 마케팅의 진화가 있다.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마케팅을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지 네트워크 관점에서 살펴보고, 이에 따라 마케팅 활동의 목적, 과정,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금부터 알아보도록 하겠다.

샤오미, 우버, 테슬라의 공통점

샤오미, 우버, 테슬라에는 공통점이 있다. 고객이 직접 소문을 내고 제품을 팔고 브랜드를 만든다. 각 기업과 고객 간의 관계는 다르지만 고객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마케터, 광고대행사, 영업사원의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들은 오가닉 마케팅을 정의하는 단면들이다.

입소문으로 유명한 샤오미의 고객은 전형적인 영업사원이다.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제품을 서로 추천하고 포럼까지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애프터서비스도 대신 도와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팬들은 샤오미의 기획자, 개발자, 테스터이기를 자처한다. 제품과 고객과의 관계, 제품으로 매개된 고객 간의 관계, 고객으로 매개된 제품 간의 관계의 합이 궁극에 샤오미의 제품이다[샤오미와 비즈니스의 사회적 진화].

우버도 샤오미처럼 경험의 바이러스가 만든 네트워크다. 운전자는 다른 운전자를, 탑승객은 다른 탑승객을 불러오는 영업사원을 자처한다. 우버에게는 탑승자도 운전자도 모두 고객이다. 운전자에게는 고객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경험을 주고, 주어진 컨텍스트에서 최대한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경험은 더 많은 운전자들을 우버 네트워크에 들어오게끔 한다. 탑승객에게는 차량 호출부터 하차까지 끊김이 없는 서비스 경험을 제공하는데 집중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더 많은 운전자와 더 많은 탑승객 간의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다시 고객이 더 적극적인 영업 사원이 되는 고리를 만든다. 고객이 우버의 네트워크를 두 번 키워주는 것이다.

우버는 차량 호출이 극에 달하는 상황(레스토랑, 저녁 파티, 휴일, 이벤트 등)을 ‘촉매제(accelerants)’로 활용하여 전염성을 더 높이고 있다. 운전자는 할증을 받을 수 있고 탑승객은 차를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버는 차량 호출이 극에 달하는 상황(레스토랑, 저녁 파티, 휴일, 이벤트 등)을 ‘촉매제(accelerants)’로 활용하여 전염성을 더 높이고 있다. 운전자는 할증을 받을 수 있고 탑승객은 차를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다

나는 몇 달 전 테슬라 모델 3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차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한국에 전기차 충전소도 없는데, 그것도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이다. 테슬라는 1 주일만에  30여만 대의 예약주문을 받았다. 엘론 머스크의 브랜드 파워만으로 소비자들이 아직 형체도 없는, 수천만 원이나 하는 제품을 예약 주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테슬라가 제시하는 미래의 가치에 동참하고자 하는 욕구와 제품에 대한 간접 경험이 동시에 작용했기 때문이다. 테슬라의 팬들이 꾸준히 생산해온 생생한 체험 콘텐츠와 검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운전 동영상을 올리고 글을 쓰고 실제로 제품을 대신 팔아가면서 테슬라의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동참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마케팅 관점에서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마케팅의 한계와 새로운 정의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은 ‘대중’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그룹이 사라지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미디어가 되는 세상, 서로의 콘텐츠가 연결되어 끝없이 네트워크를 만들고 지우는 세상, 이 네트워크의 유기적 진화가 지배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은 오가닉 미디어 세상이다.

이러한 미디어의 진화가 마케팅 영역에 숙제를 남기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이라는 타깃은 사라졌고, 마케터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던 미디어는 네트워크 자체가 되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마케팅을 정의할 것이며 어떻게 숙제를 정리할 것인가?

1. 전통적 마케팅의 한계

전통적으로 마케팅은 제품, 서비스, 브랜드의 가치를 고객에게 소통하는 것으로 정의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마케팅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정의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마케팅협회(Americal Marketing Association)에 의하면 마케팅은 ‘고객, 파트너 그리고 사회 전반에게 가치있는 제품 등을 만들고, 소통하며, 전달하고, 교환하는 일련의 과정, 제도, 활동’이다(Marketing is the activity, set of institutions, and processes for creating, communicating, delivering, and exchanging offerings that have value for customers, clients, partners, and society at large.).

과거의 마케팅에서 고객 한 사람의 니즈, 욕구가 무엇인지 중요했다면 이제는 고객이 사랑하는 가족(tribalism), 고객이 참여하는 사회, 고객이 살고 있는 지구 단위로 가치는 확대되고 있다[Philip Kotler, Marketing 3.0, 2010.]. 그런데 이러한 가치를 기업이 혼자서 만들고 전달하고 소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 결과 자사의 브랜드를 설득하고 고객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할까? 이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 말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제품과 회사와 정보와 데이터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이제 고객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가치는 오직 연결 가치뿐이다. 고객이 필요한, 공감하는, 원하는 정보·제품·사람·기회(opportunity)의 연결을 말한다(심지어 광고도 연결가치를 제공할 때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연결의 주체도 바로 고객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가치와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것 뿐이다.

2. 오가닉 마케팅의 정의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객의 네트워크가 자라나도록 도와주는 조력자가 곧 마케터다. 고객이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우리는) 서로 연결될수록 커지는 네트워크, 오가닉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케팅은 고객의 네트워크가 살아서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역할의 전환이다.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즉 고객과 회사의 관계가 아니라, 고객의 네트워크를 매개하고 측정하는 활동(Customer Network Mediation)이 핵심이 된다. 위의 사례들은 몇 가지 공통적 특성으로 수렴된다.

첫째, 고객의 경험에 기반을 둔다. 샤오미의 제품, 우버의 서비스를 먼저 접한 고객들의 경험은 지인들에게 유익한 정보다. 그 순간 선 경험자들은 능력자가 된다. 주변에 정보원도 많고 모험을 즐기는 얼리어답터들로 평가받는다. 그들 덕택에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싸게, 남들보다 빨리 접할 수 있다. 소수만 만들 수 있는 특종을 생산하는 셈이다. 이때 제품은 고객들 간의 유익한 관계를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 된다. 샤오미 공기청정기를 산 사람이 선풍기와 연결되도록 돕고 아마존에서 베이킹소다를 산 노푸어가 사과식초와 연결되도록 돕는 것이다.

둘째, 마케팅은 거들 뿐이다. 고객과 고객, 고객과 제품, 고객과 정보 또는 (잠재적) 관심 등을 매개하는데, 매개 활동의 주체는 고객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제품을 추천하고 연결하고 팔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품 자체의 경험을 좋게 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쓸 수밖에 없다.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과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드는데 30%의 시간을, 이를 알리는데 70%의 시간을 썼지만 앞으로는 그 반대가 된다(In the old world, you devoted 30% of your time to building a great service and 70% of your time to shouting about it. In the new world, that inverts.)“라고 말한 바 있다. 최고의 고객 경험을 통해 스스로 바이러스가 되도록 돕는 것이 마케팅의 역할이 되었다.

셋째, 그 결과 네트워크를 만든다. 마케팅 활동은 네트워크로 돌아온다. 적극적인 팬만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제품의 사용만으로도, 구매만으로도, 구경만으로도, 네트워크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다. 테슬라의 운전자들은 ‘연결된 차’를 운전하면서 기여한다. 테슬라의 ‘Fleet learning network‘가 그렇다. 차 한 대가 배우면 나머지 네트워크 전체가 배우는 결과가 된다. 고객은 운전을 할 뿐이지만 데이터를 생산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한다. 과거에 마케터가 설문지를 작성하고 정량·정성 조사(survey)를 통해 고객의 피드백을 얻고자 노력했다면 여기서는 고객의 피드백도 개선도 즉각적이다. 이 과정이 Fleet learning network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정리하자면 사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네트워크를 만드는 (유기적) 과정, 그리고 과정을 설계하고, 과정과 결과를 측정하는 방법론이 바로 오가닉 미디어 세상의 마케팅이다. 네트워크는 데이터를 쌓는다고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데이터의 축적이 유기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원의 숫자가 연결을 만들지도 않는다. 네트워크라는 유기체는 경험의 결과이므로 간접적으로는 얻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데이터만 있으면, 회원 수가 많으면 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지금 네트워크의 체험을, 시행착오를 시작해야 한다.

오가닉 마케팅의 목적, 과정, 결과

대기업만, 빅데이터를 다루는 회사만 가능한 마케팅이 아닌가 의문을 가지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오가닉 미디어랩과 같이 작은 조직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우리의 체험 사례를 중심으로 위에서 언급한 오가닉 마케팅의 특성을 목적, 과정, 결과로 다시 나누어서 정리하겠다.

오가닉 마케팅은 이미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기반으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과정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며 네트워크가 그 성과다.
오가닉 마케팅은 이미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경험을 기반으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과정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며 네트워크가 그 성과다.

1. 목적: 불확실성의 제거

처음에는 독자가 있기는 한 것인지, 내 제품의 가치를 확인해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시장이 불확실할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존의 방식대로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더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고(대규모 마케팅), 다른 하나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후자를 선택했고 그다음은 여러분이 아는 이야기다. 글(프로토타입) 하나씩 블로그에 풀었다. 그리고 콘텐츠가, 책(제품)이, 우리 스스로가 미디어가 되는 경험, 즉 네트워크 자체가 되는 체험을 하며 다시 배워나갔다.

예측·통제 불가능한 시장에서 마케팅은 비선형적(non-linear)이며 실험과 검증의 연속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 고객을 만나는 지점은 대망의 출시, 이벤트가 아니라 훨씬 더 이전에 이뤄진다. 설문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 현상을 직접 체득하고 리스크도 줄인다. 결국 마케팅, 홍보, 프로모션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가설을 검증하고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수단(의 연속)이 되어야 한다(콘텐츠를 항상 고객의 데이터 분석을 위해 활용하는 버즈피드 사례). 그래서 끝이 곧 시작이다. 연결은 도달 이후에 일어난다. 지금의 지표가 다음 사이클의 목적, 과정, 결과를 결정한다. 모든 프로젝트의 사이클이 1.5회인 것이다.

기존의 선형적 (linear) 가치사슬에서는 마케팅의 시점이 너무 뒤에 있었다.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해왔고 ‘수업료’를 많이 낸 후에야 깨달았다. 고객을 만나지 않고 상상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해온 것이다. 그러나 마케팅이 고객의 경험에 기반을 둔다는 얘기는 사업자가 더 이상 시장을 통제할 수 없게 되었음을 뜻한다. ‘대중’이 존재했을 때나 가능했던 일이다.

현대자동차 제네시스의 이벤트 사례, 맥도날드의 트위터 이벤트 등은 시장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시행착오다. 걷잡을 수 없는 반응으로 브랜드는 하루 만에 조롱과 풍자의 댓글로 폭파(?) 되다시피 했다. 개인적인 체험도 있다. PC에서 청정마을처럼 가꿔오던 SNS를 스마트폰용 어플로 출시한 후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했다. 사용자들의 예측 불가한 집단행동에 서비스는 하루아침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10만 명에게 메일을 보내 ‘문화’를 운운하며 사정을 하기도 했다.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오가닉 미디어는 사용자에 의해, 그들의 예측할 수 없는 활동에 의해 지배되는 네트워크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쇄적인 실험의 사이클이 필요하다.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연쇄적인 실험의 사이클이 필요하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를 체득했다. 첫째,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과정은 시장뿐만 아니라 내 제품과 내 조직(팀)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장은 규모로 추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 명, 한 명의 고객이 누구인지 알아가면서 밝혀지는 실체다. 둘째, 단계별 접근을 통한 유기적 마케팅은 제품과 시장을 함께 성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제품이 있고 고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문제가 있고 이것을 해결해가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고객의 문제에서 출발할 경우에만 콘텐츠(제품)은 생명을 유지하며 진화할 수 있다.

2. 과정: 모두의 매개활동

제품이 고객의 문제를 해결할 경우 고객은 연결의 주체가 된다. 제품을 사용하고 가치를 더하고 추천하며 팔아준다. 샤오미도, 우버도, 테슬라도 고객이 제품의 가치를 더하고 추천하며 팔아준다. 우리는 <<오가닉 비즈니스>> 종이책을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팔았다. 예약이 1천 권을 넘어갈 경우에만 종이책을 인쇄하기로 했다. 웹북과 전자책을 무료로 공개했지만 종이책을 원하는 팬들은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리고 함께 참여하기를 독려했다.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마케팅이었고 책을 알리는 마케팅이 되었다.

연결된 시장에서 고객이 기꺼이 직원이 되어주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지인들과의 즐거운 연결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을 추천하는 모두가 곧 책방’이라는 개념을 실험한 ‘일인 서점’ 프로젝트에서 얻은 시사점이기도 하다(1). 일인 서점 즉 추천인 본인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때는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반대로 내가 아니라 지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을 때 비로소 링크를 공유했다. 그렇게 퍼진 책은 동료들과의 공부 모임에서, 강연장에서, 워크숍에서, 프로젝트에서 다른 콘텐츠로 재생산되고 이어지고 있다.

3. 결과: 측정 가능한 네트워크

실험 사이클의 성과는 판매량(도달)이 아니다. 네트워크다. 독자들은 단순히 책의 입소문을 내주는 주체가 아니라 책(제품)의 일부가 되었다. 네트워크의 구성원이었고 미디어였으며 책 자체였다. 이 과정은 ‘미디어가 네트워크’라는 사실, 그래서 살아서 진화하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저자인 내게 되짚어 주었다. 실제로 크라우드 펀딩 과정에서, 공유된 식별 코드를 통한 구매 과정에서 네트워크는 구체화되었다. 책이 참고문헌(reference)과 분리될 수 없듯이 독자, 리뷰, 추천의 결과와 분리되지 않는다. 이들이 책의 또 다른 레퍼런스다. 네트워크가 제품(책)이며 그러므로 제품(책)은 유기체인 것이다.

네트워크는 지표로 측정될 때 드러난다. 고객의 도움(입소문)으로 메시지를 더 멀리 도달시키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지표도 바꿔야 한다. 머리로는 네트워크를 구축한다고 하고 성공지표는 여전히 다운로드 수, 좋아요 수, 페이지뷰에 머무른다면 모순이다. 오가닉 미디어 세상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링크의 측정은 제품마다, 사이클마다 다를 것이다. 다만 공통적인 질문은 얼마나 많은 고객들이 직원으로, 기자로 우리를 위해 공짜로 일하고 있으며 그들 한 명 한 명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사람들이 공유한 포스트에는 광고주의 브랜드명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자사의 브랜드 로고가 얼마나 어떻게 공유되었는지 분석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공유한 포스트에는 광고주의 브랜드명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미지 인식 기술을 통해 자사의 브랜드 로고가 얼마나 어떻게 공유되었는지 분석이 가능하다.

리뷰를 쓰는 능동적 고객만이 아니다. 고객이 혜택(쿠폰, 할인, 추천 등)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데이터를 오픈하고 서로의 최적화된 연결에 기여하며 선순환을 만든다면 모두 우리의 직원이다. 무엇(제품, 콘텐츠, 고객 등)을 매개(공유, 언급, 추천, 초대, 리뷰, 구매, 참석, 소비 등)하는지, 어떻게 얼마나 자주 매개하는지 다양한 방법으로 측정해야 한다. 얼마나 건강한 링크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이 노드(회원 수, 다운로드 수 등)를 세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결론

지금까지 오가닉 미디어 세상의 마케팅을 네트워크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왜 마케팅을 논하면서 제품을 실험하고 완성해가는 기획·개발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가? 어째서 ‘Fleet learning network’를 만드는 과정을 마케팅의 예시로 언급하는가? 도대체 어디까지를 마케팅 활동으로 보고 있는 것인가?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는 이러한 네트워크를 만드는 활동이 그 어떤 마케팅보다 강력하다. 제품을 고객과 분리되지 않는 유기체로 만들기 때문이며, 이 네트워크는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 네트워크가 곧 제품이다. 이 관점에서 마케팅은 제품의 가치를 기업이 말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체험을 통해 직접 매개하도록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케팅은 기획·개발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기획·개발과 분리되지 않는 유기적 활동이다. 결국 어떻게 모두를 매개자로 만들 것인가가 마케팅의 고민이 돼야 한다면 기획·개발 과정이 곧 마케팅이며 마케팅이 곧 기획·개발 과정이 될 수밖에 없다.

마케팅이 ‘유기적(organic)’인 것은 첫째, 고객을 만나고 검증하고 배우는 과정이 유기적이기 때문이며 둘째, 그 과정이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매개자들의 참여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며 셋째, 결과로 얻어지는 네트워크가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오가닉 마케팅은 미디어를 살아있는 네트워크, 누구도 통제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유기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그래서 오가닉 마케팅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체화될 수밖에 없다. 제품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과정, 제품이 네트워크 자체임 배우는 과정이 바로 오가닉 마케팅, 이 시대의 마케팅이다.

글/윤지영(Agnès YUN)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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